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현장 직원에서 디즈니 CEO까지
세계 최고의 판타지를 만드는 기업의 CEO는 어떤 사람일까.
책의 원제는 <THE RIDE OF A LIFETIME>. 인생의 질주? 혹은 여기는 디즈니이니까 놀이기구라고 할 수도 있겠다. 표지에는 "CEO가 직접 쓴 디즈니 제국의 비밀"이라고 소개되어있고, 번역된 책 제목은 <디즈만이 하는 것>이지만, 디즈니 CEO의 경영 비법서라기보다는 밥 아이거의 회고록에 가깝다.
ABC스포츠의 말단 직원으로 시작하여, ABC회장을 거쳐 디즈니 CEO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아이거는 자신만의 리더십을 만들어냈다. 여러 번의 직무 이동과 다양한 상사, 굵직한 4번의 인수합병 추진 등 한 업계에서의 45년간의 경험을 통해 일궈낸 디즈니 CEO로서의 원칙이 가득 담겨있다.
'방송국의 말단 직원에서 디즈니 CEO까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궤적을 어떻게 이룬 것일까.
이 책에서 읽어낸, 밥 아이거가 정의하고 있는 자신의 리더십은 '탁월함' '대담함' '진정성'이다.
1. 방송사 현장 직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다.
<완벽주의 : 탁월함을 좇는 것>
친척을 통해 현장 직원으로 ABC스포츠에 입사한 아이거는 이 곳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첫 번째 상사, '룬'을 만난다. 당시 여타의 스포츠뉴스들이 팩트만을 전달하고 있을 때, 룬은 뉴스를 스토리가 있는 하나의 콘텐츠로 획했다. 뿐만 아니라, 늘 혁신을 강조하며 당시 경외시 되던 디지털 기술을 뉴스에 적극적으로 적용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매사에 탁월함을 추구하는 인물로, 그에게 대충 일을 처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무가결하며 무조건적인 희생을 감수'하는 완벽주의가 아닌, '모든 세부 사항에서 100% 능력을 발휘'하기를 요구 했다.
그의 만트라는 간단했다. "점점 더 낫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하라" -58P-
이러한 경험은 아이거에게 완벽주의를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내가 말하는 '완벽에 대한 집요한 추구'의 의미를 좀 더 잘 이해하길 바랐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 창출하는 결과물에 개인적으로 커다란 자부심을 갖는 길이며, 완벽을 향한 본성과 그에 따라 임무를 완수하는 노동관, 둘 다 보유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60P-
나 역시 직장생활 내내 '완벽주의'와 시름해야 했다.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 한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다 나의 장점을 물었다. 나는, 일에 착수하기 전 모든 사항을 꼼꼼하게 챙겨서 일이 잘 굴러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곧장 재질문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마감일을 놓쳐버리면 어떡하죠?"
어정쩡한 답변으로 면접을 마무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나는 나의 이 '완벽주의'를 '탁월함'으로 바꾸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내가 만난 어떤 분은 내게 늘 '열심히 말고, 잘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이를 깨닫는데 약 3년이 걸렸다. 일을 문제없이 마무리짓는 것과,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것은 다르다. 탁월함을 추구하는 건 후자를 말한다.
아이거는 '룬'에게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과, 또 그를 위해서는 계속해서 혁신해야 함을 깨우쳤다.(후에 아이거는 다양한 장르의 TV 프로그램, 픽사의 디지털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한편, '룬'의 완벽 추구 성향 때문에 팀 내에서 경쟁의식이 조장되거나, 지나치게 상대를 힐난하는 것들도 목격하는데 아이거는 당시에는 이것에 크게 좌우받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리더의 자리에 올라서는 결국 '사람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2. ABC의 수장에 오르다.
<리더의 역할 : 훌륭한 리더는 훌륭한 리더를 배출시킨다>
1985년, 아이거가 ABC스포츠 부사장으로 승진한 무렵 '캡시티즈'(캐피털시티커뮤니케이션즈)가 ABC를 인수하는데, 이때 '톰 머피'와 '댄 버크', '데니스'를 만난다. 아이거는 그들을 통해 진정한 '리더의 역할'을 배운다.
대게 우리는, 리더나 혹은 상사라고 함은 '나보다 더 경력이 많은' , '나보다 아는 게 많은' 사람이 앉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업계의 관련 경력이나 기술이 많이 습득한 것이 리더의 조건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리더의 역할은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일을 처리하는 사고방식을 전수하고 팀원의 역량을 개발하는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팀원들의 역량을 파악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팀원을 신뢰하고 일을 맡기는 대담함이 필요하다.
