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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리 Aug 26. 2018

날씬해질 수 있을까? (feat. 회식과 야식)

어느 회사원의 6개월 다이어트 보고서

삼국지의 유비는 촉나라에 터를 잡기 전 떠돌이처럼 돌아다닌다. 그중 4년을 신야라는 작은 성에서 보내는데, 하루는 술에 취해 화장실에 갔다가 문득 자신의 통통해진 넓적다리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전장을 떠나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 자신을 한탄하는데, 이를 비육지탄이라 한다. 올 초의 내 기분이 딱 그랬다. 작년부터 블루클럽에서 군대 가는 아이처럼 머리를 짧게 깎아도 얼굴은 더 커진 것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허리띠가 없어도 내려가지 않는 바지를 느끼며 애써 모른 척했지만, 유비의 넓적다리가 계속 떠올랐다. 유비는 화장실에서 울었지만, 나는 헛웃음만 나왔다.

대학 졸업 직후 신체검사에서 68kg였던 가냘픈 나의 몸은 10여 년의 사회생활 속에서 회식과 야식으로 이미 드래곤볼의 마인부우처럼 부풀어 올랐다. 몸무게는 최대 83kg까지 상승하며 80kg 밑으로 내려올 줄 몰랐다. 올해 초에 촬영한 복부 사진을 공개하고 싶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눈이 멀 수 있으니, 비슷한 사진으로 대신한다. 어느 날 저녁 삼겹살을 몽땅 먹고 찍은 사진인데, 정말 이 사진과 비슷하게 나왔다. 충격!

그래서 큰 마음먹고 시작했다. 회사원의 다이어트.


다이어트 준비 : 선행사건의 최소화

나의 운동을 뇌에게 알리지 말라.


주위에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들이 정말 많다. 다이어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어떤 방식으로 할지, 헬스장은 어떻게 선택할지, 개인 PT를 할지, 예쁜 운동복을 살지, 운동 기구를 사서 집에 둘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작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이 독이 된다. 뇌에게 자신이 뭔가 변화하겠다는 것을 미리 알리고 뇌를 적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려면 최대한 뇌가 모르게 조용히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우선 간단하게 3가지 실행 아이템을 만들었다.


01 헬스장 선택과 환경 만들기

일하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헬스장에 등록했다. 헬스장에서 엄청난 일을 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러닝머신과 간단한 기구들 그리고 샤워장만 체크했다. 무엇인가 준비를 해서 헬스장에 가야 하면 변화를 싫어하는 뇌가 또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몸만 가서 운동할 수 있도록 준비물을 최소화하는데 신경 썼다. 헬스장 자체에서 운동복과 수건이 나오는 것을 확인한 후 양말은 발목으로 건조가 잘 되는 것으로 준비했다. 운동 후 샤워할 때 양말을 세탁하고 말리면 다음 운동에서 신을만했다. 일단 산책을 하듯 작은 마음만 생기면 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02 운동량을 체크하고 한 줄 일기

습관을 기록만 해도 행동은 동기 부여될 수 있다. 운동량을 숫자로 보면 동기 부여될 것이라 확신하고 운동할 때마다 얼마나 했는지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운동에 대한 후기를 남겨서 조금씩 나만의 운동 스타일을 찾도록 했다.


03 운동량을 자랑하고 인정받기

캡처한 사진을 주위에 공유하고 내가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자기계발 오픈 카톡방에도 올리고 가족들에게도 보내고 친구들에게도 보내고. 매일 보내면 스팸이 될 수 있으니, 잊을만하면 보내서 내가 꾸준히 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 행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정도 습관이 자리 잡으면 누구의 인정 없이도 자기 만족감? 효능감? 만으로도 유지가 가능하다.


등록한 것 말고는 특별한 준비가 없었지만, 준비는 이렇게 끝났다. 이제 본격적인 운동 이야기를 해볼까.



1개월째 (3월) : 기저선 측정

기저선이란, 처치를 가한 상태와 비교하기 위해 측정한 일상적 또는 전형적 수준


이상했다. 누가 소문낸 것 같았다. 내가 다이어트 시작했다고. 갑자기 저녁 먹자고 연락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원래 모든 변화 프로그램은 기저선(현재 수준) 측정이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별다른 노력 없이 한 달 동안 얼마나 헬스장에 갈 수 있는지 체크했다. 역시 자기합리화의 끝판왕이다.


