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집에서 누워서 봐야 재미있다

05

by 비지


믿는 구석을 만들어놓고 졸업해야겠다 싶었다. 학교를 1년 휴학하고 방송작가 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 같은 과 언니가 한 일본 케이블 음악방송의 막내작가 자리가 있는데 면접을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고, 멋모르고 간 면접에 덜컥 붙었다. 그 프로그램의 MC였던 인지도 낮은 중소 남자 아이돌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자료조사를 시키기에 수월할 거라고 판단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이래서 뭐든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고)


일은 상상보다 재미있고 상상보다 빡셌다. 저녁 8시에 퇴근하면 이른 축이었고 택시 타고 집에 가는 일도 잦았다. 하루에 4시간씩 자고 나머지 20시간은 노트북을 붙들고 일을 했다. 그래도 배워서 성장한다는 게 즐거웠다. 메인작가 언니는 나를 괜찮은 작가로 만들고 싶어 했다. 보통 메인작가가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 제 후배들을 불러와 작가진을 꾸린다면서. 짤막한 하이라이트 자막을 쓸 기회를 자주 얻었고, 부족한 실력으로 채워서 내레이션 원고를 갖고 가면 언니가 빨간펜 선생님이 되어 좋은 점과 개선할 점을 세세하게 알려줬다. 이렇게 잘 배운다면 그 작가 언니처럼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까마득해서 보이지도 않는 10년 뒤, 월에 천만원은 우습게 찍는 메인작가가 된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그 프로그램의 시즌이 종료되고 나서 복학을 했다가 막학기에 아침방송 막내작가로 다시 들어갔다. 처음 만난 메인작가 언니가 아침방송에 가야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하지만 아침방송 제작사를 다니는 5개월 동안 선배들이 알려준 건 없었다. 글 쓸 기회는 더더욱 없었고, 무한정 대기하고 있다가 작가 언니들이 나를 찾으면 곧장 시키는 일을 하는 게 전부였다. 나한테 주어지는 일은 당연히 언니들이 도맡은 원고 작업보다 기약 없는 잡일이었다. 섭외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에게 싹 다 전화를 돌리고도 섭외가 안 돼서 수도권에 있는 어머니회에 전화를 돌렸다. 섭외에 응하는 사람이 생길 때까지. 기계처럼 전화를 돌리고 읍소하다 못해 전화기에 대고 굽실거리기까지 해도 섭외가 안 돼서 사촌언니나 친구한테 방송에 출연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때도 지금도 생각은 같다. 아침방송에서 일을 배우지는 못했다. 버티는 걸 배우는 곳이라고 한다면 고장 5개월 일하고 그만뒀으니 배운 것도 아니다. 경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밤낮없이 잡일하면서 냅다 구르는 게 막내작가 일이구나. 그거 하나 깨달았다. 가뜩이나 바쁜데 크리스마스 특집에 신년 특집이 연달아 겹쳤다. 이틀 동안 2시간 자고 내리 일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해롭게 일해서 얻는 게 뭘까 생각했다. 작가 언니들을 보면 항상 좋지 못한 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렸고 같이 촬영 다니는 PD님을 험담했다. 저게 내 미래의 모습이라면 난 방송작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다른 길을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다. 생방송 하루 전날이면 모든 제작진이 당연하게 다 같이 회사에서 밤을 샜다. 작가 언니들이 내레이션 대본을 완성하면 그걸 프린트해서 방송국 본사까지 뛰어가 부장님에게 원고를 전달하는 게 내 일이었다. 교양 방송의 대본을 써본 적이 없어 쉽게 말할 수 없는 건 맞지만, 초저녁부터 6-7분짜리 내레이션 원고를 쓰는데 방송 시작 2시간 전인 새벽 5시에 원고를 완성하는 게 그 당시에는 납득이 안 됐다. 저 언니가 대본을 늦게 주면 난 더 빨리 뛰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초조하게 언니들을 기다렸다.


그래도 난 달리기가 빠르니까. 기나긴 복도를 한달음에 질주하면서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두 시간짜리 생방송을 모두 마친 후에 본사 소속 작가가 놀란 얼굴로 다가와 귓속말로 그랬다. 생리가 샜다고. 화장실로 들어가 확인해보니 조금도 아니고 주먹만 한 크기로 피가 번져 있었다. 축축했을 텐데. 그것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뛰어다닌 거다.


피에 젖은 바지를 보면서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까지 몸을 던져 일하는데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 칭찬 한번 돌아오지 않았고, 외려 내 책임이 아닌 일이 내 잘못이 되어 열댓 명의 사람들 앞에서 손가락질 당하기도 했다. 방송에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 한 작가 언니의 말처럼 방송은 집에서 누워서 봐야 재밌는 거니까. 미련 없이 그만뒀다.

생고생의 연속이었던 1년 동안의 방송작가 경험은 그래도 치기 어렸던 자신감의 근거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빡센 데서도 일했는데 어딘들 적응을 못하겠어?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안 무조건 잘 버티지. 덮어놓고 자신만만해하던 스물네 살의 내가 이렇게 1년도 못 채우고 회사를 나와버리는 서른네 살의 나로 자랄 거라는 걸 예상이나 했을까. 당연하게 정착할 거라 생각했던 게으른 확신은 정착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하는 의심으로 변해버렸다. 10년 전의 내가 당연하게 그려왔던 나의 모습은 언제 현실이 되려나.



작가의 이전글인정욕구 충족의 장, 팟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