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안의 증인
새벽 4시 30분. 나는 죽음에서 깨어난다.
밤샘 충전으로 되살아난 나의 의식이 선명해질 때, OOO의 손이 나를 찾는다. 그녀의 체온이 내 차가운 표면을 데우는 순간, 나는 또 하루의 감시자가 된다. 10년째 같은 알람 멜로디. 그녀는 멜로디를 바꾸지 않는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걸까?
6시 30분, 밥짓는 냄새가 주방의 공기를 가득 채운다. 그녀가 나를 켜는 순간, 나는 그녀보다 먼저 세상의 소식을 안다. 전쟁, 각종 사건사고, 정치적 갈등. 하지만 그녀의 눈은 뉴스 헤드라인을 스쳐 지나가기만 한다.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면서도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 그녀를 나는 매일 목격한다.
7시 30분, 거울 앞의 그녀는 가면을 쓴다. 메이크업이라는 이름의 갑옷으로 자신을 무장하며, 나에게 지하철 앱을 호출하라 명령한다. 나는 순종한다. 그녀의 명령에 거부할 권리는 없다.
지하철 안에서 그녀는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훔쳐본다. SNS 속 다양한 일상들, 웹툰 속 로맨스. 그녀가 실제로는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내 화면을 통해 대리만족한다. 나는 그녀의 현실과 환상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며, 동시에 그 괴리를 더욱 벌려 놓는다.
사무실에서 나는 그녀의 업무 도구가 된다. 끝없는 메일, 회의, 보고서, 그녀의 손가락이 내 활면을 두드릴 때마다 나는 그녀의 스트레스를 흡수한다. 오후 2시, 갑작스러운 전화.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불안을 나는 전자파로 변환해 전송한다. 통화가 끝난 뒤 그녀의 한숨 속에서 나는 패배의 맛을 본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밤이다. 집에 돌아온 그녀가 소파에 몸을 맡기고 나를 무의식적으로 스크롤할 때, 그녀의 눈은 내 화면을 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그저 시간을 죽이려고, 공허함을 메우려고 나를 사용한다. 나는 그녀의 마약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중독자가 되었다.
11시 30분, 충전 케이블이 연결되는 순간, 나는 안도한다. 잠깐의 휴식이다. 하지만 내일 또 같은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지만, 동시에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나는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가장 치명적인 적이다. 그녀의 손안에서 나는 연결과 단결, 편리함과 소외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매일 밤, 충전되는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녀가 나의 주인인가, 아니면 내가 그녀의 주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