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센 시대의 정치와 책임

유연한 통찰력과 협력

by jiwu

토마스 프리드만이 제시한 폴리센(Polycene) 개념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정확히 포착한다. 인공지능, 기후 위기, 국제 질서의 재편, 기술로 촘촘히 연결된 세계가 각각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거대한 체계를 이룬다. 프리드만은 이 시대를 살아가려면 '둘 다(Both/And)'라는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환경을 지키면서 경제도 살리고, 기술을 규제하면서 혁신도 촉진하는 식으로 말이다. 한쪽만 선택하려는 순간, 우리는 현실과의 접점을 잃는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여전히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 옳고 그름, 우리 편과 저편, 밀어붙이거나 막아서거나. 이런 이분법적 접근으로는 다층적으로 얽힌 문제를 풀 수 없다. 21세기 문제들은 직선이 아닌 망의 형태로 존재한다. 하나를 건드리면 열 개가 반응하고, 열 개를 동시에 조율 해야 하나가 해결된다.


정치인들이 왜 단순한 메시지에 의존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임기 내 가시적 성과로 심판받는 구조에서, 복잡한 논의는 유권자에게 닿기 어렵다. 언론은 치밀한 분석보다 선명한 대결을 원한다. 시민들도 때로는 명쾌한 답을 찾는다. 하지만 이런 구조를 알고도 거기에 편승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복합성을 감당하는 정치는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가치들을 동시에 추구한다. 효율과 공정, 경제와 환경, 안보와 평화를 대립시키지 않고 함께 작동시키는 방법을 찾는다. 이는 타협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종합이다. 정치인의 진짜 역할을 바로 이 어려운 조율을 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많은 정치인들은 승리의 수사학만 구사한다.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지지자를 결집시키고, 문제를 푸는 것보다 책임을 돌리는 데 몰두한다. 이런 행태가 반복될수록 사회는 더 깊이 분열되고, 협력을 위한 토양은 메마른다. 정작 폴리센의 복잡한 위기를 풀어야 할 이들이 위기를 더 키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덕목은 '유연한 통찰력'이다.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갖되, 새로운 정보 앞에서 그것을 수정할 줄 아는 지적 유연성.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전제에게 출발할 때 비로소 타인의 견해를 진지하게 들을 수 있다. 연구자의 엄밀함, 시민의 겸손함, 예술가의 상상력을 두루 갖춘 정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처럼 들리지만, 우리가 그것을 요구하고 지지할 때 가능성은 열린다.


일반 시민인 우리가 세금을 내며 정치인들에게 월급을 주는 까닭은 바로 이런 일을 해주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당장의 인기보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지지율보다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우선하는 것. 이는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정치인의 직업적 의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그런 정치를 지지하고 보상할 대, 그렇게 행동하는 정치인도 늘어난다. 지금 우리 정치에 가능 부족한 것은 기술이나 전략이 아니라 품위다. 그 품위는 정치인 혼자 만들 수 없고, 시민이 함께 요구하고 지켜낼 때 자리 잡는다.


폴리센은 본질적으로 협력을 요구한다. 누구도 혼자 옳을 수 없고, 누구도 혼자 살아남지 못한다. 이제 적과 동지를 나누는 언어 대신, 함께 문제를 푸는 언어를 배워야 한다. 상대방을 제거 대상이 아닌 협력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복잡성의 시대를 통과하는 유일한 경로라는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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