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하루의 절반 가량을 일한다. 야근, 잔업까지 하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며 살고 있다.
그로 인해 삶의 밸런스가 무너지기도 한다. 그렇게 번아웃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워라밸을 희망한다.
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이것은 요즘 현대인들의 중요한 삶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삶을 살아온 세대가 직장 내 상사를 맡고 있어 워라밸을 원하는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하며 발전을 이루어내 주신 분들의 노고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아 회사에만 충성하며 살기엔 젊은 내 인생이 아쉽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냥 열심히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 퇴근시간은 8시 이후라고 생각하고 일과시간에 외근을 나갔다 6시가 다 되어 갈 때쯤 복귀해서 서류업무를 하고 일이 많거나 평가 시즌이 되면 밤 10시, 11시 퇴근을 자청하며 일에 몰두했다. 사실 이렇게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남들보다 내가 일머리가 부족해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그들을 따라가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 좀 넘는 기간 동안 나는 워라밸없는 삶을 살았고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건으로 인해 이런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졌다.
그 사건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평일 어느 일과시간에 일어났다. 평소처럼 일이 많았고 정신없이 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때 팀장님이 날 불렀다.
"OO아, 바쁘나?"
"네, 오늘은 좀 바쁩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하.."
"그거 아직도 안 했나? 저거는 금방 하겠구만 안 바쁘제?"
"... 네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 오늘 다른 지역에서 손님들이 오신다는데 세팅할 것도 좀 있고 해서 도와줄 수 있제?"
자주 이런 식의 말투로 내가 하는 일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팀장이었기에 금방 처리하고 와서 다시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팀장과 함께 짐을 챙겨 외근용 차량을 타고 사업장으로 향했다. 내게 다가올 큰 일을 모른 체 말이다...
외부 손님들 맞이 준비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고 손님들만 금방 응대하고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일하시는 분들과 잠깐의 여유를 즐기며 수다를 떨고 있을 때 팀장이 나를 불렀다.
"OO아, 손님들이 좀 늦으신다네 점심시간 좀 넘으면 오시지 않겠나? 조금만 기다려보자 안 바쁘제?"
아까 그런 소리를 들었던 나였기에
"네 괜찮습니다. 금방 오시겠죠 뭐"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손님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슬슬 일이 밀려있던 나는 조급해졌고 팀장에게 가서 일 좀 하고 와도 되겠냐며 물었고 팀장은 금방 오실 거라며 내가 사무실에 가있는 동안 손님들이 오면 어쩌냐며 이왕 기다린 김에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더 흘렀다. 이미 시곗바늘은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대상이 누구든지 그냥 내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말이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팀장에게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사무실에 들어가 보겠다고 말했고 팀장은 하는 수 없이 마지막으로 전화 한 번만 해보자며 자리를 비웠고 다시 돌아온 팀장은 10분 안에 도착한다며 나를 또다시 그 자리에 앉혔다. 얼마 후 손님들이 도착하셨고 생각보다 손님들과의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아 한 시간 겨우 걸린 것 같았다. 시간은 오후 6시가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고 어차피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면서 사무업무를 하던 게 습관이 되어있었던 나는 외근용 차량을 타고 사무실로 가려는데 갑자기 팀장이 나에게 말했다.
"손님들이 다른 사업장을 한 곳 더 보고 가신다는데 내가 가봐야 할 것 같다. 사무실에 좀 따로 갈 수 있겠나? 이 차는 내가 타고 가야 할 것 같네. 사무실에 내가 전화는 해놓을게 데리러 오라고"
"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도로 한복판에서 내리게 됐고 마냥 기다리고 있기가 좀 그래서 사무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당시 나의 복장은 셔츠에 구두였고 사업장에서 사무실로 가는 길 주변이 논밭이어서 도로 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어가는 동안 나는 그라데이션 분노를 경험했고 결국 폭발한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사무실에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나를 데리러 왔고 내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나는 사무실에 도착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근을 했고 다들 의아해했지만 아무도 날 잡는 사람은 없었다.
이 일이 있고나서부터 나는 매일같이 칼퇴를 했고 집에서 마음껏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내 상황을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헬스장을 등록했다. 일만 하던 나의 삶에 시선을 돌릴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프로야근러의 삶을 접고 칼퇴근을 하며 잠깐의 헬스보이가 되었다...
저 워라밸 그거 꼭 해야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