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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Apr 29. 2023

제주가게 입지는 어디가 좋을까요?

제주에서 자영업하기


오늘은 제주에서의 입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제주에는 정말 많은 카페와 식당이 있습니다. 경치 좋은 바닷가 해안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까지 사람이 올까 싶은 중산간에도 어김없이 근사한 카페나 식당이 들어서 있습니다. 시내 중심가는 당연하여 대로변뿐 아니라 골목 구석구석까지도 상가들로 꽉꽉 들어차 있지요. 음식에 자신있는 도민들 뿐 아니라 육지에서 내려온 솜씨 좋은 쟁쟁한 요리사들도 정말 많은 곳, 그곳이 바로 제주도입니다. 볼일이 있어 시내를 나갈 때나 해안도로로 드라이브할 때, 한적한 산록도로를 오를때 마주치는 카페와 음식점들을 보면서 사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에 비해 가게가 너무 많다.




출처 입력







제주는 관광도시이지요. 관광산업이 없으면 도시의 기능 자체가 마비될 만큼 관광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곳입니다.


대규모의 제조업체도 없고_삼다수와 한라산 소주 공장은 있네요._ 금융가가 몰려있는 곳도 없습니다. 일자리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몰려들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 유흥시설과 소비시설이 발달하는 상권의 이치를 감안할때 그저 제주는 산과 바다, 드문드문 오름과 밭이 다인 곳입니다. 물론 제주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가는 시청앞 정도는 고급상권이라 할수 있겠지만요.


제주로 이주하는 이들이 최근 10여년간 많이 늘었고 그로 인해 인구가 증가했다고는 하나, 이 수치는 다른 소비도시들과는 그 의미가 많이 다릅니다. 생산인구가 아닌 그야말로 자연이 좋아 이주한 인구수치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제주도민들을 타겟으로 하는 사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돈자랑하지 말아라.' 란 말이 있어요. 정말 돈 많은 사람이 많은 곳이 제주입니다.


집들을 보면 알수 있죠. 단촐한 식구끼리 살거나 별장으로 쓰이는 집인데도 궁전같은 집들에 놀라곤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소비를 하는 주체인가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소비는 육지에서 하고 그 큰 집에선 마트 장보는 정도 외에는 그저 조용히 지내시는 분들이 제 주위에도 참 많습니다. 그리하여 제주는 관광객이 없으면 굴러갈 수 없는 곳임에 분명하고 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카페와 음식점, 숙박시설은 이미 오래전부터 포화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제가 육지에서 경험한 요식업계를 보더라도 꼭 제주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도시는 도시대로 인구가 많지만 그만큼 가게들은 더 많고 또 그만큼 치열했으니까요. 육지생활에 지쳐 제주행을 다시 결정했을때 제 마음속엔 이미 그런 생각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관광객을 기대해볼 수 있는 제주는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제주의 임대료는 어떨까요?


제주는 관광 도시답게 도심과 외곽의 임대료 차이가 별로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가게자리를 보러 다니다 보면 "아, 이런 시골에 무슨 임대료가 이렇게 비싸?"라는 탄식이 절로 납니다.


제주시내에서 음식점을 해본 제 경험으로도 제주는 그럴만 합니다. 도심처럼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움직이는 인구보다 차를 타고 다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보니 오히려 주차가 가능하고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한적한 곳을 더 선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외지라 해도 얼마든지 네비 켜고 찾아갈 수 있고, 멀다 해도 그 거리가 1시간 내외기 때문에 바로 바다가 보이거나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다면 그 가치는 더 높아질수 밖에 없습니다. 한적하다고 임대료가 쌀 것이다란 생각은 이곳, 제주에선 통하지 않습니다.




육지에 살때 잠실옆 신천 먹자골목에서 잠시 가게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대학 때부터 자주 갔던 곳이었고 잠실과도 인연이 많아 익숙했던 곳이라 주저없이 가게를 임대했습니다. 권리금에 대한 부담으로 메인이 아닌 한 골목 더 들어간 곳이었지만, 전 그 골목 한 끗 차이가 그렇게 클 줄 몰랐습니다. 계약하기 전 아침저녁으로 가서 유동인구 체크를 했어야 했는데 잘 아는 상권이라는 안일함으로 덜컥 계약부터 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점심장사는 근처 오피스 손님으로 그냥저냥 됐는데, 저녁만 되면 문을 열어놔도 인적 없는 그 고요함에 놀랐습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고 보험을 해약해 임대료를 충당한 어느날 저녁, 골목을 꺽어 메인도로로 들어서는 순간 전 보았습니다. 술집과 음식점, 까페의 번쩍거리는 네온사인과 그 사이를 밀치며 지나가는 바글바글한 젊은이들을요. 그 골목 한 끗 차이, 50미터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 만큼이나 멀어 보였습니다.



육지에서는 입지가 정말 중요하죠. 오죽하면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 셋째도 입지란 말이 나올까요.


