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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이란 참 마약 같다. 형제든 옆집 또래든 비교당하면서 커온 사람이라면 인정이라는 것에 중독될 수밖에 없다. SNS 사용이 늘어나면서 인정욕구라는 말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는데, 인정에 목이 마른 나 같은 사람들은 인정욕구를 넘어 인정중독의 단계에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나더러 늘 피해의식이 있다고 했다. 타 지역 과학고에 다니는 오빠가 주말에 집으로 올 때만 아침 밥상이 푸짐해진다고 불평을 할 때마다 그런 소리를 들었다. 오빠는 나보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잘했다. 성적이 늘 전교권에 머물렀고 당연히 특목고나 자사고 진학을 준비했다. 어린 나이에 타지에서 고생하는 오빠한테 맛있는 밥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몰랐던 건 아니다. 그냥 내가 특별대우를 받지 못하는 게 서운했다. 오빠는 나보다 잘났으니까.
과학고 조기졸업-명문대-대기업 루트를 척척 밟아온 오빠는 대기업 별거 없으니 지원해보라는 말을 무슨 동네 분식점 가서 밥 먹고 오라는 것처럼 참 손쉽게도 권유했다. 일반고 3년 꽉 채워 졸업-안 명문대-소기업 루트를 밟아온 나는 서류 합격도 못했다. 오빠한테는 당연한 것들이 나한테는 더럽게 어려우니까 위축이 됐다.
다니던 회사의 계약 기간이 다 끝나갈 때쯤 웹소설 단행본 출간 계획을 따냈다. 작가 지인 생겼다며 신기해하는 친구들의 말도 감사했지만, 친구니까 그냥 해주는 ‘가짜 인정’이라고 치부했다. 나는 엄마한테 ‘진짜 인정’이 받고 싶었다. 집으로 내려가 엄마가 좋아하는 등산을 같이 하면서 말할 타이밍을 엿봤다. 중턱에 있는 정자에 앉아 오이를 나눠먹으면서 말했다.
“엄마. 내가 사실 글을 조금씩 쓰고 있었거든. 소설 하나 다 써서 어디 출판사에 냈는데 있다 아이가, 내보고 계약하자 해갖고 계약서 썼디. 종이책은 아니고 전자책인데, 요새는 사람들이 전자책 많이 본다 하더라.”
말하면서도 떨었다. 엄청나게 큰 인정을 받을 것 같아서였다. 상상 속의 엄마는 내 얘기를 듣고 ‘네가 작가가 됐냐’며 깜짝 놀라고, ‘언제 책을 또 그렇게 썼냐’며 기특해했다. 책 내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근데, 돌아오는 건 “아, 맞나.” 급의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마치 “엄마 내 내일 서울 가는 차 오후 2시 10분이데이.” 정도의 일상 대화에나 어울리는.
출간한 책은 19금 BL 소설이었다. 뭘 썼냐고 물어보면 보여줄 수 없었다. 엄마가 무슨 책이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둘러대야 할지 고민까지 했다. 그 모든 수고가 무색하게, 엄마는 딸의 작가 데뷔 소식을 일기예보보다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날 슬퍼서 좀 울었다. 왜 칭찬 안 해주지. 왜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지.
몇 년 뒤 심리상담 받을 때 이날 얘기를 하면서 정말 꺼이꺼이 울었다. 상담 선생님은 엄마의 반응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거라고 했다. 상담을 여러 번 진행하면서 왜 내가 충격‘씩이나’ 받었는지를 알아냈다. 내가 엄마한테 처음으로 인정받았던 사건이 떠오른 것이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일기 대신 ‘기아체험 난민 25시’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상문을 써가는 게 숙제였다. 전교생 공통이었으니 오빠랑 나랑 똑같은 주제로 글을 썼고, 남매가 엄마한테 나란히 숙제 검사를 받았다. 두 감상문을 읽은 엄마가 오빠를 나무랐다.
“니는 예헌이 반만 닮아봐라.”
열 살배기 딸은 엄마의 인생 첫 인정으로 알게 되었다. 아, 나는 글을 잘 쓰는구나. 그날 이후로 교내 글쓰기 대회가 있으면 열심히 칸을 채워 상을 받았다. 글쓰기를 취미로 계속해온 건 내 선택이었지만, 그 시초는 엄마의 인정이었던 거다.
상담 선생님이 엄마의 입장을 대변해줬었다. 엄마는 옛날 사람이라 단행본 분량으로 책을 써서 전자책을 내는 게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일인지 몰랐을 거라고. 한동안은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는데 이제는 이해한다. 그리고 어차피 돈이 되는 인정은 엄마가 아니라 의뢰인이나 회사가 해주는 거다. 그걸 아는데도 엄마가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게 여전히 속상하다. 뭘 얼마나 더 해야 엄마가 나를 봐줄까? 그러면서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는 내공을 쌓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걸 아는데도.
엄마가 인정을 얻어낼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되고 나면 생각보다 별거 없구나 싶어서 허무해질 것 같다. 그런데도 지금 당장은 인정이 받고 싶다. 인정중독은 나를 움직이게 하지만, 정도를 모르고 날뛰게 해서 심신을 병들게도 한다.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아’ 정도로 통달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까지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정도로만 초연해지고 싶은 건데. 언제쯤 체득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