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Jul 21. 2023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1년도 더 전에 한 위스키 회사가 온갖 지적 허영심 충족시켜주는 유튜브 채널들을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 적이 있다.    

 

 조승연, 김지윤, 일당백 등과 같은 채널들인데 마치 이 시대의 지성인이라면, 지성인이 사는 집이라면, 000위스키 한 병은 집에 있어줘야~~~ 하는 늬앙스의 광고 전략을 펼쳤고 나는 사로잡혔다. (호구병 말기)     

 

 내가 지성인인지는 모르겠고 집에 해바라기 그림을 두면 돈이 들어온다고 하듯이 저 위스키만 집에 있으면 지성인이 될 수 있을거 같은 환상에 빠졌다.     


 지성인이 탐났던 나는 리쿼스토어 세 군데를 뒤져서야 문제의 위스키를 입수할 수 있었고, 지적 허영심 충족 유튜브를 틀어놓고 그것을 마시기 시작했다.     


맨 정신에 봐도 내용이 기억이 날까 말까한데 술을 마시며 보니 지식은 모르겠고 알코올만 가득 차 올랐다.     

평소 위스키 같은 독주는 잘 안마셔서인지 비싼 술이어서 그런지 효과는 아주 즉각적이었다.     

빨리 취했다.     


 지금은 술을 안 마시므로 술을 욕망하지는 않고 있지만, 나는 너무 다양한 분야에서 쉽게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다. 충동 조절 능력이 많이 부족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친구와 '뽐뿌는 곧 갈망과 같은 맥락' 이라는 카톡을 주고받으며, 나는 삶의 전반에 걸쳐서 너무 많은 갈망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는 쇼핑몰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디자인도 괜찮고 발도 편한 N사의 신발을 신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가격이 무려 $260.


 다른 디자인이지만 같은 브랜드의 운동화를 일본 ABC 마트에서 비교적 최근에 8000엔을 주고 샀기에 이 브랜드의 가치는 나에게 딱 그 정도였다. $260이라는 높은 가격에 적잖이 당황한 나는 신발을 도로 내려놓고 다음에 온다는 기약없는 약속을 하고 가게를 빠져 나왔다.


 집에 와서


그 브랜드가 그렇게나 비쌌나? 한국에서 사면 더 쌀까? 어차피 소포 하나 받아야 하는데 한국 공홈에서 주문하고 소포로 보내달라고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N사의 한국 공홈에 접속했다. 무엇보다 N사의 다양한 디자인 보유에 한 번 놀랐고, 공홈 멤버에 한해서 디자인 별로 구매 개수 제한을 두는 것에 또 놀랐다. 이 브랜드가 이렇게나 가치가 있는 브랜드였구나 싶었다.


 공홈 안을 배회하다가 내가 쇼핑몰에서 신어본 디자인을 발견했는데 made in USA 라인으로 따로 카테고리가 마련되어 있고 가격도 여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문제는 마치 여권 속 비자 위에 찍힌 VOID 처럼 신발 사진 위에 쾅 찍힌 SOLD OUT!! 도장이었다.


 그 도장을 보는 순간 요새 말하는 '어머 이건 사야해' 가 아니라 '어머 이거 사야하나봐'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도장을 쾅 찍었다. 다음 날 아침, 당장 다시 그 쇼핑몰로 달려가고 싶은 욕구를 달래며 산책을 했다.


 그 운동화가 정말 그런 가격의 가치가 있는것일까? 진짜 그 운동화가 내 마음을 후벼판 것일까? 궁극적으로 이 갖고 싶은 욕구가 정말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일까?


 운동화 하나 때문에 이렇게 까지 생각하는 내가 별나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쇼핑에 실패한 다양한 경험 때문이었다. 꽤 고가의 가방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불편해서 안 들고 다니다가 왜 저걸 샀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그 '가방'의 실용성이나 필요성 보다는 그 브랜드의 '로고'를 사고 싶었던 것이라고 귀결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I shop, therfore I am.





또 욕망 철학의 대표인 자크 라캉은 말했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스스로 소망하는 것인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   

     

   


 뽐뿌라는 것도 순수하게 나의 욕구인 거 같아 보이지만, 인간의 욕망이란 *타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는 걸로 보아서 나의 온갖 뽐뿌와 사로잡힘은 결국 인정욕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 입만 열면 뼈를 때리는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욕망은 채워질 수 없는 것이고 채워지지 않음으로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인생이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욕망이 일시적으로 채워지더라도 그것은 만족과는 다른 권태라는 고통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을 욕망하게 된다.

욕망에서 고통으로, 그리고 권태로 이어지는 이 순환으로 인간은 끝없이 뜨겁게 달궈졌다가 두들겨졌다가 식기를 반복한다.


 소유욕은 결국 내적 충실을 위한 충전이라기 보다는 가짜 욕망인 것이다. 진짜 필요로 인해서 나온 욕망인지, 아니면 타인에게 보여주고 나도 대세에 편승했다는 안도감을 얻기 위한 것인지, 단순히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인지 내 마음을 제대로 스캔해야 한다.


 그래서 $260 N사의 신발은 어떻게 되었냐고? N사의 운동화를 결국 구입하긴 했다. 발 편한 운동화가 하나 더 필요했으므로. 대신 $130의 같은 브랜드 다른 디자인으로 구매했다.






 이 $130 운동화는 미용실에 갔다가 미용사가 신고 있는걸 보고 홀딱 반한 디자인이었다.......    


“어머, 저건 사야돼!”








*<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 이현정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표지사진

미용사가 욕망한 것을 내가 다시 욕망한 N사의 운동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