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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Jun 07. 2019

호텔리어 되는줄 알았어

제주 취업_호텔에서 일하기

#프롤로그


옛날 제주는 척박하기 그지 없던 땅.

육지와 너무도 멀어 소통이 어렵고 물류도 발달되어 있지 않았지. 물론 문화적 혜택도 받기 힘들었을 거야. 쌀이 주식이었던 한국인에게 논농사는 안되고 밭농사만 가능한 곳이란 건 저주받은 땅이란 의미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말은 나면 제주도로, 사람은 나면 서울로'란 말이 생겨났을 법도 해.


시간이 많이 흘러 더이상 제주는 척박한 땅도 아니고 고립된 땅도 아닌 곳이 되었어.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들며 그들이 내는 관광세로 도 자체는 더없이 풍요로운 곳이지. 곳곳마다 예쁜 카페와 온갖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과 아름답고 편안한 숙박업소가 즐비한 곳. 그리고 이곳으로 모여든 육지인 중에는 남부럽지 않은 부자들도 정말 많아. 제주 토박이들은 두말하면 잔소리지. 아무리 척박했던 땅이라도 갖고 있던 땅이 몇십배가 되면서 땅 가진 사람 중에 부자 아닌 사람이 없거든. 그들의 자손 또한 그 혜택을 직, 간접적으로 받고 있고. 사실 제주에서 직장생활 하는 사람 중에 급여 많은 이들이 몇 없어. 여기 급여가 정말 약하거든. 물가는 육지보다 비싸고. 그럼에도 내 또래 중년이나 젊은이들 별 어려움 없이 사는 거 보면 대부분 부모 혜택 보는 사람들이 많아. 농사짓던 그들의 부모 세대에서 제주 땅 값이 오르며 덩달아 땅 부자들이 많아진 거지. 


아, 물론 우리처럼 알거지로 온 사람도 있어. 육지에서 경제적, 심적으로 거지꼴을 면치 못하고 와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들도 은근 많더라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대한민국 안에서 제주도만큼 매력적인 곳도 없지 싶어. 일단, 비행기나 배를 타야만 올수 있다는 거리감이 있지. 나를 아프게 한 이 지긋지긋한 땅을 떠나련다 하면서도 막상 떠나려면 발목을 붙잡는 여러 문제들이 있잖아. 언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는 문화적 문제 등등. 그럴때 제주는 더없이 좋은 대안이 되는 거지. 


어쨌든 예전에나 살기 척박했지 지금은 무슨 소리냐, 제주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이냐고 한다면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 예전 남양주 아파트에 살때 옆집 분들이 제주 분들이셨어. 이년 동안 살면서 이사할 때가 되어서야 부부 모두 알고보니 제주가 고향이셨는데 우리가 제주로 이사간다는 얘기에 부인되시는 분은 딱 이 한마디를 남기셨지.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제주는 돈 있으면 살기 더없이 좋고 돈 없으면 정말 살기 힘든 곳이죠."
딱 그래. 우리는 후자 쪽이었고 무언가 새롭게 해보겠다고 야심찬 마음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실상은 가진게 너무 없었지. 치열한 온라인 마켓에서 우리가 꿈꾸던 일들은 시간이 갈수록 보다 더 큰 자본을 요구했어. 봄부터 여름이 오는 시작까지는 그야말로 보릿고개였어. 마땅히 판매할만한 아이템을 찾지 못한 우리는 힘겨운 제주살이를 각오해야 했고 결국 나는 다시 취업이란 걸 했지. 나이 마흔일곱 봄에. 이건 지난 두달 동안 내가 경험한 제주의 취업에 관한 이야기야. 



#1. 첫번째 호텔_제주의 관광호텔 조식 주방장


 첫번째 직장은 눈 앞에 바다가 보이는 해안가의 오래된 관광호텔이었어. 일할 사람이 없어 급하게 사람을 구하던 곳이라 이력서도 없이 10분간의 면접만으로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을 했지. 이름도 거창한 '쉐프님'이란 낯간지러운 호칭을 달고서 말야. 

