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도시
최근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했음에도 서울의 오래 기다리지 않는 편리한 지하철과 버스, 걸어서 갈 수 있는 마트와 크고 작은 상점들, 다양한 문화시설들이 그립다. 이사를 하고 나서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경기도의 한적하고 안전한 분위기도 나름 괜찮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뽑힌 오스트리아 빈에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곳 지하철은 아이를 안고 다니는 부모, 무거운 짐을 든 사람, 휠체어를 탄 사람 모두가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했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런 배려야말로 도시가 시민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척도다. 우리나라도 요즘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지하철 계단이 많고 엘리베이터를 찾기 어려운 곳들이 있다. 큰 짐이 있을 때면 한 번씩 불편함을 느낀다.
코펜하겐에서는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다섯 배나 많다고 한다. 시민 절반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니 부럽기만 하다. 우리나라도 자전거 도로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자전거로 출퇴근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자전거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지 않으니 인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책길을 걷다 보면 인도로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자전거를 보면 분노가 치밀다가도 그런 점을 생각하면 자전거로 인도를 주행하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아무튼 환경이 좋은 도시는 저절로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
미국 포틀랜드에 한 달 살기를 다녀온 사람의 글을 읽고선 정말 부러웠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동네마다 개성 있는 카페와 서점, 수제 맥주집들이 있어서 걸어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한다. 특히 세계 최대 독립서점인 '파월스 시티오브 북스'는 그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어 있고, 농장에서 직접 가져온 재료로 요리하는 식당들, 지역에서 만든 수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곳곳에 있다고 했다. 이런 가게들이 많다는 건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지역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우리 동네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대형마트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개성 있는 가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서울에 살 때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작은 채소가게들이 많았는데, 경기도로 이사 오니 그런 게 그립다.
좋은 도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만든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 있어도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공원을 깨끗이 사용하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작은 일들이 모여서 좋은 도시를 만든다. 포틀랜드 사람들은 직접 만들기(DIY) 문화가 발달해 있다고 한다. 토요마켓에서 직접 만든 물건들을 팔고, 지역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런 활동들이 그 도시만의 특색을 만들고,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을 높인다. 우리나라도 요즘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축제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의견을 내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면 우리 동네도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적으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는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었고, 기술력도 뛰어나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일이 남았다. 지위가 높든 낮든, 부유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시민이 존중받는 도시, 아이를 키우기 좋고 노인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도시를 꿈꿔본다. 치안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쉴 수 있으며 참여할 수 있는 도시 말이다.
좋은 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건축가나 공무원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도시는 단순히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고 싶은 곳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