데니스는, (중략) 그는 고위 임원들과의 회의석상에서도 종종 내게 대화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물러나 앉곤 했으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톰과 댄에게 나의 장점을 극찬하곤 했다. -75P-
톰과 댄은 이와 같은 리더십 덕목에 관한 완벽한 본보기였다. 그들은 나의 성장에 투자했고, 나의 성공을 바라는 자신들의 진심을 잘 전달했다. (중략) 내가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만 거두면 그들이 내게 더욱 큰 기회와 계획을 펼쳐 보여주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매 단계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우고 흡수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두 인물에게 깊은 충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82P-
일 잘하는 실무자와 팀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은 다르다.
본질적으로 훌륭한 리더십은 대체 불가능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준비를 갖추도록 아랫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있다. -142P-
나 역시 훌륭한 리더를 만나, 나도 모르던 내 강점을 발견하고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은 경험을 했다. A팀장님 밑에서는 그냥저냥 한 직원으로 있었던 반면, B팀장님 밑에서는 내가 하는 역할의 범위가 넓어졌고, 내가 하는 일들이 밖에서 보기에 도드라져 보였다. 팀장님이 믿고 맡긴 일에, 실망시켜드리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나에게 부여된 타이틀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종종 신입사원들이 내게 묻는다. 어떤 팀장이랑 일을 해보면 좋을지를. 그럼, 나는 '그 팀장이 대리고 있는 팀원들이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지 못 받는지를 보라'라고 답해준다. 탁월한 리더는, 또 다른 탁월한 리더를 배출시킨다.
3. 마침내 디즈니 제국을 완성시키다.
<진정성 : 우리가 일하는 대상은 사람이다>
아이거가 디즈니 CEO에 오른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스티브 잡스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전 CEO 마이클 재임 시기 틀어진 픽사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당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라이언킹에 머물러있는데 반해, 픽사는 '토이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등 애니메이션을 넘어선 크리에이티브를 펼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픽사의 인력자원과 상당한 수준이 디지털 기술, 애플의 플랫폼까지. 미래의 크리에이티브 산업이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아이거는 픽사 인수라는 초강수를 띄운다.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스티브의 인수 의향도 확실치 않을뿐더러, 디즈니 이사회의 설득을 끌어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디즈니는 과연 디즈니와 픽사의 아이덴티티가 융화될 수 있을 것인가와 더불어 높은 인수금액, 픽사는 자신들이 구축한 고유의 문화가 보존될 수 있을 것 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이거는 이 문제를 진정성으로 풀어간다. 상대의 입장도 존중은 하되, 원하는 바는 단도직입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주도해갔다. 일을 하다 보면 협상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제법 많다. 누군가를 섭외하거나 예산을 조정하거나, 광고주를 설득하거나 디자이너와 일정을 조정하는 등 사실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최대한 나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쓰지만, 있는 상황을 그대로 터놓고 담대하게 임했을 때 가장 탈이 없었다. 적어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람은 신뢰할 수 있더라.
아이거도 이 정공법으로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 21세기 폭스를 담은 최대 콘텐츠 제국을 만들 수 있었다.
매번 협상이 필요한 복잡한 쟁점이 있었고, 길고 긴 시간 동안 밀고 당기는 과정을 거쳐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결국 최종적인 계약의 성사 여부는 매번 인간적인 요소에 좌우되었다. -339P-
서문에서부터 밝히고 있듯이, 밥 아이거의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일에, 타인에게, 그리고 자신에게도 늘 정직했다. 거짓 없이 자신을 내보였으며, 진실로 다가설 줄 알았다.
사실 내 인생에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지나온 삶의 궤적들이 완벽하게 앞뒤가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의미다. 오늘이 내일로 이어졌고, 이 직무가 저 직무로 연결되었으며, 하나의 선택이 다음의 선택을 잉태했다. 이렇게 삶의 스토리라인에 일관성과 연속성이 주어질 수도 있는 것인가 -397P-
마지막으로, 책의 말미에 그동안 일을 배우고 같이 일했던 상사들과 동료들에게 감사를 전하는데, '45년 동안 만나는 모든 것에서 배우려고 한 자세'. 이게 바로 지금의 아이거를 있게한 숨겨진 방법이 아닐까 싶다.
45년 동안의 회사생활에서 나는 많은 상사의 지도를 받았다.
나를 믿어준 그들 모두를 기록하며 감사를 전한다. -414P-
ps. 기다리던 소울이 드디어 개봉했다!
책. [디즈니만이 하는 것]_로버트 아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