하는 일은 30여명분의 아침 조식을 준비하는 일이었어. 밥과 국, 반찬 서너가지로 구성된 음식을 혼자 다 해야 한단 소리에 첨엔 내가 잘못 들었나 했어. 뷔페기 때문에 투숙객들이 많이 먹지 않고 여지껏 한 사람이 별 탈 없이 해냈단 소리에 그럼 일단 해보겠다 했지. 조식 시간은 오전 일곱시부터 아홉시까지. 오전 다섯시까지는 출근하여 준비를 마치고 식사가 끝난 후 뒷정리까지 열시 정도면 끝날거라고 했어. 별다른 계약서도 없이 그렇게 취업은 이뤄졌고 다음날 오전 다섯시에 출근하여 인수인계를 받았어. 몹시도 지쳐보이던 지배인과 그의 와이프를 보며 요식업 계통이 다 그렇듯 한 사람이라도 일손을 보태면 좀더 편해지는 일이라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맘도 컸어. 나도 처음이 있었고 첫 식당에서 한달 동안은 눈물 콧물 다 쏟았던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 심정 이해됐거든. 물론 돈도 필요했고. 


 인수인계는 첫날로 끝났고 다음날부터 혼자만의 새벽 사투가 시작된거야. 평균 30여명이라는 인원은 점점 불어나 7~80여명이 될 때도 있었고 조금 먹는다던 외국인들은 중간중간 중국인과 한국인 손님들이 가세하면서 그 양이 늘어나기 시작했어. 무엇보다 그날의 양을 가늠할 수 없어 어떤 날은 해논 반찬을 잔뜩 버려야 할 떄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반찬과 밥이 모자라 손님들에게 원성을 들어야 했지. 혼자 해내는 조식은 아무리 반찬수가 몇가지 되지 않는다 해도 재료 손질부터 해내기엔 부담스럽고 벅찼어. 담날 걱정으로 4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날도 있었다. 메뉴 또한 정해진 것이 없어 항상 전날 메뉴를 구성하여 필요한 재료를 지배인에게 톡으로 전하곤 했어. 재고파악과 발주도 예측과 달리 변수가 많았어. 요리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먹고 난후 설겆이까지 해야 했어. 주방에서 혼자 날아다녀도 아무리 손 빠른 나라 해도 끝나고 나면 몸이 천근만근이었지. 아침 네 다섯시간만 투자하고 나머지 시간은 내 사업을 병행할 수 있겠단 계산은 일이 끝나면 지쳐 손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뻗어있는 바람에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이었어. 일하고 돌아와 노트북을 펼치면 그냥 머릿속이 멍했어. 

 

 몸도 지쳤지만 무엇보다 이 일을 그만 집어쳐야겠단 결심이 든 건 어느날 아침의 일 때문이었어. 한 떼의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온 날이었지. 오픈 시작 전부터 식당 문을 두드린 사오십대 남녀 동창생들로 구성된 이들은 등장과 동시에 담겨져 있던 반찬들을 미친듯이 접시에 담기 시작했어. 마치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누가 가져갈새라 접시에 가득가득 담더니 고추장까지 요구하며 비벼먹기까지 하더군. 한바탕 회호리가 지나가고 다음 투숙객들이 왔을때는 이미 반찬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한국어가 통하지 않는 중국과 태국 손님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 급하게 투입된 지배인 와이프까지 우리는 죄송하다며 서둘러 음식을 하고 있었는데 먹고 있던 한국인 아재가 갑자기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소리를 지르는거야.

"먹을 게 없잖아. 먹을 게."

순간 모두의 시선은 그에게 집중됐고 그는 더욱 기고만장하며 소리를 높였어. 

"나는 괜찮아. 근데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있잖아. 이게 한국 망신이지. 저 사람들이 당신들 때문에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겠어? 응?"

가뜩이나 미친듯이 먹어댄 그들이 미워죽겠고 음식하느라 땀까지 나던 나는 그의 면상을 그야말로 후려치고 싶었어. 그들이 들어와 회식하듯 늘어놓고 먹어댄 건 생각 안하는 건지. 지금 자기 접시에 그득그득 담겨있는 것들은 못 보는 건지. 게다가 시끄럽기는 시장바닥처럼 해놓고 접시란 접시는 죄다 갖다 널부러뜨려 놓고 아침부터 소주까지 까고 있는 테이블은 또 뭔지. 지금 이 상황에서 어글리 코리아가 누군지, 저 개념없는 아저씨가 혼자 왔을때도 저렇게 호기를 부리며 되도 않는 소리를 지를 수 있는지. 

