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2년이나 버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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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지


얼레벌레 영상편집을 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이 분야에 크게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 배웠으니 써먹자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지원하면서 Adobe를 배웠다는 걸 이력에 써넣었다. 한 출판사의 교육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직무에 지원했고, 6개월 인턴 근무 후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조건으로 일을 시작했다.


나처럼 특정 부서 소속인 인턴이 있는가 하면, 층 전체의 일을 보조하는 인턴도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후자의 경우는 계약 연장을 해도 최대 1년까지만 근무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였을까? 나와 같은 층에서 근무하는 층 인턴이 나를 티나게 견제하고 싫어했다. 같은 팀 부장님과 얘기하고 있으면 굳이 나를 등진 채로 끼어들어선 부장님에게 말을 건다거나, 인턴들이 소통하는 채팅방에서 ‘전화가 오면 제때 받아주세요’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아주 대놓고. (그 층에 인턴이라곤 본인과 나뿐인데...)


그땐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그 사람을 우습게 보고 말았지만, 돌이켜보면 나도 알량한 우월감이 좀 있긴 했다. 나보다 대학교도 잘 나왔다던데 결국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거구나. 영상 배우길 참 잘했다, 그러면서. 같이 일하는 팀 사람들도 좋고 일도 편하니까 그곳을 천년만년 다니고 싶었다. 나름 연봉 협상도 논리적인 이유를 대가면서 잘 했다. 바삐 일하지 않아도 이만큼의 돈을 벌 수 있다니, 이곳에 뼈를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장기근속은 역시 내 운명이 아니었다는 듯 여러 사건이 터지고야 만다. 정직원으로 전환되기 전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면담 중 이사님이 '아무런 네임밸류도 없는 강사를 데려와서 영상 콘텐츠의 기획력만으로 구독자 수 2만명을 모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은 닳고 닳아서 입발린 소리에도 제법 도가 텄지만 그땐 참 정직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그게 계기가 돼서 갑자기 1년 6개월짜리 계약직이 됐다. 인턴 근무 경험을 포함해 2년까지만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회사만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인 건지. 그곳은 뒷말이 노골적이다 싶을 만큼 많이 오갔다. 돌고 돌아 내 귀에 들어오면 화가 났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힘의 균형을 생각하며 쉬쉬하고, 제3자인 나에 대해서까지 왜곡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싫다 싫다 말했지만 아빠를 똑닮아 화가 나면 화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기에 대놓고 씩씩대면서 다녔다. 그때의 내 표정은 아마도 '뭘 쳐다봐 이 새끼들아. 구경났어?' 같은 대사가 얼굴에 쓰여 있기라도 한듯 험상궂지 않았을까.


그때 회사에 정이 떨어졌고, 계약 기간이 끝날 무렵에 모종의 이유로 연재를 중단해야 했던 팬픽을 1차 BL 소설로 바꾼 것이 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이북으로 출간되었다. 애초에 글도 충동적으로 팔아버린 것이었기에 꽤 쉽게 돈을 번 것처럼 느껴졌고, ‘어라? 이렇게 해도 돈을 벌 수 있네?’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난 뭐 발표만 하면 한 달에 몇십만 원씩은 우습게 팔릴 줄 알았지. 한참 잘못된 생각인줄도 모르고.


그래도 이 회사는 내 나름의 중요한 역사 중 하나다. 최초로 2년을 꽉 채워 다닌 회사니까. 여러 회사에서 이리저리 구른 얘기를 차차 기술해보겠지만 모든 회사를 통틀어봐도 제일 긴 근속 연수가 2년이다. 그렇다면 다른 회사는 얼마나 짧게 다녔을까? 관둔 이유는 과연 합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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