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으로 영어를 연습하는 3단계
이 글은 아이들과 영어 홈스쿨링을 하면서 읽었던 논문과 저의 경험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부모님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사설 영어 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사교육을 시킬지 말지 고민하는 것은 평생 가져가는 질문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특히 아이들 중에 한 명이 센스가 있다는 느낌이 들면,
괜한 고집으로 아이의 재능까지 망치는 것 아니야?
이런 생각까지 들 때가 있지요. 그래서 한 번 가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으로 꽤 유명한 영어학원에 들렀습니다. 친절한 선생님들은 잠시 테스트를 한다며 아이를 데리고 사라지셨죠. 잠시 후 선생님은 돌아오셔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가 그래도 집에서 영어 공부를 했나 봅니다. 하지만, Trousers 같은 일상 단어를 전혀 모르네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 말을 듣고 영어는 집에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부모님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정해진 레퍼토리가 저를 더 안도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피아노가 떠올랐습니다. 주위를 보면 피아노를 배우지 않는 아이들이 드물지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성인 또한 드물지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봅니다.
중학교 때 영어학원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영어학원을 다니지 않고 실력이 좋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누나와 아침마다 '굿모닝 팝스'를 애청했는데(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이런 프로그램이 많지 않았지요), 시간이 갈수록 영어 실력이 좋아져서 고등학교 때는 더욱 두각을 나타냅니다. 남자아이가 발음도 좋아서 더 부러웠던 것이 저의 교육 방식에도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초등학생은 성인 학습자에 비해 집중하는 시간이 짧고 인내심이 부족하여 학습 동기를 지속시키는 것이 학습의 성공에 가장 중요하다(wood, 1988).
아이들이 영어를 지속적으로 동기 부여 받으면서, 재미있게 익히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던 저의 아빠표 영어를 간략히 소개해 봅니다.
TV가 좋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TV를 계속 봅니다. 술과 담배가 해롭다는 것을 알지만 계속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TV를 보지 않으면 수명이 늘어나는 효과와 건강에 좋다는 연구가 쏟아져도 계속 봅니다. 심지어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TV가 없으면 아이들이 왕따가 된다던데요.
요즘 아이들은 YouTube를 봅니다. TV가 없어서 왕따가 되기보다는 아이들은 알려줄 사람이 생겨서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TV를 집에 두고 거의 보지 않는 것과 완전히 없는 것도 차이가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TV가 있는 상태에서 '복면가왕'과 같은 몇 가지 프로그램 만을 보았지요. 하지만 TV가 아예 없으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물론 모든 중독이 그렇듯 TV가 없어지면 금단 현상이 있습니다. 며칠간의 어색함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TV 없이 그 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그 시간들을 이용하기 위해 TV를 버리는 것은 아빠표 영어의 제일 첫 번째 필수 단계입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프로는 보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로를 못 보게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정말 부당한 일이지요. ^^ 아예 그런 일이 없도록 TV를 없애버리세요. 그리고 아이들이 볼 수 있는 매체는 영어로만 한정합니다.
시각적인 요소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문자보다 오래 기억되는 효과가 있어(Herron&Hanley, 1992), 음성적인 자극만 주어질 때보다 시각적인 영상이 함께 제공될 때 효과적인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권등환, 2003).
영어를 연습하는 시간만 영상을 볼 수 있으니, 아이들이 영어를 찾게 됩니다.
아빠, 나 페파피그(Peppa Pig) 봐도 돼요?
습관에는 항상 그 습관을 가져오는 선행사건이 있습니다. 그 습관을 둘러싼 환경과 같은 것이지요. 새벽 2시에 자면서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굳이 예능과 같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TV를 앞에 두고 아이들의 인내심을 실험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예 없애 버리고 제일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영어로 된 것으로 준비해 주세요. 좋은 환경과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TV는 이제 물려주지 않아도 될 유산이 아닐까요.
소싯적에 영어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보신 분들은 한 번 즈음 들어보셨을 겁니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을 위해 만든 것이라 발음이 깨끗하고, 비속어가 없는 좋은 문장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때 애니메이션으로 공부를 했지요.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실용적인 문장들이 많습니다.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2015)과 같은 명작들은 영어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도 도움이 됩니다.
애니메이션은 영상 매체라는 그 자체 특성으로 학습자의 관심과 흥미를 끌 수 있고, 자연스럽게 반응을 유도하는 장점이 있다(박혜란, 2005).
그래서 아빠표 영어를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영화로 공부하면 좋을까?
겨울왕국!!
