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1일 아침 야간근무를 마치고 온 친구가 사 온 빼빼로는 나에게 고백하기 위함이 아닌 나를 놀리기 위함이었는데, 그날은 바로 내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입대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 중에서 가장 빨리 입대를 하는 나로서는 친구의 놀림이 더욱 얄밉고 싫었지만, 평소 내가 좋아하던 빼빼로를 손에 쥐어줬기에 조용히 듣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약 한 달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받은 나는 병무청의 전산오류로 인해 첫 달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 기본 생활에 필요한 물품부터 세면용품들까지 선임이 대신 구입을 해줬고, 가장 중요한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부대에서는 전화카드나 나라사랑카드를 이용해 전화를 하곤 했는데 월급이 들어오지 않은 나의 나라사랑카드로는 전화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가족들에게는 훈련소에서 가져온 편지지를 통해 집으로 자대 주소와 연락처 등을 남겨 나의 소식을 알릴 수 있었지만, 친구들에게는 나의 생존 여부조차 알릴 수 없었다.
또다시 한 달의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가고 두 달치 월급이 한 번에 들어오는 날, 나는 밀린 전화를 모두에게 하고 싶었지만 당시 나의 계급은 이등병에 불과했기 때문에 전화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첫날은 가족들, 둘째 날에는 친구 두 명, 셋째 날에는 나머지 친구 두 명... 이런 식으로 남는 시간을 이용해 짬짬이 친구들에게까지 나의 생존 여부와 근황을 알리며 바깥세상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친구가 많이 없었던 나는 4일 만에 밑천이 드러났고 전화를 붙잡을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둘째 날 연락한 중학교 시절 친했던 두 명 중 나를 '허개미'라고 부르며 걸어왔던 친구가 뜻밖의 소식을 들려줬는데, 그 소식은 바로 우리 집 골목 바로 옆에서 면 뽑는 작업을 하던 친구의 아버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것이었고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한밤 중 주무시면서 편안히 가셨다고 하셨고 이후 집과 면을 뽑는 작업장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소식까지 알게 되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전화를 끊으려 할 때 수화기 너머로 친구의 한 가지 당부를 듣게 되는데...
이 글은 15부작으로 구성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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