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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 깊게 보면 선명해 질지 모른다.

"무엇이 필요하세요?" /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큰 차이가 있는 질문이다.  대답이 쉬울 수도, 많이 어려울 수도 있는 물음.


없어서, 부족해서 생기는 마음과 불편함을 채우고 메우는 시기가 일상이던 때가 있다.

공백을 볼 수 있고, 정도를 가늠해 채울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혹 만족이나 행복감으로까지 연결되면 더할 나위 없다. 한편 없는 것과 부족한 것을 채우는 방식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원하는 게 없다',  '잘 모르겠다',  '필요한 게 있지만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차이가 있는 상황이지만, 지금 그대로라면 공통적으로 이전과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결여와 결핍의 공백을 채우는 대안은 비교적 선명해 보인다. 분명하니 잘 채우면 만족도 단단해진다. 

그래서 만족을 묻고, 만족 정도에 따라 계속 이런 방식으로 할 지, 조금 달리 적용할 지가 달라질 것이다. 


무엇을 하고 싶고,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오래된 관심사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얼마나 강렬한지, 어떻게 가능하게 해 왔는지에 대한 경험

지금과 앞으로의 또 다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데 중요하다. 


여전히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그 정도도 가늠할 수 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사람.

알기는 하나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없어 점점 사그라 드는 사람.

잘 채워 온 경험이 없어서 욕구가 없다고 느끼거나 잘 모르겠다는 사람.

점점 바라는 바가 희미해지고, 만족 경험이 쌓이지 않아 다른 관점의 새로운 욕구가 생겨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선명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괜찮다고 말할지 모른다. 

"아무거나 다 좋아요",  "다 괜찮아요."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관점은 필요도, 선호도, 취향도 말해 주지 않는다.


비슷한 성장 경험, 유사한 상황, 동시대를 살아온 세대 경험으로 인해 비슷한 욕구가 나타나기도 하고,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개인 욕구가 아닌 세대 욕구, 사회적 욕구가 개인의 욕구로 굳게 자리 잡은 경우다. 


소유 자체가 큰 만족을 주는 시대가 가고 있다

없거나 필요한 것을 갖게 되면 뚜렷한 욕구만큼이나 만족은 커질지 모르지만, 

일상을 풍성하게 할 그다음의 설렘과 떨림이 잘 생기지 않는다. 


변화가 크고 많은 시절이다. 필요로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도 변화가 클 수밖에. 

그동안 묻고 관찰하면서 알게 된 욕구를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는 알기 어렵거나 '잘 모르겠다'라는 답이 많아진다. 조금 더 섬세한 물음과 관찰, 직접 답하지 않아도 추정하고 가늠해 볼 수 있는 수단들이 많아지고, 이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여러 상황을 살펴 퍼즐처럼 맞춰야 그나마 설명이 가능해 지는 복합적인 세상이다.

없어서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하고 싶고 원하는 것에 대한 일상 경험을 잘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고 싶은 바에 지향을 두고 자주 경험하여 단단하게 하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질지 모른다.      


섬세하고 깊게 욕구를 묻고, 그 무엇이, 어떤 방식이 깊은 만족으로 자리 잡는지에 관심을 두어본다. 

늘 비슷하게 채워왔던 욕구보다는 잘 묻지 않아 대답하지 못했던, 새롭게 궁금함이 생겨 해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질 지 모른다. 욕구를 좇기보다 리드하고, 이전에 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계속,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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