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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l 31. 2023

술 끊은 엄마가 아들에게 쓰는 편지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힘을 기르자


우주 최강 귀염둥이 나의 아들에게

 

 우선 십 년 동안 엄마의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사느라고 고생이 많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구나.

엄마가 술을 마심으로 인해서 네가 덕을 본 것은 아마 게임 시간의 연장, 유튜브 시청 시간의 자유와 같은 방종이었을 거야.


 엄마의 순간적인 쾌락을 채우기 위해 너에게 순간적인 쾌락을 가르친 꼴이 되어버려서 참으로 마음이 아프단다. 작년에 엄마가 술을 끊겠다고 결심하고 처음으로 무알콜 캠핑 갔을 때 기억하니? 엄마가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지?


 그때 너는 '정말 아무렇지 않다'고 대답했단다. 그런데 엄마는 잘 알아. 너도 네 마음을 잘 모르겠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는 더 어려워서, 그리고 엄마 입장을 고려해서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는 걸.


 우리 토끼는 더 어릴 때부터 점잖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어. 기본적으로 너의 성향이 그런 것도 있지만 엄마가 미성숙했기에 네가 조숙해진 부분도 있다는 걸 엄마는 잘 알고 있단다.


 김태경 교수님이라고 상담심리학 가르쳐주시는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


아이의 조숙함이 그간에 아이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 엄마한테 직접 말씀하신 건 아니고 방송에서 보았단다.



 엄마가 이 편지를 남겨두는 이유는 말이지, 우리 토끼도 자라서 중독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야. 왜 그렇게 무서운 말을 하냐고?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근거가 있단다.



 우선 유전적인 이유야.

 알코올 중독이 유전병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하지만 알코올 중독은 '유전병'은 아니야. 유전병은 페닐케톤뇨증* 같이 특정 유전자 때문에 발생하는 병을 말하는거야.


 알코올 중독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대. 하지만 유전적 특성은 있을 수 있어. 무슨 차이냐면, 체질적으로 술을 잘 소화시키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 사람들은 술을 마셨을 때 불쾌감보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더 잘 활용하게 되거든. 그런 특성은 유전이 된다는 거야.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아빠도 한 술 하시지 않겠니? 특히나 엄마의 집안은 다들 술고래란다. 엄마가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간이 멀쩡한 건 타고난 간 덕분이야. 그러니 네 간이 어디 가겠니? 나중에 커서 술을 마시게 되면 독하게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단다. 기분이 좋고,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 정신 놓고 마시면 자꾸만 술에 의존하게 돼.


 유전자와 상관없이 알코올 중독이 가족력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있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은 자기감정 조절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야. 부모가 감정조절을 못 하면 아이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하겠지. 그럼 아이는 자라서 부모와 비슷하게 알코올에 의존하게 돼. 보고 배운 게 그것뿐이거든.


 감정 조절을 못하는 것 중에는 화를 조절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감정을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소하지 못하는 것도 있어. 엄마가 딱 그랬어. 마음이 불편하거나 감정이 상하면 그저 술 마시는 거 외에는 방법을 알지 못했단다.



 중독자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양육환경에서 찾을 수 있어.

 엄마가 우리 토끼 어릴 때 굉장히 엄격하고 규칙과 규율이 많았던 거 기억하려나? 어린 네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규칙을 제시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 많이 혼냈어.


 이런 식으로 엄격한 훈육 또는 학대를 하면 감내할 수 없는 자극이 넘쳐흐르게 되고 아이의 뇌는 '킥 kick'을 필요로 하는 자극 추구의 뇌로 성장하게 된단다.* 흥분이나 강렬한 자극이 도파민을 분비해 주기 때문에 이런 '킥'이 없으면 안정을 찾지 못한대.


 엄마의 상담 선생님도 비슷한 얘기를 해 주셨어. 아이가 처리할 수 있는 감정은 간장종지 만한데 어른이 냉면그릇만큼의 화를 퍼붓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게 바로 '킥'이지.

 

 어릴 때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에 있는 감정 조절 신경들이 망가져서 자기 조절 기능을 잘 못하게 만들어. 그 부분에 있어서 엄마가 너무나 잘못을 많이 했다고 반성하고 있단다.


 위에 '보고 배운다'는 말을 했지?

