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Jul 23. 2023

그 좋은 걸 왜 끊어?

알밍아웃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는 것을 커밍아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졌고 그 뒤를 이어 하리수 씨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용감한 그들의 커밍아웃 덕분에 커밍아웃이라는 말 자체가 '커밍아웃'이 되어버려 사회 전반의 다양한 장면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부夫밍아웃은 연예인들이 사실은 자녀가 있음을 밝히는 것이고 덕질이라고 하는 어떤 분야의 마니아임을 밝히는 것을 덕밍아웃이라고 한다. 이처럼 자신의 숨기고 싶었던 또는 조금 특정한 정체성을 밝히고자 할 때 접미사처럼 '-밍아웃'이 따라붙는다.

 

 단주 카페에는 게시글 제목으로 '알밍아웃했어요'라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주변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자신이 알코올 중독임을 밝히고 술을 끊겠다고 선언했음을 알렸다는 글이다. 


 알밍아웃은 알코올 중독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희화화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중독임을 인정하고 공표하는 것이다. 중독의 회복에 있어서 인정 작업은 아주 중요하다. 자신이 중독임을 인정함으로써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초석이 깔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밍아웃은 결코 쉽지 않다. 알코올 중독자를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은 매섭고 싸늘하다. 자기 관리를 못해서 중독증에 걸린 한심한 인간이라는 책망 어린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서 알밍아웃을 하면 "에이~ 무슨 알코올 중독이야~누구나 다 그 정도는 먹지"라는 중독 자체를 부정하는 말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올케는 중독 전문 병원에서 근무하던 심리상담사였다. 그러한 전문가조차도 내가 몇 번이고 나의 술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토로하면 "언니가 무슨 중독이에요~~ 진짜 중독을 못 봐서 그래요~~"라며 내가 중독임을 부정했다. 


 단주 카페에는 '내일 회식인데 술자리에서 어떻게 대처하죠?'라며 조언을 구하는 글들도 올라온다. 솔직하게 알밍아웃을 해 봐야 먹히지 않으니 차라리 몸이 아파서 약을 먹는다는 이유를 대라는 댓글들이 달린다. 심지어 어떤 회원은 자신에게 있지도 않은 당뇨 때문에 술을 끊었다고 했다는 글도 보았다. 


 몇 번이고 술을 끊었다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술을 강권하는 직장 상사 때문에 힘들다는 글들도 보인다. 심지어는 정말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에 회사를 사직하고 중독 병원에 입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또는 술을 끊었다는 말을 하면 대부분 그 이유를 묻기보다는 "그 좋은 걸 왜 끊어?"라는 반응이 나온다.

 나도 21년 단주 도전 때 오랜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술을 끊었다는 말을 무심코 하게 되었는데 친구가 "그 좋은 걸 왜 끊어~?" 하는 말을 듣고 며칠을 그 말에 대해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오은영 박사는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술자리에서 누구나 다 즐겁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안 마실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알코올 중독은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심리적이고 도덕적인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었다. 50년대 60년대가 지나며 술이 뇌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이 의과학적으로 밝혀지면서 미국 의학회에서 알코올 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했다.



 알코올 중독은 뇌의 질환이다. 물론 심리적, 정신적인 문제로 술을 마시다가 중독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저 술이 좋아서 마시다가 뇌의 생화학적 구조가 바뀌어 중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알코올 중독은 무지하고, 게으르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걸리는 질환이 아니다. 우리가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중증 이상의 중독자들 외에 보통의 중독자 대다수는 말 그대로 '술만 빼면'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직업도 다양하여 대학교수, 변호사, 공무원, 의사, 어린이집 선생님, 강사, 대기업 회사원 등 여러 전문직에 종사하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술을 마시면서도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는 이런 사람들을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라고 부른다. 


 중독이 된 뇌는 술을 마시면 전두엽의 억제 기능이 멈추게 된다. 조절이 안 되기 때문에 술을 아예 마시면 안 되는데 한 잔 술이 다음 술을 부르고 필름이 끊기도록 마시게 되어 가족을 괴롭히고, 사람을 때리고, 운전을 해서 사고를 내는 것이다. 


 까다롭게 식단을 관리해야 하는 당뇨병처럼 중독 역시 평생을 관리해야 하는, 뇌의 신경계통에 이상이 생긴 질환이다.


 우울증을 생각해 보면 좀 이해가 쉬울 듯하다. 예전에는 마음이 약하고 먹고살만한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 우울증이라고 인식했다. 지금은 뇌의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의 결핍이 우울증에 걸리는 하나의 원인이라고 밝혀짐으로 인해 단순히 심약한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지고 있다. 


 힘내라, 마음을 독하게 먹어라, 바쁘게 살아라. 이런 위로를 했던 우울증이지만 이제는 마음의 감기라는 별명을 달고 필요하면 의사가 처방한 약을 먹고 상담을 병행하기도 한다.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콧물이 멈추고 기침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알코올 중독도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마음만 굳게 먹는다고 술을 조절하거나 끊고 회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노력 뿐 아니라 사회적인 이해와 지지가 필요하다. 



만약 주변에 


누군가가 "술을 끊겠다" 또는 "술을 끊었다"라고 말한다면


 "이 좋은걸 왜 끊어?" 보다는 


"응원할게"


라는 한 마디를 해주는, 보다 열린 마음의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개인적으로 소망한다. 





 





표지 사진 from Dposit photo


본문 사진 from pinterest, sober mo tribe

매거진의 이전글 술 끊은 엄마가 아들에게 쓰는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