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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n 04. 2024

아들 엄마의 군대 걱정

믿음 그리고 소망


캐나다에 와서 알게 된 몇 명의 엄마들이 있다. 몇 명의 아들들은 나의 아들보다 형이었다. 그리고 또 어떤 엄마들의 자녀들은 나의 아들보다 동생이었다. 자녀들의 나이대 폭이 넓은 가운데 조금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4학년을 기준으로 더 어린 아들을 둔 엄마들은 할 수만 있다면 '군대'에 안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에 중학생이상의 아들을 둔 엄마들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군대에 가서 고생을 해 봐야
엄마 고마운 것도 알고 정신 차리지


엄마의 본심이야 '군대에 안 가면 좋겠다'일 수 있지만 사춘기가 시작되며 본격적으로 갈등이 빚어지니 그렇게라도 화를 푸는 거 같았다. 다른 한 편으로는 설렁설렁한 아들의 일상생활이 조금 더 빠릿빠릿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그렇기 때문이다. 


아들이 지금보다 어릴 때는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한 인생 설계도 했었다. 타국의 영주권을 따고 아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여 입대를 안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굴려본 것이다. 


이 곱고 여린 작은 생명체가 완전군장을 하고, 이 여린 발에 딱딱한 군화를 신고 연병장을 돈다고 생각하면 괜히 가슴이 아려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5학년이 넘어가면서 나도 '그 엄마들'과 같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머문 자리를 말끔히 치우지 못했거나, 무언가 하기 싫다고 밍기적 거리거나, 집안 일에 비협조적일 때 특히 그런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아들의 행실에 불만을 품은 마음의 밭에는 '군대에 가서 눈물을 쏙 빼 봐야 지금까지 얼마나 편안하게 살아왔던 건지 뼈저리게 느끼겠지!!' 하는 생각이 여름날 대나무 죽순 자라듯 쑥쑥 자나랐다. 


그러다가도 어디가 아프다고 호소하거나 자기 이마의 여드름을 좀 봐 달라며 달라붙는 아들을 어루만질때면 그런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쏙 들어가 버린다. 


캐나다 학년 Grade 3의 2학기에 전학을 온 아들의 첫 등교날이 생각난다. 학교는 집 바로 옆에 있지만 당연히 첫날이니 함께 등교를 했다. 가방을 메고 줄을 서서 교실로 들어가는 아들을 보며 하루를 잘 보내주기를 바라는 거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갔고 함께 나지막한 비탈길을 걸어 내려왔다. 아들은 주먹을 가볍게 쥐고 있었는데 내가 그 안에 뭐가 있냐고 물었더니 손을 펼쳐 보여주었다. 


아들의 손 안에는 손바닥 크기보다 작은 직사각형의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포스트잇은 웃고 있었다. 작은 동그라미 눈과 스마일 입. 코는 없었다. 


-우디야


아들이 말했다. 


-우디가 누구야?


나의 질문에 아들이 손바닥의 포스트잇을 나에게 성큼 가까이 들이밀며 다시 말했다. 


-얘가 우디야. 내 친구. 


새로운 학교로의 전학은 낯선 건물, 낯선 길, 낯선 아이들, 낯선 선생님 모든 것이 극복의 대상이다. 전학 첫날,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이미 다른 아이들은 서로서로 친구가 된 2학기의 교실에 첨벙 뛰어드는 것은 어른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아들의 우디를 잘 두려고 했는데 지금은 어디에 갔는지 모르겠다. 낯선 교실에 앉아서 조용히 포스트잇에 얼굴을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름도 붙여준 아들을 생각하면 괜시리 마음이 짠해진다. 


짠해지는 한편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스스로 극복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아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아들에 대한 나의 믿음이 훌쩍 커지는 경험이었다. 


이제 앞으로 8년 정도 지나면 나의 아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군대에 입대를 할 것이다. 군대를 다녀온 남편도 안 갈 수 있다면 안 가는 게 좋다고 말한다. 아들이 군대를 갈지 안 갈지 지금으로서는 미지수이다. 해외 거주중인 이중국적자의 경우 일부러 한국 군대에 자원입대를 하기도 한다니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최근 터진 군대에서의 가혹행위나 사망사고 소식을 들으면 '군대에 가서 눈물 쏙 빼 봐야!!'라는 나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산산이 흩어져버린다. 어떻게든 군대를 안 보내고 싶은 마음이 지배적이 된다. 


허나 머지않은 미래에 입대를 하게 된다면 지난날, 마음속의 친구인 우디를 만들었던 기지를 발휘해 잘 적응하길 바랄 뿐이다. 



입대를 앞둔 아들, 지금 현재 군에 복무 중인 아들들 모두 무탈하게 군복무를 마치고 건강하게 귀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 





표지그림 : Gerard Wiersum, <marching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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