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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하나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것쯤은 귀동냥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이 정도 일은 할 수 있겠다 싶은 직종 위주로 찾아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글 좀 쓴다 하는 사람이 할 만한 일은 마케팅이었고, 출판사에서 2년 동안 일한 경력이 있으니 출판 마케터 위주로 지원했다. 출판 부수를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교육 콘텐츠를 만들었으니 이전에 일했던 출판사에서도 대충 마케팅의 영역에 종사했다고 칠 수는 있지만 역시나 마케터 직무는 아니었다. 그래서 거의 중고 신입 개념으로 소규모 출판사에 입사했다.
그곳은 에세이 위주로 책을 만드는 곳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표가 쓴 에세이를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는 곳. 분명 좋은 취지에서 쓰인 책도 있었는데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고 ‘이건 팔리지 않는 책이니 마케팅에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등한시하기 일쑤였다. 대표가 쓴 책은 크게 알맹이가 있었나 하면, 글쎄. 크게 깨달음을 얻거나, 인생에 참고가 되거나 하는 내용이 있지는 않았다. (면접 자리에 나온 게 대표인 줄도 모르고 이 책의 감상을 부정적으로 했던 것이 불미스러운 엔딩의 복선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래, 그것까지는 오케이. 잘 팔리는 것들 위주로 팔고 싶겠지. 근데 잠들어 있던 내 반골기질을 자꾸 깨우는 일이 많이 일어났다. 마케팅을 하기 위해선 당연히 그 회사의 책을 읽어야 했고, 읽으면 읽을수록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하는 의문만이 남았다. 교정교열 작업을 거치긴 한 건지 비문투성이인 데다 맞춤법 또한 처참했다. 그럴싸한 미사여구를 줄줄 늘어놓았을 뿐 알맹이 없는 문장들로 채워진 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감히 비난해보자면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독서에 이용되는 책 같은 느낌이었달지.
언제까지 개인의 취향에서 비롯된 생각일 수도 있으니 여기까지도 오케이. 하지만 대표가 친구를 데리고 와서 마케팅 팀장 자리에 덜컥 앉히고, 그 친구의 스무 살짜리 사촌동생들을 출판사 인턴으로 들이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마케팅 팀장으로 온 사람은 마케팅 관련 지식이 있긴 한가 싶을 정도로 회의 때마다 텅 빈 말만 늘어놓았다. 아는 게 없으니 초짜 마케터들이 제시하는 아이디어들을 다 좋다고만 컨펌했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마케터들을 탓했다. 사회 경험이 전무해 보이는 인턴들은 마땅한 아이디어도 없으면서 아이디어가 별로라는 말만 늘어놓았고, 심지어 주말 밤에 클럽 가서 놀다가 회사에서 잠을 자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일삼았다. 회사가 아니라 동아리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처참한 수준의 책과 팀원을 견딜 수 없었다. 입사 이틀 만에 이곳은 답이 없다는 걸 감지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나름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교정교열 수업을 듣고 있었고,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마다 책의 교정교열이 엉망이라는 얘기를 계속했다(사실이니까). 그리고는 내가 프리랜서 교정교열 담당으로 빠질 테니 나에게 책 교정교열을 맡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먼저 제안했다. 마케팅 팀장은 ‘퇴사 후에 용역계약서를 따로 작성해야 하니 퇴사 처리를 하겠다’고 했고, 난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퇴사 처리 후에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찌 보면 내 꾀에 내가 속아 넘어간 거다. 어차피 더 다닐 마음도 없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나 같은 직원을 자르고 싶었을 것 같긴 하다. 교정교열 안 해도 팔리는 책을 뭐하러 돈 들여서 교정교열씩이나 해야 하나 싶었을 테고, ‘이건 별로다’라고 직언하는 직원이었으니 얼마나 근무하는 내내 불편했겠어. 게다가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일하고 있던 기획자와 디자이너에게도 나가자고 꼬드기기까지 했으니... 그 사실을 알았다면 난 더 미움 받았을 거다. 나만 쏙 빠져나왔어도 됐는데 예나 지금이나 왜 이렇게 정의감은 쓸데없이 넘쳐서 이런 활극을 벌이는지.
그래도 잘릴 무렵 크몽에서 받은 연애편지 대필 작업이 꽤 쉽고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다. 문서 대필 프리랜서를 하면 재밌겠다 싶은 거다. 이때쯤 깨달았다. 난 어떻게든 먹고사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겁이 없어졌냐고? 아니. 회사는 갑갑한 곳이 아니라 나를 보호해주는 최소한의 울타리 역할을 한다는 걸 절절히 체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