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 외에 삶에 즐거움을 찾기 위해, 보다 윤택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취미라는 활동을 한다. 사회활동을 하다 보면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온다.
이렇다 하게 특별한 취미가 없는데 잘 보여야 하는 경우 대부분 '독서'를 취미라고 한다. 20대에 내 취미는 '영화감상'이었다.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다 보니 영화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한동안 '취미 없음' 상태를 유지하다가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제는 누가 취미를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피아노'라고 답을 한다.
그리고 이제 또 하나의 취미가 생기려고 한다. 아니 아직 그에게 '취미'라는 신분을 부여할지 확실하지는 않다. 지금은 취미라고 하기보다는 '마지못해', '숙제하듯이' 하고 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골프인데 매주 토요일 레슨을 받고 종종 필드에 나가면서도 매번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골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일본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결이 비슷하다. 내가 특별히 원해서는 아니었고 정말 어쩌다 보니 그걸 하고 있게 된 것이다. 나와 아들이 골프를 치면 나중에 남편과 함께 셋이 즐길거리가 생기게 되니 미래에 대한 투자 정도로 여겼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피아노는 정말 재미있어서 치고(재미있어서 친다는 것이 진짜 잘 친다는 뜻은 아니다) 골프는 복수심에 친다.
'복수'라는 것이 나보다 잘 치는 사람보다 타수를 줄이겠다는 그런 복수가 아니다. 내가 친 앞 공에 대한 복수를 해주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복수의 대상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다시 찾을 수 없게 되거나 생크나 뒤땅을 맞아 제대로 뜨지 못한 공들이다.
찾아보니 골프를 인생에 비유를 많이 하는 것 같다. 골프는 끊임없는 수련과 노력의 연속인데 이것이 우리 사는 삶과 닮은 꼴이라는 것이다. 너무 힘을 주어도 안 되고 너무 힘을 빼도 안 되며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
나는 요즘 골프를 치며 욕심, 번뇌, 그리고 비움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 만화 '호기심 많은 조지'의 에피소드 중에 조지와 친구들이 미니골프를 치는 이야기가 있다.
게임이 끝나고 스코어를 정산하는데 스티브는 35타, 벳시는 58타, 그리고 조지는 257타를 기록한다. 조지는 자기의 점수가 가장 높다며 기뻐하고 벳시는 그런 조지를 보고 난감해하며 말한다.
-조지, 골프는 높은 점수가 좋은 게 아니야. 가장 낮은 점수가 좋은 거야.
조지는 집에 가는 동안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낮은 숫자가 높은 숫자를 이길 수 있는 거지?
나는 오히려 이것이 나의 인생에 적용시킬 수 있는 골프의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꾸만 쌓아가려고 한다. 더 가지려고 하고 더 채우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책을 읽어 치우는 것도,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자꾸만 공부를 더 하려는 것도 다 욕심의 다른 모습들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올해 초 까지 열심히 비워낸 민둥산이 같았던 옷장은 어느새 새로운 옷들로 울창해졌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말이 맞는 말이긴 하지만 채우려는 욕심은 아귀 같아서 '더, 더, 더'를 외친다.
아이러니하게도 골프는 타수를 줄여야 하는 번뇌에 빠지게 만든다. 나의 골프 선생님은 '상처'를 많이 받는 스포츠라고 하신다. 타수를 줄이겠다는 '갈애'에 빠지게 되는 번뇌 양성 취미이다.
골프를 '108 번뇌의 상징'이라고 한다 하니 이것을 취미로 삼는 것이 과연 나를 깨달음의 경지에 인도해 줄 것인가 의문스럽다.
지금으로서는 숙제하듯 골프를 대하고 있다. 당장 내일도 골프장을 예약해 놓은 나는 내일 어떤 번뇌를 얻어오게 될 것일까.
표지사진 : 밴쿠버의 어느 골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