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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May 22. 2024

아니지 여사는 아니지


얼마 전, 아들의 주니어 골프 클럽을 정리하고 성인용 골프 클럽을 구입했다. 키가 커져서 장비를 교체했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길이와 소재의 골프 클럽이다 보니 아들은 감을 잡기 어려워했다. 


평소에 필드에 나가면 아들은 나보다 드라이버를 멀리 쳤다. 우드의 임팩트도 나보다 좋았다. 내가 공을 계속 엉뚱한 곳으로 치면 "엄마 불쌍해"라며 측은지심을 보이는 여유도 있었다. 


어제는 캐나다의 공휴일이어서 새 골프 클럽을 들고 아들과 필드에 나갔다. 아들은 1번 홀의 티샷부터 미스가 크게 났다. 1번 홀은 몸이 안 풀려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아들 등을 두들기며 게임을 진행했다. 


하지만 아들의 게임은 잘 풀리질 않았다. 4번 홀을 지난 5번 홀에서 이미 아들의 기분은 엉망이었다. 6번 홀에서 아들이 우는 소리를 하면서 말했다.


-나 골프 안 해, 공이 안 맞아서 더 이상 못 치겠어. 그만 칠래!!! 


아들의 '기분이 태도로'  뿜뿜 나오모습을 보고 나도 속이 편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아니지, 공이 안 맞아서 그만한다고 생각할 게 아니고, 공이 안 맞지만 그래도 끝까지 해 본다고 생각해야지.


그리고 몇 미터 걸어가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


말레이시아에 살 때 '아니지 여사'라고 부르던 사람이 있다. 누가 무슨 말만 하면 그 여자의 입에선 "아니지~~"가 먼저 튀어나왔다. 


습관성 '아니지'였다. '아니지'라는 말은 참 독선적이다. 네가 한 말은 틀렸고 나는 맞다는 말이 이 한 단어에 진하게 녹아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고, 다른 삶의 길을 걸었고, 삶의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의견에 정답은 없다. 


나는 획 돌아서서 아들에게 말했다. 


-'아니지'라고 말해서 미안해. 엄마 생각이 꼭 맞는 건 아닌데 네 말이 틀린 것처럼 말해버렸어.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철학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편하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삐끗하는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럼 내 생각은 100%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삶에서 맞는 말이고 생각이다. 


'아니지~' 대신에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근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 


 '아니지 여사'가 번번이 사람들의 말을 부정하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할 때마다, 부정당하는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었는지 기억한다. 그랬으면서 나도 '아니지 여사'가 된 어제였다. 


연습하자. 


아,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근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 


익숙하지 않은 말은 모국어여도 외국어처럼 연습을 해야 입에 붙는다. 




 


표지그림 :   Thomas Armstrong, <The 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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