아수라장에 지배인까지 불려왔고 정중히 사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배인에게는 쌍욕까지 돌아갔어. 진짜 꼴불견이었지.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나도 할말은 있었어. 그날따라 걱정이 되어 4시반에 출근하여 준비한다고 한 거지. 평소 태국인들의 양에 비하면 세배는 넘게 준비한 거였거든. 그런데 중국인도 아닌 한국인들이 그렇게 많이 먹을지는 정말 몰랐다. 모든 책임이 내게만 있을 수 없었지. 사전에 이렇게 양이 늘어날거라면 일할 사람이 한 사람 이상은 더 붙여줬어야 했어.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한계는 분명 존재했으니까. 내가 투숙객을 선택할 순 없겠지만 이렇게 교양없는 사람들을 받고 있는 그 자리가 너무 싫었고 무엇보다 얼굴이 벌개지면서도 속시원히 말 한마디 못하는 지배인을 보자니 더 화가 났어. 


 나도 이런저런 여러 업장을 운영해 봤고 그때마다 진상 내지는 까탈스런 손님들은 분명 존재했지. 그때마다 내 철칙은 하나였어. 주인인 나나 내 직원들에게 상식 이하의 교양없이 구는 손님들은 강하게 나갔지. 우리 업장에서 먹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 내 소신이었어. 내 직원에게 함부로 구는 손님도 난 참지 않았어. 그곳은 갑질하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이곳에서 밥을 하는 나도, 내가 해준 밥을 먹고 있는 너도 동등한 사람일 뿐이니까. 먹을 것이 없다면 조용히 말하면 되는 거고, 기다려 달라면 기다릴줄도 알아야 하는 거였어. 환불을 원하면 원한다 말하면 되는 거고, 나가서 먹겠다면 먹으면 되는 거였어. 밥이 모자랐다 하여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당장 누구 죽어나가는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그들이 낸 숙박료는 조식이 포함된 일인 이만원짜리 패키지 상품이었어. 돈을 적게 내고 많이 내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낸 돈이 그리도 아까울만큼 언성을 높이며 분노할만큼의 금액은 아니었단 거야. 


그날 아침의 아수라장 이후로 후임자가 오는 날까지 일을 봐 주고 미련없이 그곳을 떠났어. 싸구려 장화로 미끄러져 며칠 동안 허리를 쓰지도 못하고 뼈 마디마디 쑤시는 통증을 안고 이제는 내 본업에 충실하리란 다짐을 안고 나온 날, 하늘만큼은 더없이 맑고 따뜻한 완연한 봄이었어. 



#2. 두번째 호텔_별셋 호텔 홀매니저


 완연한 봄을 만끽함도 잠시, 본업에 보다 충실하려 해도 비어가는 통장 잔고를 보며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든 날들이 지속되었어. 결국 나는 또 다시 구인공고를 뒤지기 시작했지. 가만히 앉아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 기획과 계획을 하기에는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했거든. 대학생인 큰 애와 커가는 작은 아이를 보며 예나 지금이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절로 실감나는 봄이었어. 사업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구나 싶더라고. 

그렇게 다시 가지 않으리라던 호텔을 또다시 기웃거렸어. 이력서를 넣은 몇 곳 중에서 유일하게 연락온 곳이기도 했고, 역시 집에서 가장 가까웠고, 역시 해안가에 있어 출퇴근하는 길이 적어도 지루하진 않겠다 생각했지. 취업 사이트에 유일한 지원자가 나였던 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 또한 운이 좋았다 여기기로 했어. 이 나이에 그래도 규모가 제법 되는 호텔에 매니저가 된다는 건 남 보기에도 그리 모양새가 나빠 보이진 않았거든. 


 역시나 몹시 지쳐보이는 지배인이란 사람과 짧은 면담을 마치고 다음 날부터 일하기로 했어. 성수기라 그렇다쳐도 어쩜 이쪽 업계는 이렇게 하나같이 다들 급하게 채용하고, 하나같이 다들 피곤에 절어 있는건지 의아하긴 했지. 그 덕분에 별다른 절차 없이도 바로 일을 할수 있게 되었지만. 지난번 호텔에서 주방에 질려버린 나는 이번엔 홀 담당이란 말에 끌렸어. 역시 뷔페 주방은 여자가 할 일은 아니다 싶었거든. 군대 취사병 경력자면 모를까, 그야말로 삽으로 볶음밥을 뜰 수 있을 정도의 힘과 근력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더라고. 


