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
[도종환 / 어릴 때 내 꿈은]
학부 시절 기계과에서 사회복지학과로 전과할 때부터 학교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다. 어느 날 "좋아하는 일"을 찾다가 사회복지학과에 관심이 생겼고 군 복무를 마치고 전과를 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공부였지만 재밌었다. 그러다가 아동·청소년 복지 분야로 진로를 정했다. 생각해 보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으니 20대의 꿈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에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기 때문에 교육복지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고 말한다. 지금도 교육복지사의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회복지사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기에 교육복지사는 단순 직업이 아니고 사명인 것이다. 그만큼 이 일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 잘하고 싶다.
교육복지사로 첫 출근할 때의 기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교문으로 들어섰을 때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어서 가슴 벅찼다. 그때 "좋은 교육복지사가 되겠다"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교육복지사로 일한 지 9년 차가 된 지금도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일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 교육복지사가 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한다. 지금까지 "좋은 교육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사실 첫 근무지에서의 좋은 교육복지사는 일 잘하는 교육복지사였다. 솔직히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교육복지사의 상"이 달라졌다. 어느덧 일한 지 10년 차를 앞두고 있다 보니 신입 교육복지사를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누군가도 나처럼 좋은 교육복지사를 꿈꿀 테니까. 신입 교육복지사들에게 좋은 교육복지사의 상을 보여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긴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되고 싶다.
지난 경험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도치는 않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내 삶을 보며 위안을 삼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걸음 하나하나 조심스럽다.
교육복지사가 처한 상황과 현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교육복지사는 일정 기준 저소득층 가정수가 충족되어야만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다. 문제는 과거 빈곤 문제보다 방임·학대, 가족 해체,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ADHD, 분노조절장애 등의 이유로 인한 학교 부정응 문제가 크다. 경제적인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심리·정서적인 어려움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학교 붕괴 현상을 교육 전문가 집단만으로 막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학교 현장에 아이들과 가정을 보다 세밀하게 돌볼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안타깝지만 교육열은 뜨거운 반면에 아이들의 심리·정서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슬프게도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현주소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복지사에 대한 처우에 대한 정책이 어젠다로 이슈 되지 않는다. 최근 교육공무직을 싸잡아서 조롱하고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뭔지 모르게 씁쓸했다. 또한 정책에 따라 인사이동, 사업의 방향과 예산이 정해지기 때문에 사업 효과를 반감시키고 교육복지사는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 무기 계약직이 되어 시도 교육청에서 인사 관리하는 것은 다행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처우가 다르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교육복지사는 감정 노동자이다. 동료 교육복지사들과 소진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학생, 보호자, 교사들과 관계 중심으로 일하기 때문에 교육복지사에게 소진은 필연적이다. 가끔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학생의 변화가 보이지 않거나 보호자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느껴진다. 거기에 높은 수준의 기대, 과도한 행정 업무, 권위주의적인 학교 문화와 시스템이 더해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직을 생각하는 무능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더 비참한 것은 동료 교육복지사와 함께 연대할 조직도, 스스로 만들어갈 힘도 없다는 것이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모래알 같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좋은 교육복지사를 꿈꾼다. 누군가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나는 교육복지사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과연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여전히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복지사가 되기를 꿈꾼다. 아이들이 함께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