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의 발자취를 찾아
2006년 여름이었다.
미국 서부 콜로라도 주 볼더시에 살고 있던 우리 가족은 멀리 미국 동부로 큰 마음을 먹고 여행을 떠났다.
그때 우리 가족은 보스턴 시 근교에 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작은 오두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숙소를 잡았다. 그래서 그 근처를 둘러보고 월든 호수에서 수영도 하며 느릿느릿하게 여행을 즐겼다.
덕분에 데이비드 소로의 작은 오두막에서 한참 동안 단순 소박한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뼈 가까이에 있는 살이 맛있듯이 뼈 가까이의 검소한 생활도 멋진 것이다."
"내 방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우리 식구는 일주일 동안 보스턴 주변의 역사적인 곳과 주변 바닷가를 따라 여행하며 함께 하는 시간만큼 행복한 추억을 쌓아나갔다.
그러던 가운데 하루는 남편과 내가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아 나섰다. 아이들에게는 쪼금 미안했지만 장거리 여행을 떠났다.
그 날 우리는 보스턴의 숙소에서 차로 다섯 시간을 달려 메인 주의 오거스타(Augusta) 시를 지난 후에도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한참 달렸다. 우리 부부가 살고 싶은 '소박하고 조화로운 삶'을 먼저 살다 간 스콧과 헬렌 니어링이 세운 굿라이프센터(Good Life Center)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부부의 삶에 많은 영감을 준 분들이었다. 니어링 부부가 자급자족을 통한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며 생활했던, 그들이 직접 손으로 만든 집을 방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좁다란 시골길을 덜덜거리며 차로 달리니 뒤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지루했던지 우리에게 다시 물었다.
“우리 어디 가요?”
“엄마, 아빠가 읽은 책을 쓴 아저씨, 아줌마 집에 가.”
“아저씨, 아줌마를 만나는 거야?”
“아니, 그분들은 돌아가셨고, 그분들의 삶을 따르는 공동체가 운영하는 집에 가는 거야. 오늘은 엄마 아빠를 위한 여행 날이야. ”
마침내 하버사이드(Haborside) 마을 해안 외딴곳에 있는 굿라이프센터에 도착했다.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니 자원봉사자들이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에서 펴낸 스콧과 헬렌 니어링의 많은 책을 보여주고, 센터 곳곳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 열리는 공동체 모임에 꼭 오라는 초대도 받았지만 우리는 그 주말에 다시 콜로라도로 돌아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우리는 니어링 부부가 손수 지었다는 돌집, 자연채광을 이용한 온실과 채소밭, 환경친화형 야외 화장실, 음식 저장 창고 등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헬렌 니어링이 UFO를 모방해지었다는 야외 오두막에 앉아서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던 니어링 부부의 삶을 느껴 보기도 했다.
스콧은 하루 중 활동하는 열두 시간을 생계를 위한 네 시간, 배움을 위한 네 시간, 이웃과 친교 하는 네 시간으로 나눠 사는 방법을 실천했다. 나를 포함해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전 세계 여러 사람들은 그가 묵묵히 실천했던 모습을 되새기며,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기도 했다.
여행을 마치고 로키산맥 중턱으로 돌아온 남편과 나는 먼저 새로 지을 집 주변에 산책로를 내었다. 아무도 오가지 않아 폐허로 변해버린 집. 집을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길이 필요했다. 길을 내니 이웃사람들이 그 길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한 해 두 해 지나자 자연스럽게 길이 닦였다.
서양 속담에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끼리 모인다는 말이 있다.
삶을 더욱 단순 소박하게, 자유롭게 살고 싶은 꿈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그 여행길을 걸어가고 싶다.
아직은 낯선 길이겠지만 함께 가면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삶의 학교인 마을 공동체와 주변 어른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배움의 커리큘럼이다. 스콧과 헬렌이 세운 굿라이프 센터처럼 어른들이 이웃과 함께 재미있고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 가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것은 부모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행복하게 그려내는 첫 그림일 수도 있다.
나와 남편은 미국에서 우리 집 두 아이가 다닐 학교를 선택할 때도 우리 부부가 꿈꿔왔던 사회와 지역을 만드는데 함께 할 교사와 학부모가 있는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마음을 내어 학교의 활동들에 최선을 다해 참여했다. 우리는 학교 공동체 안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하면서 주변과 세상, 그리고 사람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외로울 수 있었던 타향살이는 소중한 추억으로 충만한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