 여섯시까지 출근하여 열두시 전까지는 일이 끝난다 했어. 첫날부터 규모가 있는 호텔인데다 마침 수학여행 시즌이어서 매일 학생들이 단체로 들어오더군. 첫 출근 후 보름동안은 조식에만 기본 사오백명이었으니 말 다했지. 제일 많은 날은 육백여명, 수학여행단이 들어온 날은 학생들을 위한 석식이 제공됐고 그 인원만 해도 평균 삼백명은 되었어. 첫날부터 아침일이 끝나면 집에서 쉬었다 정확히 열두시간 후인 저녁 여섯시까지 출근하여 아홉시, 열시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날의 연속이었어. 일년 중 특별한 달이고 수당은 지배인이 알아서 섭섭치 않게 챙겨주겠단 말에 난 평소 나답지 않게 금액도 묻지 않고 바로 일을 시작했어. 


호텔경력 30년에 나보다 한두살 많은 그녀를 왠지 난 믿고 싶었어. 제주도 사투리 작렬에 중국인 주방장에게 호통과 잔소리를 일갈해대는 그녀를 난 어찌보면 이해할 수 있을거 같았거든. 갱년기가 시작될 나이였고, 세명의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인 그녀를 보는 동병상련의 측은한 마음이 있었다고나 할까? 유머감각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고 얼굴은 피곤과 불만에 쪄들어 보여도 속은 여리고 착한 사람이라 봤어. 그래서 조용히 맡은 일만 열심히 했어. 이것저것 하라는 것도 평소 나답지 않게 별 불만 없이 다 했어. 내 눈에도 다들 고생하는 게 보였거든. 뭐 솔직히 말하자면 규모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나 할까? 객실 200개 정도 되는 호텔이 그리 체계가 없이 여태 굴러오지는 않았으리라는 믿음. 게다가 호텔 브로슈어에는 전국에 걸쳐 여러개의 체인이 운영중인 호텔이라는 설명까지 근사하게 박혀있었지. 이 정도면 그래도 어느정도 시스템이 있는 곳이고 이곳에서 일하는 이사라면 글로벌까진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상식은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렇게 정신없는 오월을 오전과 저녁근무까지 하며 주 6일근무로 보내고 급여날이 되었어. '섭섭치 않게 챙겨준다'란 말은 얼마를 의미할까 하면서 은근 급여를 기대했지. 오전 근무를 마치고 모처럼 바람도 쐴겸 찬란한 햇살아래 미술관으로 향하던 내 핸드폰 알람이 울렸어. 돈 들어오는 소리. 기대하며 확인한 금액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었고 난 바로 총무과에 전화를 걸어 명세서를 요구했지. 모든건 지배인인 이사의 소관이라며 잠시 후 이사에게서 문자가 왔어. 엑셀 파일을 캡쳐한 이미지 파일에는 정규급여 외에 5만원이 찍혀 있었어. 저녁 최소 3시간 이상씩 꼬박 열흘동안 더한 연장근무에 대한 액수였던 거야. 기가 막혔지.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어. 설마했거든. 이후 이사와의 통화는 이랬어.


"이 오만원은 뭔가요?"

"한달은 수습이라 원래는 없는 건데 이번달 고생해서 내가 좀더 챙겨 넣어준 거예요. 아직 한달이 안됐으니 급여는 일당으로 계산된 거고."

"제가 오월달에만 저녁근무를 꼬박 열흘, 최소 30시간 이상을 했는데 하루에 두번씩 출퇴근하며 오만원이 수당이라구요?"

"원래 다른 사람은 챙겨주지도 않아요. 워낙 일을 잘해줘서 내가 특별히 챙겨준 거지."

"지금 기름값도 안되는 이 돈이 지난 30시간의 댓가라 말씀하시는 건가요? 최저시급도 안 되는 이 돈을 지금 특별히 챙겨주신 거라고요?"

"시간으로 따박따박 계산해서 이런 식으로 요구할거면 내일부턴 같이 일 못하는 걸로 알겠어요. 처음부터 정해진 수당은 없다고 분명히 얘기해잖아요?"

"알아서 섭섭치 않게 챙겨주시겠다고 하신게 지금 이 오만원인가요? 저는 이해가 안되네요."

"그렇게 따지면 월급으로 계산하는 것도 시간당 급여로 다시 산정하는게 맞는 거예요. 다음달부턴 정규직으로 급여도 십만원 더 오를거고, 일년을 놓고 보면 지난달만 바빴던 거고 한겨울은 한가해서 일주일에 두번도 쉬어요. 나이도 많은 분이 하루에 여섯시간 일하고 어디서 그 급여를 받겠어요?"

