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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관두면서 남자친구도 끊어내고 취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공부도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려고 꾸역꾸역 해야 하는 때가 와버린 거다.
납득되지 않는 걸 ‘해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꾸역꾸역 한다는 건 고역이었다. 토익 점수 만드는 건 영 엄두가 안 났고 대신 토익 스피킹은 비벼볼 만하겠다 싶어 집에서 자주 나온다는 영어 문장들을 꾸역꾸역 외웠다. HSK는 4급 정도만 간신히 땄고, 토익 스피킹은 그냥 중간에서 조금 높은 정도의 점수를 얻었다. 의욕 있게 준비했다기보단 준비하면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고 보는 게 맞겠다.(진정으로 너무나도 하기 싫었으니까...)
대기업을 다니고 있는 친오빠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나도 대기업에 다니는데 너라고 못 들어가겠냔다. 너도 할 수 있으니까 준비해보란다. 말처럼 쉬웠으면 나도 애초에 공채를 준비해봤겠지. 하지만 일단 내세울 만큼 대학교 간판이 그리 좋은 편도 아니었으며 장차 방송작가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점은 3점을 겨우 넘긴 채였다. 가진 거라곤 전부 1년을 넘기지 않는, 조각보 같은 경력들뿐이었다. 그래도 아예 경력이 없는 것보단 ‘일머리는 있겠구나’ 같은 인상은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될 것 같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렇다고 이력서 안 넣을 것도 아니었으니까. 일단 이름 좀 들어봤다 싶은 기업이면 이력서부터 내고 봤다. 하지만 죄다 서류에서 떨어졌고 딱 하나 붙었다. 당시 그 기업에서는 자신에 대해 5분 동안 발표를 하는 것으로 이력서 제출을 대신하는 ‘다이내믹 전형’이라는 게 있었다. 나이가 어려서 얼굴이 지금처럼 두껍지 않았기에 떨리긴 했지만 그나마 말하는 건 남들보다 잘한다고 생각했으니 승산이 있어 보였다. 하드보드지에 내 사진과 내 이름 이니셜을 크게 오려붙인 다음, 각각의 이니셜로 시작하는 그럴싸한 영어 키워드를 끼워맞춰 나를 어필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만 합격 통보를 받았다. 문제 푸는 센스가 없었던 건지, 노력이 부족했던 건지 인적성검사에서 바로 똑 떨어졌지만.
그때도 느꼈지만 역시 입 하난 잘 놀린다 싶었다. 이름난 기업에 들어가기엔 애매하거나 모자란 스펙인 내가 말하기로 1차 전형에 합격했다니! 이때부터 스피치 실력을 확실히 키워서 스피치 강사가 됐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때는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하고 자꾸 그만두게 되는 게 꼭 내 문제 같아서 잔뜩 위축이 됐었다. 이것도 못 버티면서 어떻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피치를 전문적으로 해? 떠들 전문 지식도 없는데 무슨 주제로 떠들 건데? 그런 걸 차근차근 만든다는 생각으로 준비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해보기도 전에 ‘이건 이래서 안 될 거야’ 하면서 지레 포기하느라 진로 탐색을 해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스피치 강사로서의 길을 개척해보려 노력했던 적이 있긴 했다. 스피치 학원의 데스크 알바를 하던 친구가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했고, 이 학원의 시스템을 익히고 나면 1:1 면접 스피치 수업부터 진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고 했다. 처우가 영 좋지 못해서 오래 일하지는 못했지만. 이래서 운과 타이밍에는 때가 있다고 하는 건가 보다. 생각해보면 그땐 의욕만 있고 자신감은 없었다. 지금은 나이가 차고, 사람을 상대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아지고, 어떻게 얘기를 해야 상대방이 잘 알아듣는지를 터득했다. 그래서 친구가 팟캐스트를 해보자는 제안을 답삭 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내가 의도한 대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그게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든, 어떠한 지식을 가르칠 때든 그렇다. 팟캐스트를 녹음할 때 농담으로 도쿄돔에서 청취자들을 모시고 팬미팅을 진행하자는 얘기를 하고는, 꼭 그런 말을 한다. “정확히 만 번 얘기하면 이뤄진다고 하잖아요. 우리 이 도쿄돔 팬미팅 얘기 만 번 채워봅시다.”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나름의 굳은 염원을 담아 이곳에도 박제해본다. 내가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