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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l 16. 2023

에고, 피아노 그리고 브런치

목적과 방향성을 잊지 않기

 나는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다가 치기 싫다고 문을 걸어 잠그고 집에 오신 선생님을 방으로 들이지 않았다.


 내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기까지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야 했다.


 말레이시아의 콘도 아래에 음악 학원이 새로 문을 열었고, 아이의 바이올린 레슨을 등록하러 방문을 했다가 내친김에 나의 피아노 레슨까지 등록을 해버렸다. 그렇게 애증의 취미, 나의 에고를 들었다 놨다 한 피아노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나는 꽤나 성실한 사람이다. 성실하게 술을 마셨고 성실하게 피아노 연습을 해갔다. 많이 잊어버렸어도 어릴 때 몇 년 배운 경험이 있던 터라 레슨의 속도는 꽤나 빨랐다.  성인 기초 교재인 알프레드 교본 두 권을 순식간에 끝내고 선생님이 준비해 준 여러 뉴에이지 곡들을 쳤다. 뉴에이지도 재미는 있었지만 어릴 때 치다가 만 소나티네를 다시 한번 만져보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악기를 배울 때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분이 바로 '표현'이다. 음악에 숨을 불어넣고 노래를 만드는 작업인데 이게 진짜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미셸은 음악의 표현보다는 악보를 정확하게 잘 읽고 템포를 적당히 맞추면 바로 다음 곡으로 진도를 뺐다.


 2~3주에 한 곡씩 소나티네 곡이 바뀌며 나는 내가 진짜 잘 쳐서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는 착각을 무려 3년을 하고 살게 되었다. 착각 레벨은 상향조정되었지만, 다양한 곡을 쭉쭉 읽어나간 덕분에 지금 나의 초견은 꽤나 좋은 편이다. 그때의 훈련이 낳은 결과이다. 그 무엇도 그냥 지나가는 시간은 없다.


 캐나다에 넘어와서는 좋은 피아노 선생님을 구했는데 팬데믹 때문에 레슨이 중단 되었고 혼자 유튜브를 찾아보며 독학을 하게 되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나 잘 치는 사람인데?!


 이 정도는 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곡들이 예상과 달리 어렵게 느껴졌고 칠 수 있는 곡은 소리가 거칠기 짝이 없었다.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왜 저 인간은 저렇게 치는데 나는 그게 안되는지 비교불가한 사실을 놓고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일반 취미인의 엄청난 연주를 보면 심장이 벌렁거리며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피아노가 꼴도 보기 싫었고 피아노 소리도 듣기 싫었다. 아무 잘못도 없는 피아노 탓을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이것이 '에고'가 지나치게 확장되어 생긴 문제라는 것을 마음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에고는 나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고 허무맹랑하게 쇼팽의 화려한 대 왈츠를 치라고 악보를 들이대며 무능을 입증하려 들었던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능력의 한계를 인정해야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는 것인데 2의 능력을 갖고 시도하는 것은 7이니 그 사이의 5 만큼이 고스란히 고통이 되었다.


 라이언 홀리데이의 책 <에고는 나의 적>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아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에고는 자기가 가진 재능이나 힘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부풀리면서 즐겁고 만족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즉, 자만은 에고에게 먹이를 듬뿍 주는 것이고 이는 진실한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 된다.

 

 에고를 다룬 또 다른 책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서는 불만족은 이루어지지 못한 욕망의 결과로, '불만과 불안'은 에고가 자기를 강화하기 위해 선호하는 전략이라고 한다. 내가 진정으로 욕망한 것은 피아노를 잘 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인가?


 나는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피아노를 치는 것이 아니고, 피아노 치는 행위를 통해 몰입의 즐거움을 얻으려고 피아노를 치는 것이다.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피아노를 치는 현재의 나로서 지금을 즐기는 것이지 누군가의 앞에서 멋지게 치고 '잘 친다'는 말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온 것이다.


 이렇게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고 시간이 지나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내가 피아노를 좀 못 치고 틀려도 화를 내기보다는 '이 부분이 나에게 좀 어렵구나' 생각하게 되었고, 어려운 곡을 멋지게 치는 취미생들을 보아도 질투심이 끓어오르지 않았다. 물론 '좋겠다'라는 생각은 한다.


 이제 이쯤에서 제목에 언급한 브런치와 에고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22년 8월 재단주를 시작하며 단주 카페에 글을 써왔고 반응이 좋았다. '브런치'에 가서 글을 써 보라는 얘기도 듣게 되었다. 이미 단주 카페에서 '안 작가'라는 별칭이 있었으니 '이까이꺼' 하며 자만 가득, 성의 없는 브런치 작가 신청서를 작성했고 결과는 당연하게 똑 떨어졌다. 정신이 번쩍 들은 나는 조금 더 성의 있게 샘플 글을 작성하고 이번에는 목차도 촘촘하게 적었다.


 그렇게 작가 신청 두 번 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글을 올리다 보니 벌써 17개 의 글을 올렸다. 꾸준히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감사한 분들이 계시는 중에 다른 글들을 둘러보니 구독자가 몇 백 명, 라이킷이 수십 수백 개가 눌려진 것이 아닌가. 이제 막 시작했으면서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고 글들을 지우고 쓰지 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갑자기 에고가 떠올랐다.


'아, 또 에고한테 낚였다. 비교로부터 발생하는 불만의 마음, 내가 엄청 대단할 거라는 자만과 착각.'

 

나는 브런치에 알코올 중독의 경험담을 풀며 잘못된 음주 습관이 초래하는 문제점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려고 글을 쓰는 것이지, '구독자와 라이킷'을 욕망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10번째 글을 올렸을 때 아이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고 있는데 브런치 알림이 떴다. 아이는 처음 보는 모양의 알림에 이게 뭐냐고 물었고, 나는 글 쓰는 플랫폼인데 엄마 술 끊은 이야기 쓰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팔러워Follower 많아?"


아이가 물었다. 그때 어떤 사마리아인이 한 분 구독을 해 주셔서 구독자가 1명이었다. 내가 웃으며 딱 한 명이라고 했더니 아이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엄마 불쌍해."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사춘기 초입의 아이가 "애계~~ 겨우 한 명이야?"라고 깐족거리지 않는 인품을 갖고 있고, 측은지심이 있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처음부터 구독자가 급증했다면 얻을 수 없는 감사한 마음의 나눔이었다.


 브런치에 있는 작가님들은 모두 다른 글을 쓰고 있다. 각자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을 뿐이다. 비교가 무의미한 이유는 모두 다른 경험을 쌓아왔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성공이 나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괴테는 말했다.



자기를 실제 자기 모습보다 더 크게 보는 것과
자기의 진정한 가치보다 낮게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실패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의 목적과 방향성을 잊지 말고 그저 묵묵히 글을 써보려고 한다. 알코올 중독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이 질환에 대한 인식이 보다 넓게 열려, 시기적절하게 치료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육아이야기와 회복자로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섞어가며 나의 브런치 테이블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차려나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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