 사실 엄마도 다 보고 배운 거야. 엄마가 창의적으로 기분이 나쁠 땐 술을 마시겠다고 시작한 게 아니야. 티브이 드라마나 영화, 집안의 어른들이 괴로운 일이 있으면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여줘. 그럼 무의식 속에 그런 장면들이 다 입력이 되는 거야.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실컷 술을 마시자는 것도 마찬가지야.


 무의식은 내 머릿속의 주크박스란다.* 지난주에 박물관 가서 주크박스 봤지? 어릴 때 주입된 무의식 속의 기억은 나도 모르게 같은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단다. 하지만 괜찮아. 아직 우리 토끼는 그 기억을 개선시킬 수 있어. 그래서 엄마가 더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거란다.


 소리를 꽥꽥 안 지르고, 책 읽고, 공부하고, 악기 연주하는 엄마의 모습을 태어나자마자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니. 하지만 미성숙했던 과거를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분명히 너의 인생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모든 경험은 나의 재산이라고 엄마 상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


 엄마는 우리 토끼가 그 어떤 것에도 중독이 되지 않기를 바라.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중독 투성이란다. 중독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바라는 것은 중독이 되었을 때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야.


 유전적인 이유로 나는 중독자가 되었다고 신세 한탄하는 것은 무의미해. 우리는 유전자의 노예가 아닌 의지를 가지고 문제를 개선 할 줄 아는 인간이거든. 리처드 도킨슨이라는 아저씨가 쓴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이 있어. 집에 사다 놨으니까 더 크면 꼭 읽어보렴.


 이 지구에서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이 말에서 우리는 유전자 때문에 지금 나의 행동 양식이 이렇다고 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그러니까 중독이 되는 것에 있어서 유전자 탓은 하지 말 것.


 엄마는 라마르크 아저씨의 '용불용설'을 지지한단다. 어떤 능력이나 신체 기관을 자꾸 사용하면 발달하고 안 사용하면 발달 안 한다는 거지. 엄마가 알코올 중독이 된 거는 별 거 없어, 자꾸 마셔서 그런 거야.


 우리가 살면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다 나 자신이 지어야 하는 책임이란다. 엄마가 늘 스스로 책임을 지라고 말하지?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만든 것이다'라는 말이 살면서 보니 딱 맞더구나.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책임지고 있는 거야.


 그리고 우리 토끼가 감정 조절이 안 될 때 엄마가 늘 하는 대처 방안이 있지? 양말 신고! 운동화 신고! 나가서 걷기! 건전하고 건강하게 불편한 기분을 조절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야.


 걷기를 하면 팔과 다리가 교차로 움직이면서 뇌가 부드럽게 변한다고 해. 생각을 유연하게 할 수 있게 되는거지. 엄마가 다른 건 몰라도 우리 토끼가 화가 났을 때 폭력적으로 터뜨리지 않고 걷기를 통해서 발산하고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습관을 들여주고 싶어.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늪에 빠졌을 때 빠져나올 수 있는 힘, 바로 회복 탄력성이야. 앞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시간 동안 엄마는 엄마 자신과 우리 토끼의 회복할 줄 아는 힘을 갖는 성장을 위해서 계속 노력을 할 거란다. 그게 바로 엄마가 공부하는 이유야. 두려움을 없애는 확실한 방법은 대상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거든.


 며칠 뒤면 엄마 술 끊은 지 1년이 된단다. 지금이라도 술을 끊고 사랑하는 나의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네가 더 커서 언제든 마음에 힘든 문제가 생기면 술이나 마약으로 도망치지 말고 엄마에게 꼭 도움을 요청하렴. 엄마가 너의 안전지대가 되어줄게.


I’m here for you & I love you








표지 그림 : Claude Monet, The Seine at Argenteuil, 1875


참고 자료

<당신의 주인은 DNA가 아니다>, 브루스 립튼, 두레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을유문화사

<공감하는 유전자>, 요아힘 바우어, 매일경제 신문사



*페닐케톤뇨증 : 근육에 경련 및 발달장애를 일으키는 상염색체성 유전 대사 질환

*킥Kick : <공감하는 유전자> 에서 발췌

*주크박스: <당신의 주인은  DNA가 아니다>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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