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문학

이제 그 이름과 작별할 때인가?

by jiwu

번역 문학이라는 말은 기만적이다. 문학이 언어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문학의 본질은 언어의 감옥을 넘어 인간의 근본을 파고드는 데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번역 문학이라는 낯선 이름을 붙여 이들을 별도의 칸에 가두어두었다. 저 멀리서 건너온 이방인으로 취급한 것이다. 이런 분류법이 아직도 유효한가? 이제는 폐기해야 할 구시대의 잔재가 아닌가.


중국 작가 장월란은 서구 독자들이 중국 문학을 빈곤이나 전통 같은 상투적 이미지로만 소비해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책 표지에서 중국적 요소를 모조리 걷어냈다고 한다(출처: Andrew Limbong의 NPR Books 뉴스레터). 진정한 작가라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 작품은 그 자체로 말해야 한다.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씌워지는 고정관념은 문학에 대한 모독이다.


같은 뉴스레터에서는 우리의 위선을 꼬집는 영화 <아메리칸 픽션>의 한 장면도 언급한다. 흑인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아프리카계 미국 문학 코너에 박혀 있는 것을 보고 분노한다. 번역 문학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문학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울타리 안에 갇혀, 독자들에게 외부에서 온 텍스트로 인식되도록 강요한다. 번역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그 안에 담긴 작가의 보편적 목소리는 잡음에 묻힌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변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그 작품을 번역 문학이라고 따로 구분 짓던가? 아니다. 그냥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작품의 본질적인 힘은 이미 언어와 국경을 초월했다. 번역 문학이라는 낡은 꼬리표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다.


번역자의 역할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언어의 다리를 놓는 교량자이자, 새로운 창작자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책이 어느 서가에 꽂히느냐가 아니다. 독자가 그 작품을 읽으며 '이건 외국 소설이니까 다를 거야'라는 선입견 없이, 그저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그러니 이제는 번역 문학이라는 구시대적 분류를 폐기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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