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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리 Jan 01. 2019

동물원 밖이 궁금해진 회사원

2018년의 Side Project, 조금 다른 결과가 있었던 이유

유통 영업을 하던 시절, 월 초가 되면 판매 단가와 정책을 정리하고, 월 말이 되면 월 초에 확정했던 기준으로 유통점에 정산을 진행했다. 이 일을 60개월 동안 반복하니 어느새 내 나이는 30대에 진입했고 직급도 올라가 있었지만, 일상을 돌아보면 호주에서 만났던 관상용 코알라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루틴한 나의 삶이 왠지 동물원 탓인 것만 같고 때로는 원망스러웠지만, 선뜻 동물원을 벗어날 용기도 없었다. 정글로 나가서 치열한 전투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관상용 코알라로서의 노하우도 쌓이고 살펴야 할 가족도 늘어났다. 그 무렵이었을까. 안정감과 비겁함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회사원으로서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봐 ~ 너도 똑같이 된다니까. 예전에 너 입사 초기에 저 선배를 뭐라고 생각했어.
몇 년만 더 지나 봐, 어떻게 비슷해지나.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괜한 오기가 생겼다. '난 조금 다른 코알라거든?'라고 자조했지만, 비슷한 코알라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계속 불안했다. 이런 불안감을 덜기 위해 시작한 것이 기록이었다. '관상용 코알라로서 고객을 만족시키는 법', '코알라를 움직이게 하는 사육사 리더십', '전략적인 동물원 운영법' 등 배우고 경험한 것을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러던 중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달라지면서 다른 코알라들을 동물원의 자원으로 관리하는 HR 업무를 하게 되었고, HR 업무에 대한 환상은 많은 코알라들의 퇴직 절차를 도우면서 무참히 깨졌다. 2017년 말 친한 선배의 퇴직은 한 코알라가 입사하여 늙으면 어떻게 동물원을 떠나는지 명확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조금은 다른 느낌과 방식으로 시작되었던 2018년의 10가지 성과를 정리해 본다.




01 블로그의 부활과 브런치 작가

2018년의 가장 큰 인연은 신정철 작가님, 오명석 작가님 등이 운영하는 성장판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신 작가님을 만나고 그가 나와 같은 회사원임에 놀라고, 동기부여받으면서 온라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명석님의 도움으로 8주간 꾸준히 글을 쓰면서 무덤 속에 묻혀 있던 블로그를 다시 깨웠다. 그리고 16주간의 글쓰기 이후 브런치 작가 신청.

이게 뭐라고. 동물원 안에서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홀로 너무 기쁜 마음으로 계속 글을 써 내려갔다. 덕분에 다음 포털과 페이스북 등에 노출되면서 고팠던 인정 욕구도 채울 수 있어 좋았지만, 가장 보람된 것은 글쓰기야 말로 나 자신의 앎과 됨을 객관적으로 바로 볼 수 있는 도구임을 깨달은 것. 누군가 다시 물어도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2018년에 가장 잘한 일은 성장판 모임에 합류한 것.




02 길 위의 인문학 강의, 그리고 사외강의의 증가

쌓아왔던 콘텐츠를 활용한 대외 활동을 그동안 꺼려왔다. 이유는 아무래도 그런 활동을 동물원이나 사육사가 싫어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생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선배 코알라의 자의 반 타의 반의 동물원 이탈. 나의 이탈도 그리 멀지 않았음을 감지했을까. 과거에는 없었던 적극성과 용기가 생기면서 다양한 곳에 제안서를 보냈다. 항상 교육업체의 발표를 듣고 선택했던 갑의 위치에서 절대적인 을의 위치에서 담당자들과 교육생들을 만났다.


강사님은 회사에 계시니, 이쪽 분야가 얼마나 치열한지 실감 못하시죠?
네? 저도 퇴근 후 콘텐츠도 만들고 제안서도 여러 곳에 보냅니다.
(살며시 웃음) 저는 손 편지도 받아요. 찾아오시는 분들도 진짜 많아요. 회사 밖은 정글이랍니다.


충청의 어느 연수원에서 교육 담당자가 해준 정말 고마운 이야기였다. 정글 활동을 해보니 동물원에서 외부 정글러들을 만나면 더욱 조심스러웠고 정중하려 노력했다. 회사 업무가 끝나면 철저히 정글러가 되어 더 많은 활동을 하고 더 치열하게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렇던 중 받은 한 통의 전화.


