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산책
제주에 살며 가장 친한 벗이자 동반자, 남편과의 대화를 기록해봅니다.
우리의 대화는 주로 가게가 쉬는 화요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일찌감치 나서는 드라이브와 나들이를 배경으로 합니다.
(나=나, 너=남편)
너: 오늘은 어디로 돌아볼까?
나: 당신이 원하는 대로. 어디로 가고 싶은데?
너: 우리 동쪽은 많이 갔으니까 오늘은 서귀포로 가 보자. 지난번 당신이 링크 보내준 기사에 나온 곳 찾아봐.
나: 잠깐만. 올레 7코스래. 대륜동인데?
너: 네비야, '돔베낭골'
(네비: 네, 이곳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나: 와. 여기 차박하기 좋네. 화장실도 가깝고 전망도 좋은데?
너: 그러네. 저기 올레코스 안내길있다. 따라 가보자.
나: 여보, 여기 정말 너무 멋지다. 바로 옆에 바다좀 봐. 물소리 들리는것도. 바다 옆인데 계곡물 소리가 나.
너: 와. 진짜 멋지네. 저기 바다에 섬 보인다. 길도 너무 예쁘고 바다색깔 좀 봐. 끝내주네.
나: 우리 제주에서 산지 10년 다 되어 가는데 이 길을 이제 처음 걸어보네.
너: 그니까. 맨날 차로만 다니니까 그렇지. 이렇게 걸어다니는게 정말 좋더라구. 올레길 참 매력있더라. 자주 걷자.
나: 그러자. 여보 여긴 진짜 외국인데? 제주시랑 서귀포시 차이가 정말 크지?
너: 그러게. 외국나갈 필요 없다니까. 사람들이 많이 몰라서 그렇지. 외국이 따로 없다.
나: 여보, 여기 외돌개였구나?
너: 그러네. 외돌개 코스였구나. 반대로 도니까 잘 몰랐네. 여기 정말 너무 멋지다.
나: 저기 절벽좀 봐. 장관이다.
너: 황우지 해변이 여기서 가까울 텐데? 황우지까지 가보자.
나: 좀 전에 봤어? 산책하는 노부부가 많이 보이네. 다들 여유있어 보이고 아직 짱짱하시네.
너: 확실히 여유가 있어보여. 티가 확 나네.
나: 다들 관절들도 좋으셔. 나도 이 계단은 힘들구만. 요즘은 나이든 분들이 더 짱짱한듯.
너: 힘 있으니까 여행도 다니는 거지.
나: 수학여행 온 학생들인가봐. 사복 입으니까 학생인지 아가씬지 모르겠다.
너: 요즘은 다들 빨리 성숙해서 얘들이 구분이 안가.
나: 오히려 대학생들이 화장이나 옷차림이 수수한 거 같기도 하더라.
너: 교복만 입다 여행오니 사복을 얼마나 입고 싶겠어.
나: 우리 집에도 조만간 수학여행갈 얘 있잖아. 옷 값까지 비용만 해도 부모 허리가 휜다더라. 에고.
너: 어쩌겠어. 얘들은 그게 또 추억인데.
나: 좀 전에 지나가는 얘덜 하는 말 들었지? 욕 없으면 대화 자체가 아예 안되는 걸까?
너: 난 요즘 애들 하는 말의 반도 못 알아듣겠다.
나: 혼자 있을땐 저렇게 쎄게 말하지도 못할 껄? 사람이란 단체로 있을땐 없던 힘도 나는 거 같애.
너: 그래도 애들은 애들이네. 귀엽다.
나: 당신은 수학여행 어디로 갔었어?
너: 우리는 강원도 속초. 가자마자 술먹고 정신 차려보니 2박 3일 지나 집이더라고.
나: 미치겠다. 기억나는게 없어? 난 경주로 갔었는데?
너: 서울에선 경주로 많이 왔지. 난 경상도니까 강원도로 간 거고.
나: 난 다 기억나는데.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보러가는 길이 참 길어서 다리 아프고 덥고 힘들었어.
너: 넌 참 기억도 잘한다.
나: 그런데 수학여행은 꼭 가야할까? 당신 생각은 어때? 좋은 기억이었어?
너: 술먹은 거 밖에 기억나는게 없다니까. 그냥 다 그런거지. 뭐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거.
나: 굳이 부모 허리 휘면서 수학여행을 가야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너: 나쁘지 않다면 가는게 낫지 않을까? 당시엔 그게 좋았던 거였을 꺼야. 그때 뭘 알겠어?
나: 그런가? 하긴 사진 속에선 좋아보이긴 했네.
너: 그때나 지금이나 뭐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거 같다. 세월이 변했어도.
나: 모처럼 오늘 많이 걸었다. 배고파
너: 나도 배고프다. 다리도 아프고. 우리 5km 정도 걸었을 껄?
나: 그것밖에 안돼? 6km는 되지 않을까?
너: 자꾸 거리를 늘려? 그건 그냥 당신 기분 탓일 수도 있어. 거리는 생각만큼 길지 않았을꺼야.
나: 그런가? 우리 맛있는거 먹자. 지금 먹으면 엄청 맛있을거 같애
너: 초밥 먹자.
나: 신난다. 빨랑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