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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ug 21. 2024

한국인이지만 한국 한달살기

문화선진국을 향해......


북미의 여름방학은 길다. 

6월 끝무렵에 시작해서 9월 초에 새 학기가 시작할 때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여름의 한국을 경험한 것이 5년 전이다. 오랜만에 한국의 여름을 겪어보고 싶어졌다.


해외 체류자가 한국에 귀국하면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병원투어다. 치과는 기본. 아프지는 않지만 당장 병원을 갈 정도는 아닌 약간 미심쩍은 신체의 어떤 신호를 해결하는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병원과 더불어 시댁 방문이라는 굵직한 숙제를 해결하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놀 시간이 도래한다. 

에어비앤비로 관광의 요지에 베이스캠프를 차리면 그때부터 나는 관광객의 정체성으로 시간을 보낸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한국에 머물면서 느꼈던 점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1.  카페, 카페, 그리고 카페

상권의 한 집 걸러 한 집이 카페라는 뉴스는 종종 접하고 살았다. 작년에 한국에 왔을 때에도 카페가 많다고는 생각했지만 유명한 카페를 굳이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경복궁 옆구리에 숙소를 잡고 본격적으로 먹거리를 서칭 하다 보니 말 그대로 한 집 걸러 한 집이 카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체인점도 많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가 참 많았다. 


가만히 보니 생크림을 어레인지 해서 커피에 올리는 것이 유행인 거 같았다. 카라멜이나 오레오 쿠키를 활용한 것은 기본이고 흑임자나 쑥을 이용한 라떼 종류도 눈에 띄었다. 고민과 연구를 거듭해 탄생한 독창적인 시그니처 커피가 있는 카페라면 누구라도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몇몇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었는데 언제가 될지 몰라도 다음에 한국에 왔을 때에도 그 개성을 이어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2. 이태리, 이태리, 그리고 일본

경복궁 주변에서 열흘을 지내본 결과 삼청동을 비롯하여 익선동까지 잘 차려진 식당의 대부분이 이탈리아 식당이라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거기에 일본 감성의 식당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식이라면 고급 한정식 또는 고깃집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전골이나 찌개, 분식류의 식당들도 있기는 했지만 한옥을 단장한 식당 중에는 '한식'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익선동에서도 흔히 만날 없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곳 보았다. 이런 현상은 서울에서만이 아니었다.


수원에 있는 화성 행궁 주변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주민센터 같은 공공기관도 새로 지은 한옥 컨셉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의 분위기를 맞추어가는 와중에 한 건물 벽에 아주 크게 일본어로 '가마메시(솥밥)'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식당들의 간판도 일본어로 적혀있는 곳들이 여럿 보였다. 아들이 우동을 먹고 싶다고 해서 들어간 식당은 마치 일본으로 순간이동한 느낌이었다. 


창가 자리에 앚아서 우동을 먹는 동안 옆으로 지나가는 많은 일본인 관광객을 보았다. 붕 뜬 이질감과 묘한 수치심이 느껴졌다. 한국의 문화유산 옆에서 일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교토의 키요미즈테라에 놀러 갔는데, 그 앞에 K-Food의 직격탄을 맞은 골목이 있다면 나는 어떤 느낌일까? 


한국 음식의 위상과 인기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여행의 매력이 반감되지는 않을까? 그렇다고 당장 돈이 되는 이탈리아나 일본 음식을 눈앞에 두고 주 소비층이 선호하지 않는 음식을 고집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음식을 외국 관광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우리 스스로 차 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3. 빵, 빵

두 가지 빵이 있다. 입으로 먹는 빵과 귀로 듣는 빵이다. 입으로 먹는 빵은 즐겁지만 귀로 듣는 빵은 피곤하다. 


지금 한국에는 카페를 위시하여 엄청난 빵집들이 포진해 있다. 특히 소금빵과 마들렌이 많은 것이 흥미로웠다. 빵집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미 몇 년 된 유행인데 소금빵의 인기는 식지를 않는다고 한다. 


한국이 이렇게나 빵진국(?)이 될 줄 몰랐다. 해외에서 기술을 배워와 자신만의 가게를 여는 젊은 기술자들이 많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만의 기술과 노하우, 그리고 자기가 운영하는 가게를 가진다는 건 그만큼 인생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 어떤 노하우를 쌓아왔는지, 앞으로 쌓아갈 지에 대한 새각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빵, 경적.

몇 초의 여유가 아쉬웠다. 2초 3초만 기다리면 갈 차인데 일단 경적을 누르고 보는 사람이 많은 거 같았다. 캐나다라고 경적을 안 울리는 건 아니다. 비보호 좌회전 할 때 안 가면 엄청 빵빵 거리기는 하지만 한국의 경적은 빈도수가 더 잦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빵빵 소리가 들리면 "왜 또, 왜!!" 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4. 기다림의 미덕

일전에 캐나다에서는 '차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고작 4년 반 살았다고 어느새 나도 차가 기다려주는 문화가 더 익숙해졌다. 


한국에서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나 주차장 출입구에서 행인을 기다려주는 차가 거의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우두커니 서서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외국인들도 보았다. 


이런 것과 관련된 영상이 있을까 싶어서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한국의 횡단보도 바닥에 초록불이 들어오는 시스템에 대한 예찬만 있고 사람을 기다려주는 차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중 수년 전의 뉴스 영상을 찾았다. 


이미 그 뉴스에서는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나 골목에서 행인을 우선 배려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된듯하다. 


조급하고 잦은 경적도, 사람이 차를 기다려야 하는 문화도 언젠가는 변할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관광객으로 살다 보면 박물관, 미술관, 공연, 전시 등 문화적으로 즐길거리가 풍부해서 하루가 바쁘다.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이다. 이렇게나 즐거운 한국인데, 부디 먹거리에서도 한국만의 개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고 마음의 여유를 챙길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문화선진국이 되기를 바라며 한달살기를 마친다. 





표지그림 : 덕수궁에서 열렸던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에서 촬영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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