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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숙 Oct 02. 2016

인형극과 함께 하는 봄축제

회색토끼의 여행

따뜻한 봄이 올 때 내가 아이들에게 잘 들려주는 인형극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땅은 얼어붙고 추운 나날이 계속되었어요.

숲 속에 사는 동물 친구들은 여기저기를 찾아다녀도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추위와 배고픔을 묵묵히 견뎌내야 했어요.

어느 추운 겨울날 회색 토끼가 숲 속을 뛰어다니고 있을 때 배고픈 다람쥐가 다가와 물었어요.

"혹시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줄래, 나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 

회색토끼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음식을 조금 나눠주었지요.


회색토끼가 숲 속을 뛰고 있을 때 이번에는 배고픈 쥐가 다가와 부탁했어요.

"혹시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줄래, 나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 

회색토끼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음식을 또 조금 나눠주었지요.


회색 토끼는 배고픔도 잊은 채 계속해서 숲 속을 탐험하고 있었어요.

이번에는 배고픈 여우가 다가와 부탁했어요.

"혹시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줄래, 나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죽을 것 같아 " 

회색토끼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얼마 남지 않은 모든 음식을 배고픈 여우에게 주었어요.


회색토끼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회색토끼는 만약 누군가가 먹을 것을 부탁하면 '나는 이제 나눠줄 음식이 하나도 없네!' 하면서 걱정했어요.


춥고 어두운 나날이 계속되어 땅위의 모든 동물, 식물들도 어서 따뜻한 봄날이 오기를 기다렸지요. 하늘의 해님이 땅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지요.

회색토끼가 숲 속을 또 뛰어다니고 있을 때였어요. 


허름한 누더기 옷을 걸치고 아주 힘들어 보이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어요.


회색토끼는 "무슨 일이 있어요? 괜찮아요?"하고 그 아주머니에게 물었어요. 

"나는 먹을 것이 없어 며칠 동안 굶었고, 너무 추워 많이 피곤하단다. 혹시 너에게 먹을 것이 있거든 나에게 좀 나눠주겠니?" 

그 아주머니는 토끼에게 부탁했어요.


그 회색 토끼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처했어요. 

"죄송해요. 아주머니. 저도 먹을 것이 하나도 안 남았어요" 

그 회색 토끼는 자기 배고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찌해야 할지! 를 한참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말했어요.

"제가 나뭇가지들을 모아 올 테니 우선 불을 피워 몸부터 따뜻하게 해요"


그리고는 주위에서 나뭇가지들을 모아 와 정성스럽게 불을 피웠어요.

그 불이 활활 타오르자 그 아주머니는 우선 추위를 녹일 수 있어서 아주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회색토끼가 말했어요.

"이제는 내가 당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겠어요!"

이렇게 말하자마자 재빨리 그 불속으로 뛰어들었어요. 


그 회색토끼는 배고픈 아주머니를 위해 어떻게 도울 방법을 궁리하다가 아주머니에게 자기 몸을 내어주기로 한 거예요. 그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 그 회색토끼의 행동을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어요.


뜨거운 불이 사그라들어서야  아주머니는 그 토끼를 가슴에 안았어요. 

아주머니의 뜨거운 감사의 눈물과 함께 따뜻한 품 안에서 회색토끼는 하얀 토끼로 다시 태어났어요.

그 회색토끼는 아름다운 하얀 토끼로 변한 자기 모습을 보고  아주 놀랐지요.


그 가엾은 아주머니는 따뜻한 봄을 알리는 '봄의 여신'이었어요.

따뜻한 해님이 봄의 여신을 통해 봄의 시작을 알리고 싶었지요.

이제는 얼어붙은 땅위에 새싹이 다시 돋아나고, 나무들도 예쁜 꽃을 피우고, 남쪽 나라로 갔던 새들도 

다시 돌아오는 봄이 곧 올 거라고 토끼에게 이야기해주었어요. 

 

"너의 그 따뜻한 마음과 희생정신으로 

앞으로 너는 봄의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토끼가 돼주렴"


봄의 아주머니가 하얀 토끼에게 부탁했어요. 

그 하얀 토끼는 제가 어떻게 그 역할을 할 수 있냐고 물었어요. 그 아주머니는 내가 너에게 황금빛이 숨겨져 있는 계란을 새로운 탄생의 의미로 줄 테이니 이제부터 너는 사람들에게 이 계란을 전달하면서 봄의 시작과 부활의 의미를  전달하라고 했지요. 그 하얀 토끼는 즐겁게 그 역할을 수행하기로 했어요. 


하얀 토끼는 긴 여행을 시작했지요.


"봄이 왔어요. 봄이 왔어요."

"새들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꽃들은 피어나고요."

"아름다운  새싹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어요."


(이 이야기는 전해 내려오는 그리스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오스타라 여신에 대한 이야기를 토대로 인형극 공연을 하기 위해 내가 재구성하였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다시 찾아오면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에서는 즐겁게 봄축제를 연다. 

봄의 요정처럼 연두색 드레스를 입은 선생님 한 분이 바구니에 화사한 봄꽃들을 담아 아치형의 아름다운 문 앞에 서 있다. 그녀는 학부모와 지역 사회 부모들, 그리고 함께 온 아이들 모두에게 꽃 한 송이와 함께 봄 인사를 건넨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예쁜 옷을 입고 아름답게 리본 장식을 한 커다란 나무 기둥 주위에 원을 이루어 선다.  아이들이 커다란 리본 하나를 함께 잡고 나무 기둥을 둘러싸고, 부모들은 바깥으로 더 커다란 원을 이루고 지켜본다. 나무 기둥 위에는 봄을 상징하는 여러 다양한 꽃들이 장식되어 있다.


아이들은 리본을 잡고 각자의 왼쪽 친구 옆을 안팎으로 드나들어 순식간에 아름다운 매듭을 완성한다.

어른들이나 고학년들이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하면 꽃 머리띠를 두르고, 다양한 색깔의 리본을 든 어린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일정한 박자와 리듬에 따라 안으로 모였다가 바깥으로 퍼지며 기둥 주위를 맴돈다. 그러면 리본들이 저절로 나무 기둥에 예쁘게 짜여 아름다운 매듭이 생긴다. 다시 노래를 부르며 일정한 리듬에 따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예쁘게 짜였던 매듭이 하나씩 풀려 나온다.  


아름다운 5월 기둥의 춤(Maypole Dance)이 끝나면 아이들은 인근 농장에서 데려온 조랑말을 탄다. 그리고 봄맞이로 화분에 그림을 그리고 꽃씨를 심어 집으로 가져간다. 봄 요정 만들기, 나비 만들기처럼 봄 예술․수공예 활동을 하고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봄 축제는 마무리된다.


단순 소박하지만 정갈한 의식을 통해 우리는 매년 추운 겨울이 지나고 찾아온 따뜻한 봄을 감사히 환영하는 것이다. 이 축제는 함께하는 공동체 예술(Social Art)의 하나로 함께 나누는 것의 소중함, 올바른 관계 맺기, 공동체와의 유대감을 느끼며 공동체 안에서 각자가 할 일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축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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