딱 4번 갔다. 3월 7일, 12일, 14일, 22일.

음 나는 아무런 노력 없이 헬스장에 월 4회 갈 수 있군.


(믿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나름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제 월 4회를 8회로 늘리려면 어떤 부분에 변화를 줘야 할지 고민만 하면 된다. 그래서 4번의 운동에서 남긴 한 줄 일기를 살펴봤다.


7일) 일반적으로 회사원이 회식, 간식, 야식 먹고 헬스장에 몇 번이나 올 수 있을까
12일) 3km 뛰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느껴지는데
14일) 뛸 때 너무 심심한데
22일) 돈 아까워서 왔다, 다음 달은 등록하지 말까


뭐야, 이따위가 운동 일기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기록은 빠지지 않고 했음을 칭찬하자. 어떤 후기도 도움이 된다. 기록은 진리다.


저녁은 변수가 많으니, 점심때 달리자.
25분 이내 3km 목표도 뇌를 힘들게 한다. 그냥 목표 없이 가자.
심심함을 없애기 위해 영상이나 팟캐스트를 준비하자.
그래도 가장 저렴한 곳으로 했으니, 한 달 더 가자.


남겼던 후기 옆에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주위에 알렸다.

나 이제 점심때 운동할 거야.


몸무게 79.6. 이게 바로 기저선의 위력이다. 측정만 해도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 때로는 말도 안 되게 미세하지만 측정만으로도 효과를 보는 경우도 꽤 있다.

 


2개월째 (4월) : 1차 처치

공부법도 마찬가지듯 누군가의 노하우를 그대로 따라 한다고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방식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기록이다. 기록하고 느낀 점을 반영하여 개선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스타일이 자리 잡는다.


점심때 운동하기로 한 것은 제대로 효과가 있었다. 헬스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돌발 상황도 많지 않았다.

4월 2일, 4일, 9일, 10일, 12일, 16일, 19일, 24일, 25일. 총 9회 운동. 12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점심시간에 운동했다. 후기도 한번 살펴보자.


점심시간에 하는 것이 내게 맞구나.
도장 찍듯이 찍어서 공유하는 맛이 있네. 커피 쿠폰처럼.
뛴다는 생각보다 옷을 갈아입자는 생각을 하자.
뛰는 장면이 많이 나오거나 도망 다니는 영상을 보니 더 뛰는 맛이 난다.
살이 조금 빠지면 웨이트도 좀 해야겠다.
아침을 많이 먹은 날은 운동하고 싶구나.


후기를 보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이 잡힌다고 해야 하나. 좋은 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스탬프 어플 사용을 더욱 습관화했다. 뛰는 장면이 많은 영화나 미드도 준비했다. 메이즈 러너 시리즈를 보면서 주인공들이 쫓기면 영화의 주인공처럼 미친 듯이 같이 뛰었다. 1시 즈음 배가 고프도록 아침도 과하게 먹었다.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3개월째 (5월) : 휴식

습관이 자리 잡을 때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좋은 패턴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은 실패 경험인데, 이 또한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4월에 소기의 성과를 거둔 가운데, 5월 스케줄을 미리 확인했다. 5월에는 회사에도 조금 복잡한 일이 예정되어 있었고, 본격적인 상반기 마감을 앞두고 강의가 꽤 많이 잡혀 있었다. 이럴 때 어영부영 몇 번 다른 핑계로 운동을 안 하게 되면 실패 경험이 쌓여 그동안에 쌓은 성공 경험이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행동수정 이론에서는 아예 정해놓고 휴식을 주라고 가이드한다. 뻔한 상황을 좌시하여 좌절감을 쌓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5월은 과감히 등록하지 않았다.

이 기간은 실패가 아니라 시즌 2를 위한 휴식이야!



4개월째 (6월) : 더 이상 줄지 않는 몸무게

한 달을 쉬었지만, 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미 어떤 방식이 내게 유효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던 대로 다시 시작을 하니 위화감이 없었다. 6월 5일, 7일, 11일, 14일, 18일, 20일, 21일, 22일, 25일, 27일. 총 10일.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생겼다.


1kg씩 쑥쑥 줄어들더니, 이제 줄어들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 몸무게가 줄지 않는다.
역시 다이어트는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니 지속하기 힘들구나.
운동하는 것보다 많이 먹나. 예전하고 비슷한데.


