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른 아침, 예정대로 오늘 골프를 치러 다녀왔다. 아니, 잠깐만..... 내가 왜 자꾸 골프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쓰려던 거는 골프 얘기가 아닌데 머릿속에 자꾸 골프가 밀고 들어온다.
골프와 관련된 키워드는 애석하게도 싱글, 기쁨, 즐거움, 재미 이런 것 보다는 집착, 고통, 번뇌, 소멸 이런 쪽이다.
먼저 골프를 시작한 친구가 '이 작은 동그라미'에 자기가 그렇게 집착하게 될 줄 몰랐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당구를 처음 배운 게 고등학생 때인데 이때이든 대학생 때이든 당구를 배운 사람은 겪어 보았을 것이다.
학교 칠판이 당구대로 보이는 신기루 같은 마법의 환시 말이다. 꼭 초록색이지 않아도 되었다. 침대에 누우면 천장이 당구대로 변하고 상상의 당구공이 천장 위를 굴러다닌다.
아직 그 정도로 골프에 빠지지도 않았고 골프에 내 마음을 그만큼 내줄 생각도 없다. 강력한 부정은 강력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골프 저널에 들어가 몇 개의 글을 읽어보니 골프를 치면서 하루 종일 64홀쯤 돌다 보면 고승과 같은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골프 실력 보다도 골프를 통해 바라보는 삶을 통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골프 저널의 저자는 자신이 공을 보내고 싶은 거리에서 10% 를 뺀 것이 내가 보낼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을 하면 오히려 10% 더 멀리 나가게 된다고 한다. 기대치를 낮추고 힘을 빼는 것이 결과적으로 비거리를 늘린다고 하니 힘을 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공이 잘 맞지 않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은 분명히 고통의 감정을 안겨준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고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게 설계되어 있는 듯하다.
어떻게든 고통을 극복하고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늘 타진하니까 말이다. 고통이 생겼을 때 그것을 외면하고 모르는 척하는 것으로는 극복을 할 수 없다.
고통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 당장 쓸 수 있는 1억이 손에 있으면 행복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행복의 가치를 외부에서 찾으면 고통만 가중될 뿐이라고 답했다.
타수를 줄여서 싱글을 하고 비거리가 늘어나 장타가 되면 나는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고통이 따를 것이다.
고통을 없어지게 하는 방법은 고통을 자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마리 루티의 <가치 있는 삶>에서는 고통이 없는 삶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고통 자체를 풍부한 자원으로 바꾸어 고통의 의미를 새로이 정의하고자 한다.
골프는 무조건 세게 쳐서 멀리 보내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고 한다. 오늘 골프장을 돌다가 문득 내가 너무 멀리 보내는 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아마도 내 고통의 뿌리가 아닐까.
멀리 보내고 싶은 욕심은 근육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경직된 자세를 만든다. 마음을 고쳐먹고 짧게 짧게 앞으로 가고자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골프 저널에서 말한 대로 10% 멀리 나가지는 않더라)
18홀을 다 돌고 골프 동반자였던 아들과 월마트로 향했다. 월마트에서는 재활용 골프공을 묶음으로 저렴하게 판매한다. 우리는 이 공으로 골프를 친다. 아직 우리 실력으로 박스에 정갈하게 들어있는 공은 언감생심이다.
60개 들이 한 묶음을 집고 40개 들이 한 박스를 집었다. 그리고 내가 말했다.
-우리 이 정도 잃어버릴 수 있잖아?
아들이 대답한다.
-그럴 수 있지!!
이 말은 우리가 아직 골프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분명히 3번 홀쯤에서 사라지는 공들을 바라보며 고통에 몸부림치던 우리는 말했다. 그만두자고.
그런데 집에 올 때는 100개의 골프공이 손에 들려있었다. 100개를 버릴 결심을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100개의 공이 사라지는 고통을 성장의 연료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표지그림 : Diego Rivera, <Three Golf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