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 소설에는 성공한 이민자가 없을까

부커상 수상작 기사를 읽고 든 의문

by jiwu

2025년 부커상은 데이비즈 솔로이의 "플레시(Flesh)"가 받았다. 검색해 보니, 헝가리 주택 단지에서 자란 청년이 이라크 전쟁을 거쳐 런던 상류층에 진입했다가 몰락하는 이야기란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이 남성성, 권력, 계급, 이주, 정체성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고 평가했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아무튼 이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한국에도 이런 소설이 있을까? 외국인이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고 몰락하는 이야기. 교보문고와 알라딘을 살펴봐도 없고, 구글 검색을 해도 없고, AI에게 물어봐도 없단다.


이주 노동자를 다룬 김재영의 "코끼리" 같은 작품들은 있다. 그런데 이들 소설에서 이주민은 차별받고, 착취당하고, 배제되는 존재로 등장한다.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는 작품들이지만, 이주민은 '도움이 필요하거나 불쌍한' 존재로만 그려진다. 성공한 이주민, 야망을 품은 이주민, 한국 사회 최상층으로 올라가려는 이주민을 없다. 왜일까?

한국에 이런 이야기가 없는 이유는 뭘까? 우선, 현실에 그런 사례가 없어서다. 전체 인구의 5%가량을 구성하는 이들 중에서 전문직이나 경영진으로 올라간 사례가 얼마나 될까? 손에 꼽을 정도이지 않을까. 둘째, 한국 사회 자체가 폐쇄적이다. 한국인도 계층 이동이 어려운 상황인데, 외국인에게는 아예 사다리가 없다고 봐야 한다. 언어, 학력, 인맥, 자본의 벽이 높다. 셋째, 작가들이 이주민을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주민과 깊은 관계를 맺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주민의 내면, 욕망, 좌절을 섬세하게 그려낼 만큼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상태이지 않을까?


"플레시"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이민자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 거다. 주인공이 영국 사회 최상층부에 올라가고 무너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욕망, 권력, 계급의 민낯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피해자가 아니다. 야망도 있고, 약점도 있는 복잡한 인간이다. 그의 성공과 몰락을 통해 독자는 영국 사회의 계층 구조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된다.


앞으로는 이런 소설이 나올 것 같기는 하다. OECD는 이주인구가 5%를 넘으면 다문화 국가로 분류한다. 한국도 이제 곧 5%를 넘길 것이고, 이주민 2세와 3세가 자라나면서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또한 2025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한국계 미국인 작가 수전 최가 올랐던 것을 보면, 해외 한국계 작가들의 성과가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문학이 개인의 욕망을 다루는 데 익숙해지는 현상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뭘까? 외국 작가가 아닌 한국 작가가 외국 출신 인물을 통해 한국 사회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시선이야말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이주민과의 접촉도 늘어야 하겠지만 한국 사회가 이주민에게 실제로 기회를 열어줘야 하지 않을까. 현실이 변해야 문학도 변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5%가량이 이주 배경을 가진 시대다. 그들의 성공과 몰락, 욕망과 좌절을 다룬 문학이 없다는 건 한국 문학에 공백이 있다는 뜻이다.


"플레시" 같은 작품이 한국 문학에서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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