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과 사명감
딜레마(dilemma)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di(두번)와 lemma(제안,명제)의 합성어로 진퇴양난, 궁지라는 뜻이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여러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쁜 결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딜레마가 발생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직업이 있다. 그 중 사람을 대하는 직업에서 이런 딜레마가 자주 찾아오고 깊게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식물인간 상태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병원에 입원해있는 환자의 안락사 판정을 해야 하는 의사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의사는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깨어날 확률이 있는 환자와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치료를 중단하고자 하는 가족들의 상황을 고려해 판정을 내려야 한다. 물론 가족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직업인 의사는 쉽게 선택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가족의 선택을 존중해 안락사를 결정하다면 환자의 생명을 포기해야 하고 반대로 환자의 생명을 존중해 치료를 이어간다면 금전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가족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딜레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사회복지사였다. 대학시절부터 딜레마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고 그에 대한 자료를 조사해 발표도 했었다. 사회복지사들은 윤리적딜레마를 겪는데 사회복지사로서 어떠한 선택을 한다면 윤리적이지 못할 상황에 놓였을 때가 바로 그때다. 예를 들면 어느 날 센터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한 남자가 들어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남자는 전과 3범으로 교도소에 복역을 했던 이력이 있다. 그런 사람을 도와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 사람을 도와 이 남자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적이게 되었을 때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돕지 않는다면 이 남자는 나쁜 마음을 먹을지도 모른다. 윤리적 딜레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내가 경험한 딜레마는 이런 느낌과는 조금 다른 딜레마였다. 어찌 보면 딜레마가 아니라 현실을 자각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시절부터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어려운 사람을 어떻게 전문적으로 돕는지 어떻게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배운 나는 현장에 투입된다면 유능한 사회복지사가 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렇게 첫 직장에 들어갔고 처음 맡은 업무는 장애인들을 위해 활동지원사들을 파견 보내고 관리하는 것이었는데 이 일에서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1년 후 나는 자활이라는 부서로 옮겨 일하게 되었다.
부서 이동 후 나의 업무는 이미 만들어져 운영 중이던 사업이었다. 기본적인 틀이 갖춰져 있었고 사람들도 어느 정도 기술력이 올라온 상태였다. 하지만 보조금의 지원 없이 스스로 사업을 일으킬정도의 규모는 되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명함을 돌리고 전단지를 제작해 배포하고 다른 기업에 연락해 협업 제안도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 사람들을 돕는 것 같으면서도 사업을 키우려고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난 지금 사업가일까? 사회복지사일까?" 그래서 고민했다. 사실 싫었다. 당시에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사람들의 어려운 일을 해결해주고 고맙다는 말을 들으며 사명감을 더 키우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하니까 이런 것도 해야 한다. 저런 것도 해야 한다. 좀 더 열심히 해보자."라는 말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난 그 사람들을 쪼아대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나에게 딜레마가 찾아왔다. 이후 새로운 사업을 직접 만들게 되면서 딜레마는 더욱 심해졌다.
내가 알고 배운 사회복지는 누군가를 돕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도움이 1차원적 일지는 몰라도 그 과정에서 사명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자활센터에서 했던 일들을 통해 나는 사회복지사보다는 사업가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전체적인 틀은 사업을 만들어 수급자들을 채용하고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은 어떤 사업이 돈이 될 것인지 사업 아이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고 결정이 되었다면 사업장을 직접 알아보고 부동산 계약을 하고 사업기반을 마련해야 했다. 그리고는 수급자들을 채용하고 일을 가르쳐 사업을 키웠다. 이건 누군가를 돕는 것이 아니라 사장이 직원에게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며 보채는 것 같았다.
그런 고민이 길어질 즈음 나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를 기회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