"그렇게 따지실 거면 그냥 최저시급으로 일한 시간 다 계산해서 주세요. 그리고 자꾸 이 급여가 많다고 하시는데 굳이 따지자면 월급이라 해도 세금 빼고 나면 최저시급밖에 안돼요."

"아니 이게 어떻게 최저시급밖에 안돼요? 이 금액을 나눠보면.(계산기 두드리는 소리) 최저시급보다 많은거지."

"주휴수당은 생각 안 하세요? 주휴수당까지 하면 이 월급 알바 최저시급이예요. "

"주휴수당요? 난 여태 그런거 줘본 적이 없어요. "


더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프고 내 속만 상했어. 난 그날까지 일한 걸 정산받기로 하고 그만 일하겠노라 했어. 배신감과 귀차니즘이 몰려오더군. 잠시후 울리는 톡 알람소리.최저시급으로 계산한 숫자들의 나열. 알바로 전환하는 거니 휴무일은 무급으로 치겠다며 칼 같이 들어오는 주휴수당 제외된 계산법을 보며 난 결심했어.

'여기 안되겠구만. 정말 혼 좀 나 볼래?'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고용주로서 많은 알바들을 고용해봤어. 이동이 워낙 잦은 요식업계인 만큼 정말 별별 사람을 다 겪었지. 면접보고 출근하기로 한 날 아무 연락없이 잠수타는 건 일도 아니야. 하루 일하고 슬그머니 도망간 알바, 하루 일한 알바비 줄테니 연락달라고 하면 그제서야 사고가 있었다며 돈 달라고 연락해오는 얘들, 무슨 놈의 교통사고는 그리도 많은지 병문안 갈테니 입원한 병원 알려달라면 경미한 사고라 퇴원했다 하고, 치료비 줄테니 진단서 떼 오라 하면 그제서야 움찔하며 알바비고 뭐고 잠수타는 얘들이 부지기수였지. 하루 일하며 가르치느라 내 힘만 빼 놓고 죽상으로 시간 채우다 다음날 못하겠다, 하루 일한 알바비 달라 그것도 못마땅한데 주기로 한 시간 몇 분 지나자마자 돈 안들어왔다고 노동청 신고하겠단 얘까지. 나이 든 아줌마들이라고 다르지 않았지. 자기가 못하겠다 해 놓고 급여날까지 기다려달란 말에 당장 돈 안주면 매장내 청결상태 찍어논 사진을 인터넷에 퍼뜨리겠다 협박하는 사람까지 진짜 별별 사람을 다 겪어봤어. 


장사라는게 잘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어. 장사가 아무리 안 돼도 난 약속한 돈은 꼭 줬어. 보험을 해약하고 대출을 받아 알바비를 주급으로 지급하고 월세를 냈지. 장사가 잘돼 손님이 많은 날엔 밥 먹을 시간도 없는 직원들을 위해 빵이나 커피를 사 나르고 때 되면 휴가비를 주고 명절선물을 줬어. 필리핀에서 쫄딱 망하고 와 지하철에서 매장을 운영할 때도 지켜진 기본이었어. 

요식업이란게 그래. 배고픈 남의 입을 채워주면서도 정작 내 입은 채우지 못하는 직업, 손님에게 시달리며 더울땐 더 덥고, 추울땐 더 춥게 일하는 직업, 아무리 잘난 주인이라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직업, 여러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해낼수 없는 직업, 그런 직업이야. 내 매장에 오는 손님도 너무 소중하고 고맙지만, 이 매장을 지키고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건 내 직원들이거든. 


사장 입장에서 급여를 줘 보면 알아. 고용인 입장에서 그 동안 고용주한테 받았던 그 급여가 새삼 얼마나 소중한 돈이었던가를. 그때의 나는 그만큼의 돈 값을 했는가 새삼 돌아보게 된다. 쉬는날, 공휴일, 휴가 다 챙겨가며 따박따박 받아가던 급여, 그 급여를 때마다 따박따박 지급해야 했던 고용주의 그 쓰린 속을. 사업이 잘될 때는 모르지만, 사업이 안될땐 한 놈 한놈 직원의 머릿수마다 나를 갉아먹는 좀비로 보일 수 있다는 걸. 