전철역 근처 상가건물 두 평짜리 점포에서 월 임대료만 400만원을 내고 음식점을 운영해봤습니다. A급 상권으로 불리는 지하철 매장 한평짜리가 월 2000만원인 곳도 봤습니다. 월 임대료만 높은 게 아니라 억단위의 권리금까지 붙어 사실 돈없이는 접근조차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런 곳들은 하지만 들어가서 장사를 해보면 알게 됩니다.


"아, 그럴만 하구나."


아주 형편없는 아이템이 아니라면 이런 곳은 들어가서 바로 수익이 나니까요. 돈이 돈을 버는 구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해갈 수 없는 어김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주에선 그만큼 유동인구가 몰리는 곳이 없기에 어찌보면 장소에 큰 차이가 없을 수 있습니다. 대신 육지에서와는 달리 고려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임대료와 권리금 외에 제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날씨'입니다.




출처 입력







무엇보다 제주는 바람이 많은 곳입니다. 날씨 좋은 날이면 한없이 편안해 보이던 해안도로도 바람불고 눈비가 쏟아지는 날 달려보면 저절로 '헉' 소리가 나옵니다. 그 바람없이 따뜻하고 좋은 날은 일년 중 사실 그리 많지도 않습니다.


누구나의 로망, 바닷가 앞 매장은 날 좋을때는 더없이 좋은 경치가 되지만, 바람 부는 날엔 문짝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황량함이 지긋지긋해지는 곳이 됩니다. 종일 윙윙대는 바람소릴 듣다보면 사람이 멍해진다고나 할까요. 요동치는 파도의 포말을 보고 있자면 공포심까지 밀려듭니다. 그런 날의 해안도로는 차도 사람도 없이 바람만 하염없이 부는 곳입니다.







대표

사진 삭제



태풍부는 제주바다_연합뉴스






모두들 바다뷰에 민감하고 그로 인해 해안가를 선호하지만, 제주는 섬이고 동서남북의 특색이 확연하며 시내와 시외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곳입니다. 그리고 제가 본 제주는 그렇습니다.






아주 경치좋은 해안가라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아주 한적한 중산간 외지라 해도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출처 입력







입지를 정할땐 대상을 도민으로 하느냐, 관광객으로 하느냐부터 정하시는 게 좋습니다. 본인의 아이템의 특성을 잘 생각하셔서 접근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시외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다면 개별고객으로 할 것인지 단체고객으로 할 것인지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들을 할 거예요.


'단체 관광객도 받고, 가족단위 손님도 받고 하려면 커야겠지. 테이블이 많아야 매출이 오르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처음부터 무리해서 규모를 늘리고 투자를 확대합니다. 하지만 아주 자금이 충분해서 초반에 마이너스를 감수하더라도 즐거울 수 있다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라면 작게 시작하길 권하고 싶습니다. 관광객들의 수요는 참으로 유동적이라 육지처럼 고정 수요가 없어 기복이 심하고, 큰 매장을 운영하기 위한 인력채용 또한 제주에선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수기와 비수기의 차이가 커서 자칫 성수기의 북적이는 사람들만 보고 판단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적어도 1년 정도는 사계절을 두루 보시고 결정하시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또 한가지, 밤장사는 수요층이 아주 한정적이라 그 부분을 특히 감안하셔야 합니다.


새벽 4~5시에 시작하는 해장국집을 제외하고, 대부분 오전 11시부터 시작해서 점심장사와 이른 저녁장사를 하고 문을 닫는 편이라 시내권을 제외하곤 밤늦게까지 문여는 곳이 없습니다. 다들 차를 갖고 움직이기 때문에 술 한잔 하고 싶어도 쉽지 않고 제주의 밤은 차량의 통행조차 뜸한 무서울만큼 캄캄한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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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제주의 밤거리_사진출처_미디어제주






따지고 보면 제주에서 입지라는 건 어찌보면 정형화된 공식이 없는 것 같아요.


종일 가게에 매여 있어야 하는 자영업자에게 제주는 그래서 그 형태가 좀 다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오후 4시까지만 영업을 하고 문을 닫는 것처럼 영업시간은 다들 제각각입니다. 비수기인 한겨울에는 과감하게 아예 문을 닫고 해외로 장기여행을 다녀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실 큰 돈 벌려고 제주에 오는 분은 없으실 거라 생각되지만_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이 계시다면 얼른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시길.._ 제주의 매력은 자신만의 컨셉이 먹히는 곳이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허접한 인테리어로 어떻게 가게 할 생각을 했지?' 하는 곳도 관광객들은 기꺼이 찾아갑니다. 그만큼 개성이 중요한 곳이라 할수 있겠네요. 그리고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소비자에 맞추기보단 사장 본인 개인취향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매력적이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며 살 수 있는 자유로운 삶.


'여유있는 삶, 저녁이 있는 삶'도 여기 제주에선 가능합니다.


대신 그만큼 내려놓을 것도 많겠지요. 돈에 대한 욕심도, 야망도, 근사한 옷차림도.


제주가 지친 이들에게 위로와 여유를 주는 것도 맞지만,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제주에서 자영업을 오래 운영할 수 있는 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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