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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닉네임입력 Sep 10. 2022

1200원짜리 면접

첫 사회생활의 서막

대학을 졸업하고 취준생이 되었을 때 나는 젊은 패기로 무장한 상태였다. 학교 생활을 나름 열심히 했던 나는 취업할 자신이 가득했고 그것 때문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이은 면접 불합격 통보에 다른 친구들의 합격했다는 소식들까지 내 패기가 조금씩 꺾일 무렵 교수님의 추천으로 한 사회복지기관에 면접을 보러 갔다.


크지 않은 사무실에 직원 세명 남짓한 그곳에서 나는 면접시간을 기다렸다. 다른 대기자가 없어 경쟁자가 없는 줄 알았던 나는 긴장이 살짝 풀렸던 것일까.

"OO님, 면접실로 들어가실게요."

"지원한 동기가 뭐죠?"

기본적인 질문이지만 중요한 질문이기도 했다.

"저는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는 정신질환이 있는 클라이언트의 삶을 끌어올리는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그 일이랑 아예 관계가 없는데요..."

3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 이후에는 기억이 거의 없어져서 그 당시 면접관이셨던 한 분의 말을 빌려 적어보자면 나는 패기 그 이상이었다고 한다.

"관계가 있고 없고는 직접 겪어보고 느끼겠습니다. 하지만 동기가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허허.. 그래요 그럼 여기서 일하다 정신보건 쪽으로 갈 기회가 생기면 바로 이직을 하겠네요?"

"네 저는 그렇게 할 것 같습니다."

맞다. 난 정상이 아니었다. 다른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 바로 그 기회를 잡겠다는 기회주의자의 외침이 아닌가. 하지만 난 젊은 패기라는 가짜 가면을 내세운 채로 뻔뻔하게 나의 꿈을 고집했다. 이후의 질문들은 사적인 질문들이 섞인 질문들이었던 것으로 얼핏 기억이 난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나온 후 어머니의 전화가 울렸다.

"아들, 면접 잘 봤어?"

"네! 그런 것 같아요!"

어디서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튀어나왔을까.


면접을 치른 지 3일 정도 지났을 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OO님, XX기관입니다. 이야기하자면 길어질 것 같은데.. 혹시 다른 기관에 면접 볼 생각 있어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멍하니 듣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로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아니.. 면접을 너무 잘 보셨는데 기관에 사정이 생겨서 채용을 3개월 정도 미뤄야 할 것 같아요. 근데 3개월 동안 기다려달라고 할 수가 없어서 다른 곳에 추천을 하려고 하는데 괜찮아요?"

순간 나는 으쓱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그냥 알겠다고만 대답하고 ㅁㅁ기관에 면접을 보러 갔다. 그 전 사무실보다는 규모도 좀 더 크고 직원도 더 많았고 다른 면접 대기자들까지 여럿 있었던 터라 덜컥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례가 왔고 사장님 사무실 같은 분위기에 3명의 면접관께서 웃는 얼굴로 맞아주셨다. 그렇게 시작된 면접에서 면접관님의 첫마디에 나는 또 기억을 잃어버릴 뻔했다.

"너 얼마 들었어?"

잠깐 고민하던 나는 최대한의 센스를 발휘해서 대답했다.

"지하철 타고 와서 1200원 들었습니다."

........

그 순간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시는 면접관께서 내가 돌아이라며 크게 웃으셨고 옆에 있던 다른 면접관께서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추천해준 사람에게 뇌물을 얼마나 줬냐는 장난스러운 질문이었다고 설명해주셨다. 설명을 듣고서 더 할 말이 없었던 나는 점점 더 얼어붙었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일할래?"

........

내가 많은 곳에 지원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다행히 사전에 내가 찾아본 이 기관은 나쁘지 않은 회사였고 뇌물 질문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던 분께서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시는 분의 말을 순한 버전으로 번역을 해주시면서 면접은 끝이 났고 2주 뒤 출근하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날 돌아이라고 하시던 분은 기관장님이셨고 날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셨던 분은 다른 지역구의 기관장님이면서 나를 여러 곳에 물건이 들어왔다며 말을 하고 다니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3년 뒤 내가 모시는 기관장님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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