내가 다시 고용주가 아닌 고용인의 입장이 되어 보니 이건 또 입장이 달라지네. 고용주의 입맛에 따라 일을 잘했던 못했던 직원으로서 따박따박 투자한 시간들은 결국 소중한 그들의 인력을 활용한 시간이며 그로 인해 사업장도 별탈없이 굴러갈 수 있었던 거야. 누가 해도 했을 일, 아마 내가 아니었다면 그 시간을 메꿔줄 다른 알바를 급하게 찾았어야 했겠지. 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도 혼자서 할수 없는 게 이 일이니까. 게다가 그동안 극성수기로 지난 오월은 어쨌든 일년 중 가장 바쁜 달이었고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던 그 과정에는 내 힘도 분명 있었음을 그들도 모르지 않을테지. 그에 대한 정당한 노동의 댓가와 더불어 나는 그동안 분명 있었을 젊은 노동 인력의 근로기준법 위반사례를 이번 기회에 바로잡고 싶어졌어.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들이 어떤 시스템이 없이 이사의 독단적 판단에 따른 것이란 점에 더욱 주목하고 싶어졌지. 컴퓨터 앞에서 주저하며 엑셀파일에 오만원을 입력했을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봐. 얼마를 할까 고민하다 얘는 나이도 있고 아직 수습이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했을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더 없이 열받는 거야. 그 기준은 그녀만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한 거였을 거고.  

그녀 역시 월급받는 월급쟁이요, 오너인 회장과 직원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중간관리자일 뿐이야. 그렇다면 고용주인 회장 입장만을 헤아리고 대변할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입장과 처우도 살펴봐야 할 책임이 있는거지. 왜냐고? 그녀 역시도 언제 어떻게 잘릴지 모를 같은 월급쟁이 처지잖아. 


없는 자들을 더욱 쥐어짜서 벌어들이는 이익에 대해 그녀 또한 일말의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고 봐. 노예처럼 부리는 중국인 인력들을 보며 나는 나의 결심에 더욱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어졌어. 쌈닭이 되긴 싫었지만 또 한번 쌈닭이 되기로 했지. 그녀를 만난 자리에서 근로기준법에 의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대우는 해줄 것을 요구했어. 돈만 따지려 든다는 그녀의 말에 난 쓴 웃음을 지었지. 난 내가 제공한 노동의 정당한 댓가를 요구한 것 뿐, 진짜 돈만 따지는 이들이 누군지, 회장을 위시해 그의 가족들까지 운영에 참여시키는 그들 패밀리에 빌붙어 충성을 바치는 당신은 어찌될지 지켜보겠노란 말을 속으로 하면서. 



#에필로그


 이제 대학교 3학년인 큰딸은 언제나 제주에는 일할 곳이 없노라 했어. 제주에서 사업만 해봤지 취업을 해보지 않았던 나는 잡사이트를 보라며 서울만 고집하는 딸아이의 편협함을 못마땅해했더랬지. 

제주로 재입도하기 전, 제주에는 월급 200이상 주는 곳이 거의 없다는 얘기를 이제는 제주도민이 다 된 아는 동생으로부터 듣고 그건 제대로 구인공고를 보지 않은 그녀의 핑게로 여겼더랬어. 

그런데 이제 나는 깨닫는다. 적어도 이곳 제주는 우리 젊은 아이들이 취업을 해서 정당한 업무를 배우고, 그에 대한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기엔 참으로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을. 

그나마 육지에서 입도하여 사업하는 사람들은 좀 나은 편이야. 제주도 토박이로써 나이든 사람 중에 정말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인력을 정당하게 쓰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 물론 일반화의 오류로써 모든 제주 본토인들을 폄하하고 싶진 않아. 다만, 내가 경험한 바로 분명한 건 제주에는 많은 변화가 필요하고 본토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육지로부터의 더 많은 이주와 변화의 바람이 필요하다는 거야. 


늦은 나이에 호텔리어로 한번 살아보나 했던 잠시의 기대는 고이 접고, 그동안 '호텔조식은 사랑'이라며 조식에 환호했던 나는 이번 기회로 호텔 조식은 쳐다도 보지 않을 것을 다짐했어. 호텔에서 자는 것 또한 역시 사양하고 싶네. 참으로 겉으로 보이는 것과 내면은 다른 게 우리 사는 인생이겠지. 먹고 사는 일은 언제나 힘든거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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