공공도서관의 길 위의 인문학 사업에 참여해 보시겠습니까?

마다할 이유가 있나. 그렇게 시작된 사외 강의들은 다양한 분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를 새로운 세계와 배움으로 이끌었다. 왜 진작에 시작하지 않았을까. 강의료가 입금된 통장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다.




03 '최고의 사내강사' 수상

사내 강의는 몇 해 전부터 해오던 일이었지만, 올해 유독 교육생들의 반응이 좋았다. 왜 그랬을까? 갑자기 강의 실력이 늘었을까? 아니다. 사내 강의를 대하는 방식과 태도가 달라졌다. 실제로 해보니 사외와 사내 강의는 큰 차이가 있다. 일단, 사내 강의는 반응이 안 좋아도 다시 요청받을 확률이 있다. 예산이나 다른 사내강사 확보가 어려우면 반응이 좋지 않았던 강사도 다시 부를 수밖에 없다. 반면 사외 강의는 한 번 아니면 다시 부를 확률이 거의 없다. 나를 다시는 부르지 않는 고등학교가 있다. 그 이유는.. 예상해 보시라. ㅋㅋㅋ


사외강의를 시작하면서 사내 강의와는 달리 경쟁자들을 의식하면서 콘텐츠를 만들고 철저하게 준비했다. 올해 사내 강의는 사외강의를 이미 했던 내용이거나, 사외강의를 하기 위해 만들어둔 콘텐츠의 시험무대였다. 당연히 다른 사내강사들과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올해 '최고의 사내강사'로 연말 시상식에 참여한다며? 비결이 뭐야?
에이~ 무슨 소리예요. 순서대로 받는 것 아니에요? 올해가 제 차례인가 보죠. ^^


미안하지만 겸손해 보이려고 그렇게 대답한 것은 아니다. 굳이 나만의 'Side Project'를 동물원 내에 알리고 싶지 않았을 뿐.




04 다이어트와 습관 프로젝트


삶은 다섯 가지 공으로 하는 저글링


어느 연설문에서 들은 좋은 이야기지만 실제로 실행은 다르다. 여전히 많은 코알라들이 밤늦게까지 동물원에서 나오지를 못한다. 올해 시작하면서 건강을 챙기기 위해 그동안 미뤘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치과 등을 포함한 병원 가기부터 다이어트까지 그냥 단순히 계획을 한 것이 아니라 병원, 헬스장을 가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할지 Contingency Plan까지 미리 수립해서 진행했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을까?

수년간 80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몸무게는 2018년 12월 31일 기준 70.2

날씬해질 수 있을까? (Feat. 회식과 야식) :https://brunch.co.kr/@socialbroker/13


그 외에도 라떼파파, 영어, 연봉 1억, 음악 등 다양한 습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전처럼 'ㅇㅇ하면 좋대'라고 해서 내 습관에 넣지 않았다. 연초에 철저하게 내가 올 한 해 하고 싶은 일을 도출하고 세부 아이템을 매일 실행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세웠던 목표와 연결되지 않으면 아이템에 넣지 않았다. 나를 언젠가는 내쫓을 동물원도 매년 초 KPI 설정, 분기 리뷰, 연말 평가를 진행하는데, 가장 소중한 나 자신을 위해 그동안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 올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보니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05 한국에서 프랑스 중산층으로 살기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나라별 중산층 기준에 대한 기사가 있다. 이 주제가 나오면 대부분 한국은 비난의 대상이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반도의 자손이라면 굳이 둘을 비교하지 않고 모든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농담이다. ㅋㅋㅋ 단지, 한국에서 프랑스 관점으로 살면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악기를 하나 시작했다.

딸아이의 피아노와 합주하겠다는 마음, 프랑스 중산층이 되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띠동갑 차이의 아이들이 즐비한 홍대 연습실에 매주 갈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의외로 동물원 아저씨를 따뜻하게 맞아준 젊은 친구들의 음악과 삶의 방식에서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위로받았다. 고마워요. 친구들. 2019년도 잘 부탁해요.




