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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숙 Sep 30. 2016

이야기와 함께 하는 가을 축제

용기와 지혜가 담긴 이야기

우리 식구가 미국에서 살면서 경험한 축제는 항상 계절에 따른 자연의 흐름을 새롭게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축제를 통해 맛보는 생동감과 즐거움은 우리 가족에게 시공간을 초월하는 멋진 나눔의 순간이었다. 

그 가운데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선 마이클 축제는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가을 추분기에 열린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사람들도 한여름의 뙤약볕이 수그러들고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자연스레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매년 9월 29일에 열리는 이 마이클 축제는 6세기부터 이어온 고대 축제라고 한다. 

마이클 대천사가 사나운 드래건(Dragon)과 직면했는데, 용기와 지혜로써 사나운 드래건을 순하게 길들였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이 이야기는 추분의 계절에 우리 안의 빛과 어둠이 동시에 공존하는 양면성을 받아들이고  용기를 내어 앞으로  춥고 어두운 시기를 잘 헤쳐 나가자는 지혜를 담고 있다. 


바다를 건너 모험을 떠나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공연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에서 열리는 풍요로운 수확에 감사하는 가을 축제는 함께 하는 우리들을 또 다른 즐거움으로 튼튼하게 묶어 주었다.

이 풍요로운 가을 축제날을 위해 교사, 학부모, 아이들이 정성을 모아 학교 전체를 멋진 가을 분위기로 바꾸어 낸다. 이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아이들과 부모들은 가까운 과수원으로 놀러 가 사과를 많이 딴다. 3학년 아이들은 1년 동안 닭, 토끼 등 학교 안의 동물들을 보살피며 함께 가꿔온 텃밭의 채소들을 이때 갈무리한다. 봄부터 생명 역동학적 농법으로 가꿔온 텃밭에서 딴 호박, 오이, 당근들을 마당에 놓인 탁자 위에 늘어놓고 수확의 기쁨을 맛본다. 파종에서 수확까지 땀과 정성이 담긴 수확물은 축제 때 아이들의 자랑거리다. 


이 마이클 축제는 강당에서 열리는 학교 전체 모임으로 시작된다. 모든 학년들이 축제와 관련된 노래, 율동, 이야기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다. 강당에서 나오면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준비한 야외 연극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사나운 드래건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겁을 주며 심술궂게 행동한다. 그때 하얀 말을 타고 기사가 나타나 부드럽게 달래주면 사나웠던 드래건이 공손하게 절을 한다는 상징적이고 짤막한 이야기이다. 많은 학생들이 커다란 드래건 모양의 천을 쓰고 같이 움직이며 사나운 드래건을 표현한다. 


딸아이도 그때 친구들과 드래건 역할을 맡은 자신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가을 축제 때마다 선배들의 연극을 관람하며 신기해했는데 지금은 동생들이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쭐한 기분도 들고, 친구들과 커다란 드래건 모양의 천을 쓰고 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주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백마를 타고 나타난 마이클 천사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여러 재미난 협동 게임을 한다. 많은 부모가 자원봉사로 나선다. 

커다란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빨간 사과를 띄운다. 손을 쓰지 않고 입으로 불어 사과를 건져 올리는 게임이다. 

두 팀으로 나뉘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말린 사과를 손대지 않고 먼저 따 먹는 게임도 있다.

그리고 둘씩 다리를 묶고 릴레이 달리기도 하는 협동 게임도 한다. 


밝은 빚줄기를 상징하는 황금빛 별똥별을 만든다

축제날 아이들은 주로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자연 활동을 한다. 낙엽이나 꽃잎들을 가지런히 놓고 그 위에 면 수건을 덮은 후 나무망치로 두드려 예쁜 무늬의 손수건도 만든다. 아이들은 노란 금잔화 꽃물로 염색해 실크 망토도 만든다. 그리고 유성(별똥별)도 만들어 하늘로 던지며 논다.


부모들은 축제를 준비하면서 집에서 미리 커다란 드래건 모양의 빵에서 각자 맡은 부분을 만들어 온다. 그리고 가져온 부분들을 모아 학교 앞마당의 식탁 위에서 커다란 드래건을 완성한다. 여기에 각 가정에서 준비해 온 음식들을 모두 꺼내어 다 같이 감사 노래를 부른다. 


교사, 아이, 부모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선물을 듬뿍 안겨주고 모두를 하나로 묶어준 가을 축제는 다 함께 점심을 먹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아이들은 축제를 기념하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각자의 마음에 축제의 의미를 조용히 새긴다. 그리고 노래와 시를 배우면서 교실 안팎을 청소하고 꾸미면서 축제 준비에 함께 참여한다. 그리고 자기들이 준비한 축제에 이웃들을 초대해 함께 나눈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이 가을축제에 15 년 넘게 참여하면서 새록새록 이 축제의 의미에 대한 지혜와 영감을 얻었다.  바로 삶에서 만나는 도전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 용기와 지혜로써 헤쳐나가자고....


미래는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한다. 

이 축제는 가족이 함께, 이웃이 함께, 지역사회가 함께 일상생활에서 일과 놀이의 균형을 찾아 살아가는 건강한 미래를 꿈꾸게 해 주었다. 


"20년이 지난 후에는 당신이 했던 것보다 하지 못했던 일들 때문에 더 많은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러니 당장 밧줄을 벗어던져라.
안전한 항구에서 멀리 벗어나라, 무역풍을 받으며 항해하라,
탐험하라, 꿈꾸라, 그리고 발견하라."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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