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잘 하고 있음을 인정해주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비교 투성이이다. 우리나라의 복지는 북유럽의 어느 나라와 비교를 하고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각 나라별로 비교를 한다.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영유아 발달 검진을 받으면 키와 몸무게가 또래 아이들의 어느 정도에 위치하는지 퍼센티지로 알려준다. 이것을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은 비교군이 있기 때문이다.
건강 정보를 알려주는 온갖 그래프와 숫자들도 집단들 간의 비교를 통한 실험에서 얻은 결과물들이다.
요즘은 자녀들의 정서지능에도 관심이 높아지며 다른 집 자녀들과의 비교를 지양하라는 육아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엄친아, 엄친딸과 비교를 당하며 자라온 사람들은 마음 한편에 늘 억울함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알려진 바이지만 비교는 생존본능이다.
남과 비교하여 나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보완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생명체를 비교해서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을 식별하고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교를 해야만 한다.
최근에 한 파워 블로거의 글을 읽게 되었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 사는 그녀는 아이가 네 명이다. 남편은 함께 살다가 다른 나라로 발령이 났는데 블로그의 주인인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살던 나라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아이 넷을 타국에서 홀로 독박육아를 하는 것도 모질라 그녀는 '일'도 한다. 그것뿐이 아니라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강연까지 한다는 글을 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나와 비교를 하게 되었다.
매일같이 놀고먹는 일기를 블로그에 기재하던 내가 문득 몹시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 한 명 키우면서 일도 하지 않고 피아노 치고, 운동이나 하러 다니는 내 블로그가 마치 '한량 일기'처럼 보였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마음이 쪼그라들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자괴감까지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그러다 문득 몇 달 전 F45(운동센터)에서 만난 한 여성과의 짧은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운동하러 다니는 F45에 한 백인 여성이 있다. 나이는 분명히 나보다 많다. 전체적으로 거의 백발이고 아무리 서양 사람이 동양 사람보다 노안이라고 해도 명백하게 '장년' 쪽에 축이 좀 더 기우는 얼굴이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그녀는 나보다 약 세 배 이상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파워근육의 보유자였다.
어느 날 그녀와 한 팀이 되어 운동을 하는데 20초 간의 휴식 시간이 유난히 긴 순간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F45를 얼마나 오래 다녔는지 물었다. 그녀는 1년 반 정도 다닌 거 같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You are so strong."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녀는 한국 사람이 아니기에 "No way~"라고 부정을 하리라고 예상도 안 했지만 너무 뜻밖의 대답을 나에게 했다.
You too.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너도 강해."라고 말하자마자 우리는 바로 덤벨을 들어 올려야 했다. 물론 그녀는 내 덤벨의 약 세 배의 무게를 거뜬히 들어 올렸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의 블로그를 보면 내 요리가 초라해 보이고, 몸매가 근육질인 사람의 블로그를 보면 덜렁거리는 내 팔뚝이 부끄러워지고, 잘 나가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보면 내 인생이 한심해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그 사람들은 그 사람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파워 블로거가 아이를 넷을 키우며 일을 하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고 해서 아이 한 명을 키우는 전업맘인 내가 한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교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지만 비교가 나를 해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녀도 강하지만 나도 강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강한 사람들이다.
표지그림 : Louis XIV, Spot the difference game
https://en.chateauversailles.fr/discover/resources/spot-difference-game#louis-philip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