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년 간 아이를 낳고 나 혼자 외박을 한 일은 단 두 번이다. 한 번은 친정에서, 한 번은 남편이 말레이시아에 우리를 만나러 왔을 때 친구와 1박 2일로 싱가포르에 갔을 때이다.
친정에는 부모님이 계셨고 싱가포르는 친구와 갔으니 '혼자 외박'이라고도 할 수 없겠다.
혼여.
혼자하는 여행.
결혼 전에는 혼자서도 여행을 잘 다녔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도 다녀왔다. 혼자서 여행을 하면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다. 내 사진을 찍기 힘들다는 것과 내 자리나 짐을 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내 사진을 많이 안 찍으니 별 상관 없는데 큰 가방이나 캐리어를 두고 화장실을 후다닥 다녀와야 할 때 혼자 여행의 불편함을 실감한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서 머무르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머물러도 되고 너무 좋았다면 다음 날 다시 방문해도 된다. 여행에 동행한 사람과 100% 로 가고 싶은 곳이 일치하기는 힘들다.
서로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하면서 조율을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혼여'는 완벽하게 이기적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양해를 구할 필요도 없고 이해를 바랄 필요도 없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 나에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여행을 하는 동안 기록을 한다는 것이다. 동행과 함께라면 대화의 기회는 늘어나지만 혼자만의 상념에 빠질 시간을 박탈당한다.
나 혼자 여행을 하며 작은 노트에 그때 그때 본 것에 대한 생각을 메모하거나 숙소에서 쓴 일기는 금방 떨어져 버리는 열쇠고리 같은 기념품 보다 더 큰 기념의 가치가 있다.
1박이라도 좋으니 혼자 여행을 하고 싶었다. 아이가 셋인 친구는 3박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애 한 명 당 일박이냐고. 친구가 말했다. 두 당 일박이면 일 박 더 추가해야 한다고.....(왜 추가해야 하는지는...)
혼자 휘적휘적 발 닿는 대로 가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유명한 맛집에 가서 줄을 서서 먹는 건 목표가 아니었다. 다량의 쇼핑을 해서 '떼샷'*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오롯이 하루를 나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신데렐라 처럼 귀가 시간의 압박을 느끼지 않고 밤거리를 구경하고 싶었다. 그리고 호텔방의 넓은 자쿠지에서 여유있게 몸도 담그고 다음날 아침에는 새벽 수영도 하고 싶었다.
예전에 내가 '호텔 조식'이 먹고 싶다고 하니 엄마가 그런게 먹고 싶기도 하냐며 웃으셨다. 곱창이 먹고 싶다거나 카레 빵이 먹고 싶다 같은 구체적인 메뉴가 아닌 '호텔 조식'을 먹고 싶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셨나보다.
그래. 호텔 조식도 먹고 싶었다. 기왕이면 호텔도 끝내주게 좋은 곳에서 자고 싶었다. 그러면 조식도 필시 훌륭할테니까.
그래서 예약을 했다. 호텔도 예약하고 비행기 표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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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돌연 어제 다 취소를 했다.
문득 이러한 계획이 다 나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리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1박 2일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여행을 가면 즐거울거라고 생각했지만 여행을 가기도 전에 苦가 먼저 생겨났다. 시간, 금전, 이동, 날씨, 짐, 계획, 쇼핑 등등.
불교에서는 바라는 마음을 '갈애'라고 표현한다. 바라고 또 바라지만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이다. 1박 2일의 여행이 리프레쉬가 될 가능성은 있다. 스쳐지나가는 쾌감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많은 것들이 번뇌가 되었다.
무리한 1박 2일 여행이 나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생각하다보니 그 돈을 차라리 더 가치있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
此有故彼有 此滅故彼滅
차유고피유 차멸고피멸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어지는 법이다.
무위무사無爲無事라고 했던가. 탐욕을 뿌리치고 나니 확실히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없애야 하는 '이것'들이 산재해 있다.
표지그림 : Dawn, by William-Adolphe Bouguereau, 1881
*떼샷 : 여행 커뮤니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증샷. 다량의 현지 물품을 구입하여 한 군데에 모아놓고 촬영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