그렇게 시작된 겨울왕국(Frozen, 2013) 아빠표 영어는 아이들을 완전히 얼려버렸습니다. ㅋㅋㅋ 내용은 재미있었지만, 문장은 복잡하고 말의 스피드가 너무 빨랐지요. 욕심이 과했던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체 스토리가 1시간이 넘게 러닝 되니, 답답한 진도에 성취감이 떨어지고, 반복학습을 지루해했습니다.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 시청하는 것 역시 학습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시키기 어려우며 오히려 흥미를 반감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윤정옥, 2000).
그래서 저희 아이들보다 약간 어린 외국 아이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보는지 조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페파피그(Peppa Pig), 까이유(Caillou), 사라앤덕(Sarah&Duck) 등과 같은 아이들 TV 시리즈 물을 찾았지요. 한 에피소드가 5분에서 10여분 사이로 초등학생이 끊어서 학습하기 아주 좋은 분량입니다. 또한 문장의 스피드도 아이들이 반복해서 따라 하기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또렷하고 적당한 스피드입니다.
다음 회의 에피소드 이해에 갖고 있는 배경 지식을 동원할 수 있으므로, 잘 들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유추할 수 있어 듣기에 도움이 된다(김영덕, 2005).
위의 연구처럼 아이들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들리지 않는 부분도 이해하고, 그 상황에서 들렸던 모르는 단어와 이해한 것을 매칭 하기도 합니다. 학습의 재미와 이해의 속도는 점점 빨라집니다. 혹시 아이가 영어학원 다니면서, '단어 좀 그만 외우고 싶다.', '재미없다.' 등의 이야기를 한다면 꼭 한번 시도해 보세요. 영어만이라도 재밌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 (콘텐츠 다운로드 및 활용은 socialbroker.blog.me를 참고해 주세요. 제가 아이들과 했던 내용을 일부 기록해 뒀습니다.)
어느 정도 연습이 꾸준히 되면, 아이들의 실력은 눈에 띄게 상승합니다. 뜻밖의 장면과 표현을 이해하기도 하고, 발음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을 보면 흐뭇합니다. 이때 아빠가 한번 더 넛지(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를 해줘야 합니다. 점점 쌓여가는 인풋을 아웃풋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연극놀이는 초등영어 말하기 능력의 향상에 긍정적 효과가 있으며, 영어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데 도움이 된다(황경아, 2004).
애니메이션으로 함께 연습하다 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특정 장르와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을 선택하여 아이들끼리 배역을 정하고, 배역이 부족하면 함께 참여도 합니다. 재미있는 연극놀이가 시작됩니다.
초등학교 3·4학년을 대상으로 한 연극놀이를 활용한 결과, 일반적인 듣기·말하기 수업을 했을 때 보다 영어 학습에 많은 흥미와 능력 향상을 가져왔다(고경호, 2002).
중요한 팁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선택한 장면이 아이가 좋아하면서도 영어의 수준은 조금 낮아야 합니다. 아이의 현재 수준보다 조금 더 낮은 수준의 장면을 선택하면 아이가 그 장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가 배역의 감정과 영어의 뉘앙스에 집중하는 여유가 생기고 연극놀이를 즐기게 됩니다. 너무 어려운 장면이 선택되면, 문장의 암기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성취감이 떨어질 수 있으니 이 부분을 꼭 신경 써야 합니다. 지속적인 학습의 동기부여는 재미가 필수요소입니다.
국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또래 친구들보다는 조금 늦게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꽤 재미있게 하고 있지요. 어느 EBS 다큐에서 한국의 영어 교육 방식은 "수영장에 한 번도 가지 않고 수영을 배우는 방식"이라고 하더군요. 정말 어이없는 이야기지만, 영어를 오랫동안 배운 사람으로서 웃픈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아이들에게는 조금 다른 방식과 기회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엄마표 영어가 시중에 많다 보니, 어머님들만 아이들의 영어를 돕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이때 아빠가 애니메이션과 같은 매체를 활용하여 함께 연습하고, 연습했던 문장들을 일상에서 던지면 아이들이 반응합니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가 가볍게 콜라보 할 수 있는 환경으로 아이들의 영어를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영어는 학습이 아니라 연습이고, 공부라기보다 취미처럼 할 수 있는 기회가 여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을 고민 하시는 부모님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참고문헌
양송미, 권영환(2012).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영어 수업이 초등학생의 듣기 능력 및 정의적 영역에 미치는 영향. 언어학 연구, (23), 99-122.
정윤미, 이혜경(2014). 초등 영어 교육에서 수업 내용을 재구성한 연극의 효과. 영어영문학, 19(4), 319-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