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일은 생애 의미 있는 날로 손꼽는다. 교육복지사로서 학교에서 첫 근무한 날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학부 시절부터 꿈꿨던 교육복지사가 되었다. 학교 정문에 들어설 때 신규 교육복지사로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이라 가슴이 두근거렸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복지 시설이 아닌 학교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으니 어떻게든 버티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교육복지사가 된 것은 운이었다. 2013년 이후로 교육복지사의 신규 채용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아무래도 교육복지사의 인건비가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예산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이 대대적으로 확대되거나 어떤 형태로든 학교에 교육복지사를 배치하지 않는 이상 신규 채용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육아 휴직 등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체 인력으로 몇 개월, 운 좋으면 1~2년 일한다. 나는 전임 교육복지사가 정년퇴직을 하여 운 좋게 신규 채용된 것이다. 사실상 신규 채용으로 2013년에 막차를 탄 셈이다.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현재 일하고 있는 교육복지사 수에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중점학교 수를 맞추는 행태를 벗어나지 않으면 점점 교육복지사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역할이 줄어들어 위축될 것이다. 교육복지사의 일을 시작한 지 10년 차를 바라보고 있는 나도, 사업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어가는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도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
교육복지사는 돌봄 공백을 메우는 부모와 같은 존재다. 교육복지사는 학교에서 아이의 발달과 성장을 위해 아이들을 따뜻한 관심과 애정으로 돌본다. 마스크가 더럽지 않은지, 신발이 닳고 낡아 떨어지지 않았는지,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다니는지, 요즘 어떻게 학교 생활하는지 세심하게 관찰한다. 충치가 많거나 치아가 빠져 있으면 치과 치료를, 시력이 나빠져 칠판 글씨가 안 보이면 안과 진료를 지원한다. 또래 아이들보다 몸집이 작으면 교육복지실에 올 때마다 뭐라도 먹이고 영양제를 챙겨준다. 아침밥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면 끼니를 때울 수 있도록 음식을 먹여 준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 여가 시간을 함께 보내거나 취미를 갖도록 지원한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지원한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찾아온다. 점심시간은 교육복지실 와서 보드게임을 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수다 떨기 때문에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그러다 보면 프로그램 계획서(보고서) 작성, 각 종 일지와 서류 작성, 공문 처리와 내부 기안 같은 행정 업무를 근무 시간 내에 끝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기 중에 진행되고 있는 개인 상담, 동아리나 프로그램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다. 사회복지 시설은 팀으로 나눠 업무를 분담이라도 하지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버겁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정신없다. 체력 관리가 필요한 일이다.
교육복지사는 아이의 인생에 영향을 준다. 교육복지사의 태도, 판단과 선택이 한 아이의 변화와 성장을 좌우하기 때문에 보다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물론 사회 문화적인 요인 등 환경적인 요소의 영향들도 따져봐야 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복지사의 일을 하면 할수록 공부에 목마르게 되는 것도 아이의 결핍된 욕구와 문제를 다루고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교육복지사의 작은 실수가 아이의 삶과 바로 연결되기에 막중한 부담감과 책임감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일하다 보면 감정 노동이 불가피하다. 부당한 업무 분담으로 소진된다. 공문에 "복지"자만 들어가면 업무 분장을 따져보지 않고 공문을 배정한다. 교육비 지원, 방과 후 수강권, 교육급여 같은 교사나 행정 담당자가 해야 할 업무를 떠넘기듯 맡기기도 하는데 이를 조정하다 보면 쓸데없이 감정만 소모된다. 정작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할 수 없거나 미뤄지기 때문에 무력감과 회의감에 시달린다. 학교 조직 안에서 교육복지사는 소수에 불과하고 약자이다. 권위적인 학교 조직 문화에 따를 수밖에 없다. 물론 자신의 부당함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고 맞서 싸울 수 없는 것은 아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안에서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쉽게 지치는 것이다.
교육복지사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비정규직이었다. 무기 계약직이 된 지 몇 년 되지 않았다. 학교장이 인사관리를 하던 시절에는 1년 미만으로 재계약을 해야 했다. 또한 사업의 여부로 교육복지사가 배치되기 때문에 고용 불안을 안고 일해야 했다.
며칠 전 아내가 “당신 경력에 비하면 월급이 적다”라며 이직하길 바랐다.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듣고만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아무리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고 자부하더라도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고민되기 마련이다. "10년 넘게 이 일을 했지만 남는 게 없다"라는 선배 말처럼 안타깝고 슬펐다. 어쩌면 선배들처럼 10년 넘게 일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은 처우에 회의감이 들지 모른다. 사실 어디 가면 팀장이나 센터장 할 나이대에 들어섰다. 퇴직할 때까지 사회적 지위는 고사하고 무기 계약직의 교육복지사에 불과할 것인데 비루함을 어찌 견딜 것인가. 승진은 못하더라도 매년 월급은 올라야지 않겠나. 부디 교육복지사의 일을 사랑하고 열정으로 헌신한 대가가 소진과 건강 이상만 아니길 바랄 뿐이다. 여느 사람들처럼 일한 만큼 인정받고 싶다.
"나는 왜 이 일을 시작했나"
"나는 지난 9년 동안 어떤 교육복지사였을까"
"앞으로 어떤 교육복지사가 되길 바라는가"
나이 들수록 현실적인 문제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고 일에 대한 자부심마저 갉아먹을 것이다. 앞으로 10년을 더 하기 위해서라도 이 일을 계속해도 될지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야겠다. 이제는 어떻게든 버틴다고 버텨지는 게 아닐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