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설레발
서로 사랑하는 사자와 소가 있었습니다.
소는 사랑하는 사자를 위해 하루종일 풀을 뜯어 가장 맛있는 부분을 사자에게 주었습니다.
사자는 사랑하는 소를 위해 사냥을 한 고기 중 가장 맛있는 부위를 소에게 주었습니다.
둘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상대에게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소는 더 맛있는 풀을, 사자는 더 맛있는 고기를 준비했지만 기뻐하지 않는 상대의 모습은 결국 상처로 돌아왔고 둘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소도 사자도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했어."
지난 일요일, 아들과 브런치를 먹으러 유명한 카페를 찾았다. 앉을자리가 없이 테이블이 꽉 찼고 주문을 받는 사람들도 주방도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들이 자리를 맡는 동안 나는 카운터에서 샌드위치와 내가 마실 커피, 그리고 아들이 마시겠다고 한 아이스 초코를 주문했다.
주문받는 사람이 아이스 초코에 '휘핑크림'을 올리냐고 물었고, 나는 "No, whipping cream please."라고 답했다.
음식은 서버가 가져다주지만 음료는 주방 옆에서 받아가야 했기에 나는 시간을 맞춰서 음료를 받으러 갔다.
그런데 아이스 초코에 휘핑크림이 올라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휘핑크림 없이 주문했다고 크림을 걷어 달라고 부탁했다.
휘핑크림을 걷어낸 직원이 원하면 다시 만들어주겠다고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여서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어째 아이스초코의 색이 너무 진해 보였다. 지난번에 다른 카페에서 그 정도 진한 색의 아이스초코가 너무 달다고 우유를 추가로 넣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두 번 걸음 하지 않으려고 우유를 조금만 더 넣어달라고 했고, 빨대로 휘휘 저어 잘 섞은 뒤 아들에게 갖다 주었다.
음료코너에서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말한 게 잘못이었을까.
아들이 한 입 먹더니 표정이 굳었다. 실망과 원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아들이 항의했다.
"엄마!! 단 지 안 단지는 내가 먹어보고 결정하는 거지!!!"
이번에는 내 표정이 굳었다.
내면의 자동프로그램이 작동했다. 뇌 안에서 이런 문장이 자동생성되었다.
'이런 까탈리우스 같으니라고, 그냥 좀 먹지 으휴'
나의 이러한 역기능적 인지의 핵심 신념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엄마에게 고분고분해야 한다.
나는 이런 핵심신념을 원하지 않으므로 교정이 필요했다.
아들과 나는 잠시 뚱하게 말없이 아이스 초코를 째려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아!! 이게 단 지 안 단지는 네가 먹어보고 판단할 일인데 내 마음대로 우유 넣어서 미안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들이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활짝 미소 지었다.
우리는 다시 평상시처럼 음식을 기다리며 손바닥 뒤집기 놀이를 시작했다.
엄마가 아이를 생각해서 한 발 앞서 나가는 일은 살다 보면 빈번하게 발생한다. 한 번은 먹기 편하라고 소고기 안심을 한 입 크기로 잘라서 주었더니 아들이 자기는 스테이크로 먹는 게 더 좋다고 한 일도 있었다.
아기가 누워서 버둥거리고 기어 다니는 상태일 때에는 좋든 싫든 엄마의 일방통행이 먹힐 수밖에 없다.
아이는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완전히 다른 독립된 인격체이다. 엄마 중심에서 생각하는 태도를 전환해서 자녀를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학생 때, 일본어 회화 시간에 젊은 일본인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子供って何?(아이란 무엇인가?)"
귀엽다, 예쁘다, 시끄럽다(?) 이런 답변들이 나오는 가운데 나의 대답은 "아이는 또 하나의 인격체"였다. 그때는 나도 20대 초중반이었으니 무슨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고, 어디에서 주워들은 말이었을 것이다.
나의 그럴듯한 대답에 교수는 박수까지 치면서 "僕は君を尊敬してる。(나는 너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아이는 또 하나의 인격체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엄마의 판단으로 앞서 나가지 말자.
ㅍㅈㄱㄹ : 일요일에 핵심신념을 발견한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