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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May 30. 2024

무시무시한 꿈

이상심리학 수강 후유증


간밤에 엄청난 꿈을 꾸었다. 


아이가 꿈에서 죽었다. 


나는 죽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필살의 CPR을 시행했다. 아이가 살아나는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마침 옆에 의사인 작은 아버지가 계셨다. 작은 아버지에게 내가 CPR을 맞게 하고 있는지 좀 봐 달라고 외쳤다. 


작은 아버지는 물끄러미 보시더니, 아무래도 늦은 거 같다고 답했고 나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러다가 "아니야!! 나는 되돌릴 수 있어!!"를 외쳤다. (역시 꿈은 꿈이다) 마법처럼 다시 아까의 아이가 죽는 순간으로 돌아갔다. 


나는 아이에게 즉각적으로 CPR을 시행했고 아이는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내뱉었다. 아이가 살아난 기쁨이 생생했다. 두 팔을 벌려 아이의 몸을 꼭 끌어안으며 잠에서 깼다. 


///


이번 학기에 전공필수인 '이상심리학'을 수강하고 있다. 강의 첫 시간에 교수님께서 이 수업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이상심리학을 수강하면 주위의 사람들이 무언가 성격장애로 보이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친구가 이런데..... 경계선 성격장애 아냐? 내지는 어.... 그때 그 사람 연극성 장애였구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초심자의 '과잉진단의 오류'에 빠지는 과정을 이상심리학 수업을 들으면 누구나 겪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도 나 자신은 말할 것도 없이 원가족, 친구, 친구 남편, 지인,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아들에 대해 과잉진단을 하는 몇 개월을 보냈다. 


친정 엄마의 내 아들에 대한 걱정 중 하나가 '소심함'이었다. 나 역시도 예전에는 아들이 너무 소심하다고 생각했고 이 걱정을 엄마와 많이 나누었다. 하지만 김종원 작가의 '소심한 것이 아니라 신중한 것'이라는 말에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기질은 타고나는 것으로 노력에 의해서 바뀔 수는 있지만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아들이 돌 지나고 문화센터에 다닐 때를 돌이켜 보면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 맞다. 


목표물을 향해 저돌적으로 전진하는 아기가 있는가 하면, 그런 거 관심 없고 나만의 흥에 겨워 춤을 추는 아이도 있다. 어떤 아기들은 엄마 품에서 떠나려고 하지를 않는데 나의 아들이 그랬다. 


C군 성격장애에 회피성 성격장애가 있다. 회피 행동은 유아기나 아동기 수줍음, 고립, 낯선 사람과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수줍고 억제적이고 눈에 띄지 않아 주목받는 것을 매우 꺼리는 성향도 있다. 


경과로는 아동기 수줍음이 회피성 성격장애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지만, 모든 아동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기질적으로 수줍고 억제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는 낯선 환경의 자극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긴장을 하며 적응하려는 노력은 적다. 


어린 시절의 이런 수줍은 성격 특성이 대인관계나 사회활동을 제한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면 성인이 되어 성격장애로 진단될 수 있다고 하니 내 마음이 무거워진 것이 당연하다. 


올해 아들은 엘레멘터리 스쿨을 졸업한다. 학교에서는 7학년을 위한 졸업파티를 열 예정이다. 아들에게 파티 초대장이 왔다고 하니 '가기 싫어'라고 한다. 내 머릿속에 이상심리학 수업 시간에 들은 '회피성 성격장애 어쩌고 저쩌고' 가 마구 흘러갔다. 


아들을 붙잡고 말했다. 


사람들 많은 곳에 가는 게 싫을 수 있어. 엄마도 그런데 가면 피곤해서 안 가고 싶을 때가 있거든. 근데 인생에 한 번뿐인 파티이고, 이런 상황을 자꾸 피하다 보면 점점 더 가기 힘들어질 거야. 

어차피 학교 끝나고 2시간 동안 하는 파티인데 한 번 참석해 보는 게 어때? 


아들은 가만히 듣고 있더니 생각을 해보겠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간밤에 무시무시한 꿈을 꾸었다. 


영유아기에 유독 낯가림이 심했던 나의 아들. 말레이시아 학교에서 'fragile boy'로 통했던 아들. 2년째 보는 골프 선생님이 아직도 내 아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못 들어볼 만큼 수줍음이 많은 아들.  


"He's shy."라고 어른들이 반복적으로 한 말이 주문처럼 아이를 더 수줍게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격을 고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자신이 필요해지면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의 아들을 인정하되 성격이 자신을 통제하고 제한하지는 않도록 잘 인도해 주고 싶다. 


꿈속의 심폐소생술이 성공했듯이. 




표지그림 : William Blake, <Oberon, Titania and Puck with Fairies Dancing>, 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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