06 부모 네트워크 '소프트박스' 합류

많은 부모님들이 '대안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다. 하지만 선뜻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여전히 사회가 대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도 불안하다. 부모 세대가 받았던 교육 방식을 아이들이 그대로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들 모임에 합류했다. 부모님들 각자가 하고 있는 일, 개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Side Project들이 모이니,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아이템이 너무 많았다. 그것들을 논의하고 나누는 과정은 또 다른 Side Project의 동기부여와 아이디어로 발전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너무 고마워요.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요.




07 초등학생 독서 모임


아이들이 책을 자연스럽게 좋아할 수 있도록 돕는 독서모임도 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오래전부터 생각은 했지만, 언젠가 해야지 하고 미루는 일들이 있다. 신기한 것은 미루던 일도 소프트박스 부모님들과 함께 하면 실행에 옮기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초등학생 독서 모임.


초등학생 독서 모임 3차 후기 : http://socialbroker.blog.me/221429924189

아이들과의 독서 모임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은 아이들의 생각을 듣는 방식과 모임 사이에 이뤄지는 대화의 소재였다. 소재가 많아지니, 아이들과의 대화가 재밌어지고,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 더 흥미로워졌다.


오늘 아빠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 '슬픈 종소리' 책이 생각났어.
아빠. '잔소리 붕어빵' 책 기억나죠? 거기에 나왔던 이야기랑 같은데요.


얘들아, 처음인데 잘해줘서 고마워.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해보자.




08 애니메이션 초등 영어


앞으로 14년 후에는 학생들이 AI가 접목된 로봇 교사를 통해 교육받으며, 개별화된 수업을 통해 6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학부 과정을 마칠 수 있게 될 것 - 토머스 프레이, 미국 다빈치연구소 소장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학교가 거의 없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많다. 지식을 로봇과 1:1로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로봇을 통해 전달받을 수 있게 되면 어떤 능력이 중요하게 될까.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지 않을까.


어차피 이제 통역, 번역이 다 되니 언어가 필요 없는 것 아닌가요?


과연 그럴까? 아직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외국어에 능통하면서 일도 잘하는 엔지니어가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봐와서일까. 결국 뜻이 통하느냐와 마음이 통했느냐는 완전히 다른 이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통번역이 잘 되더라도 자신의 뜻을 직접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시작한 애니메이션 초등 영어 공부.

영화 빅 히어로 대본으로 공부하기 : http://socialbroker.blog.me/221410874454


'학원 수업에 찌든 우리 A가 다시 영어에 재미를 붙인 것 같아요'라는 어느 부모님의 피드백은 나를 뿌듯하게 했지만, 당연한 이야기 아닐까. 어머님! 어찌 재미가 없겠습니까 ㅋ 영화인데요. ^^




09 필리핀 가족여행

비행기를 오래 타지 못하는 아이들과 어디를 다녀올까 고민하던 중 영어 캠프가 있는 필리핀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를 열심히 따라 했던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아이들 수업 시간에 나만의 여유로움을 확보할 수 있기에 참여했던 영어 캠프.


Your hair is wet. Need to dry.


캠프 교사를 보고 갑자기 둘째가 꺼낸 말. 나도 기겁했지만, 주위의 부모님들이 더욱 놀랐다.


아니, 어떻게 영어 공부를 시켰길래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와요?
하하하, 글쎄요.


우리 아이가 알파벳도 잘 모르는 것은 비밀이다. ㅋㅋㅋ




10 카리타스 강의와 기부

프랑스 중산층 이야기로 다시 가보자. 6번째,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하는 것. 돌이켜 보면 봉사활동 또한 회사의 명령으로 하다 보니, 자발적으로 한 적이 별로 없다. 꼭 책을 억지로 읽혀서 책 읽기가 싫어지는 것처럼.


나이가 들면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사실일까. 불현듯 작은 것이라도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활용하여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된 카리타스 근로시설에서의 5차례 강의. 수익금의 30%를 꾸준히 기부. 소소하지만 타인을 돕는 활동의 의미와 뿌듯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진행될 수 있게 도와준 관계자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돌이켜보면 빡센 한 해였지만, 다른 해보다 유독 다양한 결과가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아인슈타인이 언급했던 광기에 대한 설명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은 다르게 보냈던 2018년이 지나고 새롭게 시작된 2019년. 올해는 어떤 'Side Project'를 만들어서 해볼까. 생각만 해도 너무 가슴이 뛰는 새해다. 물론, 동물원과 사육사들에게는 비밀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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