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조선일보에 실린 루센트블록 허세영 대표가 겪은 좌절에 관한 짧은 기사를 읽고 "허 대표의 주장이 정말 사실일까?"라는 의문이 생겨 좀 찾아봤다.
2018년 설립된 조각투자 플랫폼 루센트블록의 허세영 대표는 자신의 회사가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서비스 지정(규제 샌드박스)을 받아 약 7년간 운영하며 50만 명의 이용자와 수십억 원 규모의 자산 유통 실적을 쌓았음에도,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심사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두고 불공정 심사와 기술 탈취 의혹을 제기했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기존 샌드박스로 운영되던 토큰증권 서비스를 정식 제도권 장외거래소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 한국거래소-코스콤, 넥스트레이드-뮤직카우, 루센트블록 컨소시엄 세 곳이 인가를 신청했고, 아직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 증권선물위원회 심사에서 루센트블록의 평가가 낮았다는 보도가 나왔고,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예비인가 안건 상정이 미뤄지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사례가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단순하지만 근본적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만약 혁신기업이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하며 시장을 개척하고 그 가능성을 증명하도록 돕는 것이 샌드박스의 목적이라면, 제도화 단계에서 그 기업들이 배제되는 현상은 제도의 취지와 모순된다.
물론 이를 단순히 정부의 배신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성급하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만으로는 금융당국이 스타트업 배제를 기획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기술 탈취 의혹 역시 법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넥스트레이드는 의혹을 부인하고, 금융위는 공정성 논란이 일자 결정을 미루고 추가 검토를 진행 중이다. (일종의 제스처인가?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당국이 제시한 안정성, 유통 역량, 컨소시엄 구성력이라는 심사 기준은 금융 인프라의 특성상 나름의 논리를 갖는다.
그러나 여기서 더 깊은 문제가 드러난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심사 기준 자체가 이미 완성된 인프라를 보유한 기관들에게 구조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는 수십 년간 축적한 거래 시스템이 있고, 넥스트레이드는 주요 증권사 34개사의 출자로 설립된 대체거래소로서 뮤직카우 등 기존 조각투자 기업들과 연합해 시장 점유율 98.5%를 내세웠다. 반면 루센트블록은 발행 경험과 운영 실적은 있지만 대규모 유통 역량에서는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것이 공정한가? 규제 샌드박스는 애초에 혁신기업이 시장을 시험하고 증명할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루센트블록은 바로 그 목적에 따라 7년간 운영되며 시장성을 입증했다. 그런데 제도화 단계에서 "이제 진짜 경쟁을 시작하자"며 이미 완성된 인프라를 가진 기득권 기관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은, 마치 달리기 경주에서 한 선수에게만 무거운 배낭을 메게 한 뒤, 결승선 직전에 "이제 공정하게 경쟁하자"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 이중잣대다. 만약 민간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검토한다는 명목으로 내부 자료를 받은 뒤, 비슷한 사업에 직접 뛰어들었다면 여론의 뭇매를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이나 준정부 기관이 같은 행동을 하면 "시장 안정화 또는 공공성 강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이는 우리 사회가 경쟁의 공정성보다 안정성을 우선시한다는 증거다. 안정성 그 자체는 나쁜 가치가 아니다. 그러나 안정성을 위해 혁신을 희생시킨다면, 그것은 장기적으로 더 큰 불안정을 초래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우선, 규제 샌드박스의 본래 취지를 살려야 한다. 시장을 개척한 기업이 제도화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선도 기업 우대 조항을 명시적으로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리고 공공기관의 시장 진입 시 더 엄격한 심사와 투명성이 필요하다. 민간 기업이라면 용납되지 않을 행위가 공공기관에게만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의 전환이다. 우리는 혁신을 말로만 찬양하면서도, 정작 혁신기업이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했을 때 그 대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루센트블록의 사례가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진정으로 혁신을 원하는가, 아니면 단지 안정된 시스템 안에서 관리 가능한 변화만을 원하는가? 후자라면, 젊은 창업가들이 헛된 기대를 품고 자신의 시간과 자본을 허비하지 않도록, 제발 솔직해지자. 전자라면, 제도를 바꿔야 한다. 혁신은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