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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숙 Jul 17. 2016

문화를 배우며 나누는 영어

이야기와 인형극으로 외국어 공부하기

지난봄의 일이다. 

일주일에 3번 방과 후 영어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교 고학년인 남자아이에게 물었다.


"영어 좋아하니?"

"아니요. 싫어해요."

"그런데 왜 영어 학원에 다녀?"

"엄마가 다니라고 해서요. 억지로 다녀요."

.... 

그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짧은 2년 동안 서울에 살면서 영어 공부 때문에 힘들어하고 곤혹스러워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영어 공부 재미없어요." 

......


한 특별한 아이도 있었다.

엄마의 소원에 따라 기특하게도 영어 유치원에도  잘 다니고 학원에도 잘 다니며 

영어를 제법 잘 배워 오던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갑자기 초등 2학년이 되자 영어 책을 집어던졌다.

" 다시는 영어 공부하지 않겠다"라고 강하게  고집하며 떼를 썼다고 한다.

" 이를 어찌하면 좋겠냐?" 고 하소연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의 처방전은 이러했다.

 "한동안 그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여 영어 공부 쉬어도 됩니다.  강요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 엄마는 계속  불안해했다.

"어렵게 배운 영어 다 잊어버리면 어찌하나요?"

"계속 영어 공부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떡하지요?"

............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우선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과 뜻을 나누기 위함이다.

소통과 나눔을 잘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영어는 학문이 아니다.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풍습과 그 나라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고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를 먼저 알고 이해해야 한다.


식물은 해와 땅의 아이들! 아들의 초등학교 4학년 노트에서..


한국에서는 영어를 좀 더 잘 배우기 위해  많은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영어를 학습지로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초등학교 아이들은 동남아,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곳으로 영어연수를 나간다. 


장차 더 나은 조건을 얻기 위해 영어나 외국문화를 경험하고 배우겠다는 생각도 좋다.

여기에서 나는 일방향적 배움보다는 무엇인가를 서로 나눌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갈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한국 아이들과 다른 나라 아이들이 각기 주체적으로 만나 서로에게서 배울 것, 다른 것들을 찾아보고 함께 나누면서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면 아이들도 영어도 재미있게 익히면서 막연하게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보다는 왜 영어공부가 필요한가를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미국에서 짧게는 한 달에서 여러 달 동안 영어연수를 하고 한국에 돌아가는 학생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한국에 가면 영어 공부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어연수의 최대 성과는 내가 이곳에서 영어를 많이 익혔다는 것보다
왜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많이 느끼게 된 것이다.

그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여러 번에 걸쳐 한국문화를 미국 공립학교에서 소개하였다. 


내가 미국 공립학교 교실에서 진행했던 '한국 문화 배우기' 시간을 소개하면서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본다. 

가까이 지내는 미국 친구에게 입양한 한국 아이가 있는데 에미(Emy)가 콜로라도 주 볼더시에 있는 워싱턴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이 학교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이중 국어로 배우는 데 초점을 맞춘 곳이다.) 

볼더시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1학년 교과과정에는 6주 정도 아시아 문화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 담임 선생님 입장에서도 6주에 걸쳐 아시아 문화를 소개해야 하는데 정보나 경험이 부족해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에미의 담임선생님이 내 미국 친구를 통해 부탁을 해 왔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시아 문화 가운데 한국문화 만이라도 제대로 소개하고 아이들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부탁을 받고 갑자기 내가 바빠졌다


한국 이야기 들려주기


한 번은 옛날이야기 '젊어지는 샘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학교는 1학년에 세 반이 있어 두 그룹으로 나누어 두 번에 걸쳐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조용히 잘 듣는다. (영어와 한국어로 동시에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 후반부에 이웃집 욕심쟁이 할아버지가 갓난아이로 변하는 대목에서는 아이들이 낄낄대고 웃으면서 아주 좋아했다. 


붓글씨 배우기


아이들과 붓글씨를 배우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한글로 내가 써서 가고 아이들이 그것을 따라 붓으로 써 나갔다. 

아이들은 한글로 쓴 자기 이름을 보고 재미있어하면서 아주 정성스럽게 세 번, 네 번씩 써 나가면서 아주 잘 쓰고 싶어 했다. 그리고 자기가 쓴 한글 이름을 집에 가져가서 자기 엄마, 아빠에게 보여 준다고 신나 했다. 


어린이날 잔치


딸 아이네 반 아이들하고는 5월 5일 온종일 한국 "어린이날" 행사를 함께 열었다. 

오전에 한국 전래 놀이인 대문지기 놀이와 윷놀이, 제기차기, 닭싸움, 꼬리잡기 놀이를 했다. 그리고 색종이로 비행기와 배, 딱지 접기를 하였다. 아이들과 희망하는 학부모들까지 모두 볼더시에 있는 한국 식당으로 가서 한국 음식을 먹기도 하였다. 


우리 집 두 아이네 교실에서는 종종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복과 부채, 한국 사진집, 열쇠고리 따위 여러 한국 전통 물품들을 소개하고, 한국 노래를 함께 부르고, 한국말로 인사하는 것과 숫자 세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미국에서 만나는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 할 때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대화하다가 상대편의 말,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서도 알아듣는 척하는 것이다.

못 알아 들었으면 그 순간에 다시 물어보면  될 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못 알아들은 것을 감추기 위해서, 또는 영어 못하는 것을 들키는 것이 싫거나 물어보기가 겁나서 알아들는 척하게 된다. 


그런데 가끔씩 대화 가운데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말해 주시겠어요?" " Pardon me?... 

"못 알아들었어요." "I didn't follow you."


가끔씩 이런 대화를 하는  한국 사람을 보면 나도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다.

"오호! 이 사람은 알아듣는구나"

상대편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그래도 미국에 좀 오래 산 사람이다.


당신 말을 잘 못 알아 들었으니 다시 말해달라고 정중하게 말하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린다는 사실은 

경험자만이  뼛속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일이 리라!


똑 같이 못 알아들었을 때 아는 척하는 것과 못 알아들었으니 다시 한번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것.

이 두 이야기의 단순한 차이를 깨닫기까지도  최소한 몇 년씩은 걸린다는 사실이 가슴 아플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 10여 년 간 영어 공부를 한다. 그런데 왜 10 년 넘게 공부하고도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될까?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간신히 말문이 트여 용기 내어 말하려고 하면 벌써 대화의 화제는 저만치 옮겨 가고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어 공부를 일상생활에서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나 배움이 아니라

대학 입학과  취직을 위한 시험 준비로 해 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영어를 재미있게 배워나가며 외국인을 만나 소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방법이 있다. 

아이들이 시험, 성적, 숙제에 대한 압박감, 강요가 없으면 즐겁게 배워나갈 수 있다.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하고, 그 나라의 음식을 만들고 그 나라의 동화를 들으면서 재미나게 배워 나가면 좋겠다.


Two eyes to see, two ears to hear

Two feet to walk and run

Here are my hands, give yours to me

Good day everyone!


길게 멀리 보고  다른 나라의 문화, 언어에 대한 흥미, 호기심을 계속 키워나가려면 먼저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선 시험이나 강요 없이 즐겁게 배워 나가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배움이 재미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영어 배우기를 즐길 줄 알게 된다. 어린아이들이 우리말을 배워나가는 과정처럼 수 없이 즐겁게 반복하며 배워 나갈 수 있다.


모국어와 다른 영어를 배우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름과 차이를 알고, 다양성에 대한 존중의식이 형성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열린 사고의 힘,  이질적인 것의 융합을 구하는 창의력 또한 커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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