운동 갈 때마다 몸무게를 측정했는데, 처음에는 눈에 띄게 줄어들던 몸무게가 줄지 않았다. 여기가 현재의 나이와 신체 조건으로는 최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뛸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역시 키 다음으로 타고나는 것이 몸무게라더니. 몸무게 76.5. 갑자기 고정값처럼 변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이 있던 중에 처음으로 다이어트 관련 아티클들을 읽었다.

다이어트의 기본은 식습관 8, 운동 2


엥? 식습관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5:5도 아니고 8:2? 또 뻔한 이야기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을 멀리하라는 것? 그렇다면 그냥 먹고 싶은데. 좋아하는 것을 버리고 다이어트할 정도는 아니거든.



5개월째 (7월) : 식습관 관리

소는 풀만 먹는다. 풀도 소처럼 먹으면 답이 없다.


모르면 무식하다더니, 읽어보지도 않고 식습관을 거부해왔다. 알고 보니 고기보다 문제가 있는 음식들이 많았다. 본격적으로 식습관을 공부했다.


유제품을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점막의 영향 흡수 능력이 떨어진다. 우유는 산성 식품인데, 산성 식품을 먹으면 우리 몸은 알칼리성으로 중화시키기 위해 칼슘을 얻으려고 뼈의 파골 세포를 자극하고 뼈는 더 약해진다.
진짜 음식은 살아 있는 음식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특징은 몸에서 끊임없이 효소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살아 있음이란 효소가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과자와 우유를 포함한 유제품 등 공장을 거쳐 나온 인위적인 식품을 완전히 끊었다. 피자나 치킨보다는 자연의 재료로 요리가 된 음식을 먹으려 했다. 이 때다 싶어 수시로 한 잔씩 먹었던 맥주 한 캔도 아예 끊어버렸다. 수면에 방해가 되어 계속 끊어야지 생각만 했던 것을 드디어 멈췄다.


그리고 10일에 한번 정도 저녁을 먹지 않았다.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한 소화기관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늘은 반차니까 일찍 퇴근하고 내일 아침에 보자.


절대 끊을 수 없는 라테와 삼겹살만 열심히 먹고 나머지는 다 바꿨다. ㅋㅋㅋ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7월 2일, 5일, 9일, 10일, 12일, 16일, 17일, 23일, 24일, 25일, 30일. 총 11일. 여름이 다가올수록 운동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달리기는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었다.


 

절대 변하지 않던 몸무게가 다시 줄기 시작했다. 75.2. 식습관 조절은 슬슬 동기부여되었다.



6개월째(8월) : 습관의 힘

그 어느 때보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숫자로 보이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8월 3주 차까지 1일, 3일, 6일, 7일, 8일, 13일, 14일, 16일, 17일, 20일, 25일. 총 11회. 몸무게에 조금이라도 변화의 기미가 보이니, 더 자주 운동하게 되었다.


식습관 조절도 더욱 탄력 받았다. 회식에서는 여전히 씨름선수처럼 먹었지만, 다음 날은 더 열심히 러닝머신 위에서 도망가는 영화와 함께 주인공처럼 뛰었다. 그렇다면 지금 몸무게는 어떻게 되었을까?


72.9. 다이어트 시작할 때 72kg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거의 근접했다. 마인부우와 비슷했던 복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빠! 속옷 보이는데 왜 허리띠 안 해!


미안하다, 근데 아빠는 예전에도 허리띠 안 했어. 이제 허리띠가 없으면 바지가 흘러내릴 뿐.



다이어트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솔직히 이제 다이어트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느새 일상처럼 몸에 좋은 것을 먹고 점심시간에 틈틈이 달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를 닦는 것처럼. 


어떤 결심이나 목표가 실패하는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와 과욕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수준이나 능력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 로버트 마우어, 아주 작은 반복의 힘


돌이켜보면 헬스장에 가서 미드나 보자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즉, 내게는 헬스장에 가는 것이 '운동하기'가 아니라 '미드 보기'였다. 작은 실행의 힘은 뇌가 싫어하는 일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혹시 만들고 싶은 습관이 있다면 새로운 이름을 붙여보자. 그나저나 잘 안되고 있는 '물 2리터 마시기'는 뭐라고 해야 뇌가 눈치채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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