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사업, 앙헬레스 그곳은 악마의 도시_1
많은 시간이 지났다.
또한 그리 많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남편은 힘겨운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들처럼 폐인의 몰골을 하고 있다.
대단한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삶의 또다른 페이지를 장식할 풍요로운 터전이 되리라 생각했던 필리핀, 그곳은 우리에게 다시는 되새기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곳으로 각인되었다.
필리핀 사업을 위해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출국한지 한달여만에 그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있는 모든 짐들을 바리바리 싸서 국제 이삿짐 센터를 통해 필리핀 앙헬레스로 보낸 것이 지난 12월 19일. 화장실 변기청소용 솔까지 알뜰하게 싸서 보내고 난 텅빈 아파트에서 그녀와 두 딸아이는 온수장판 하나에 의지한채 하룻밤을 보냈다. 저 혼자 두고 가족이 모두 필리핀으로 떠난다는 사실에 분개하며 한달동안 시위아닌 시위를 벌인 큰 딸아이는 진정국면이 되어 학교에 등교한 작은아이 없이 그 이사과정 내내 그녀의 곁을 지켜주었다. 사춘기도 아닌, 오춘기도 아닌 그보다 더한 극한 감정의 대립과정을 엄마인 그녀와 거쳤던 큰 아이는 그 즈음에는 모든 걸 받아들이고 일년후에는 꼭 오겠노라는 타협안을 수용했다. 짐을 보내놓고도 일주일동안 같은 한국땅아래에서 큰아이는 친구집으로, 그녀와 작은 아이는 그녀의 언니네 집으로 흩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떠날 날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마음은 불편하고 불안하며 우울해졌다. 예감이 좋지 않았고 굳이 여자의 육감 등을 들먹이지 않아도 지금 처한 그들의 현실은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수치와 확률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열번도 넘게 숱한 이사를 감행해오면서 이 도시 저 도시,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면서 그 어느때도 닥쳐온 시간들에 불안감이 엄습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불확실한 미래와 낯선 장소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그녀를 짓누르고 힘들게 했다. 언제나 씩씩한 척하고 어떤 도전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배전의 각오로 인생과 맞짱 떴지만 그녀 역시도 나약한 인간이었을 뿐이었다. 뒤돌아보면 처음 정착하는 시기에는 언제나 혼돈과 후회, 포기에 대한 강한 유혹을 느꼈었고 그 이후에는 새로운 장소에서의 익숙함과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오길 잘했다, 도전하길 잘했다라는 기특함이 자리했었다. 공으로 얻는 것은 없고 어차피 어떤 힘든 일도 받아들이겠다는 각오가 서 있는 상태라면 이미 결정한 부분에 대해 더이상의 망설임은 의미가 없었다. 그저 전진만이 있을 뿐.
한두번도 아닌 이제는 익숙해진 그들의 이사와 해외로의 출국에 대한 가족들의 무덤덤한 반응을 뒤로 한채 작은 아이와 그녀는 공항으로 향했다. 여덟살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식을 며칠 앞두고 유학으로 인한 장기결석계를 제출한 작은 아이는 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버스를 타자마자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든 아이의 손을 끌어다 꼭 잡으며 그녀는 망연히 어둠이 밀려오는 창밖을 바라봤다. 버스 밑 차고에는 그들의 기나긴 여행을 위한 꽉 차인 이민가방과 트렁크가 차에 흔들리며 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