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이 출산 고통과 맞바꾼 감격

by hohoi파파

첫아이의 임신과 출산을 떠올리면 기쁨과 감격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기쁨과 감격 뒤에는 그에 따른 대가가 있었다.

첫째라 그랬을까. 임신 10개월 동안 어찌나 걱정되던지 임신 4개월부터 마음을 졸였다. 어느 날 의사 선생님은 다른 산모에 비해 아이가 밑에 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초음파 영상을 봐도 자궁 입구 쪽 가까이에 있었다. 37주를 채우지 못하고 미숙아로 태어날 것 같아 덜컥 겁부터 났다. 그 뒤로 출산할 때까지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전전긍긍했다.


아내는 일찍이 내진 검사를 받았다. 보통 임신 36주 차에 검사한다. 하지만 조산 증상으로 임신 4개월부터 받은 것이다. 내진 검사는 손가락을 넣어 산모가 출산할 준비가 됐는지, 아이가 얼마나 내려와 있는지 확인한다. 내진 검사는 1~2분이면 끝나는 간단한 검사다. 하지만 짧은 검사 시간에도 불구하고 불쾌한 느낌과 수치심은 오래간다고 했다. 아내는 불편하다며 싫어했다. 검사받을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임신 후기에 가까워질수록 배 뭉침이 잦았다. 아내는 배가 돌덩이처럼 단단해질 때마다 힘들어했다. 임신 배 뭉침은 임신 중 자궁이 수축하면서 갑자기 배가 단단하게 뭉치는 현상이다. 이때 배 뭉침이 잦고, 통증이 길어지면 조산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다. 바로 입원해야 한다. 사실 임신 배 뭉침은 임신 막달이 될수록 자연스러운 증상이다. 하지만 임신 초기부터 조산 걱정으로 아내가 배 아프다고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무서웠다.

임신 막달에 한다는 태동 검사도 임신 초기에 받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태동 검사를 할 때마다 얼마나 긴장되던지. 적막한 진료실에 쿵쿵 울려 퍼지는 아이의 심장 소리. 잠깐이라도 불규칙해지면 가슴이 벌렁벌렁 안절부절못했다. “혹여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 쓸데없는 생각임을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쉽게 떨쳐 내지 못했다.


“차라리 먹덧이 나아!”


아내는 먹덧이 왔다. 굳이 입덧과 먹덧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먹덧을 고르리라! 아내는 음식 냄새만 맡으면 비위가 상한다고 했다. 차라리 역겨워서 못 먹는 것보단 뭐라도 먹는 게 낫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는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먹는 것으로 풀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는 마이쥬, 아이셔, 새콤달콤, 자극적인 라면 국물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서일까 아내는 임신 7개월부터 체중이 급격히 늘었다. 아내의 팔과 다리가 코끼리 다리처럼 팅팅 부었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임신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신체 변화라고 생각했다. 매일 보는 신체 변화라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첫아이라도 그렇지, 부종과 임신 중독증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2016년 5월 18일, 오전 10시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의 전화번호를 보자마자 뭔지 모를 싸한 느낌이 들었다. “오빠 피가 나.”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지금도 어떻게 집에 갔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이미 출산 준비로 미리 싸놨던 30인치 캐리어를 4층에서 계단으로 끌고 내려와 있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아침에 이미 자궁 수축이 짧아졌는데도 일하는 것에 방해될까 봐 참았단다. 큰일이 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계단에서 첫째를 낳을뻔했다.


통증을 느끼지 말라고 무통 주사를 맞는 것 아닌가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은 출산 전 무통 주사를 놓을 혈관을 찾지 못했다. 부종으로 온몸이 팅팅 부은 탓이다. 의사 선생님은 아내의 웅크린 자세를 몇 번을 바꿔가며 긴 주삿바늘을 아내 등에 꽂아댔다. 대충 세어봐도 열댓 번. 어찌나 찔렀던지 바늘이 휘어졌다. 아내는 겨우 무통 주사를 맞고 침실에 누웠다. 하지만 무통 주사를 놓은 타이밍을 놓쳤는지 약 효과가 없었다. 아내는 출산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아내는 지금도 무통 주사 말만 들어도 치를 떤다.

아내는 자궁문이 열릴 때마다 산통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출산할 때 내지른 아내 비명과 신음 소리는 나의 멘털을 마구 흔들었다. 아내의 숨은 가빠지고 산통 때문에 이를 윽물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보고 안절부절못했다. 아내 대신 아이를 낳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미치는 줄 알았다. 가빠지는 아내의 숨소리에 덩달아 흥분됐다. 갑자기 아내가 ‘악’ 비명을 질렀다. 아내가 얼마나 힘을 줬는지 부여잡은 침대 난관이 부러지고 말았다. 아픈 와중에 부러진 침대 난관을 보고 멋쩍게 웃던 아내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보호자분은 밖에서 기다리세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심장을 꺼내 귀에 바짝 댄 것처럼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다. 분만실 밖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그 순간 “응애!” 아이의 울음소리가 분만실을 크게 울렸다. 갓난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듣고 감격했다. 건강하게 태어났구나 싶어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안심했다. 쩌렁쩌렁 울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10개월 동안 전전긍긍 애태웠던 마음을 한순간에 녹였다.


“한 번에 자르면 돼요.” 의사 선생님이 의료용 가위를 건넸다. 의료용 가위를 건네받는 순간 “아이가 다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한 3초 머뭇거렸다. 어찌나 손이 덜덜 떨리던지. 아무리 마음을 가라앉히려 해도 바들거리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긴장했던 탓인지 탯줄도 잘리지 않았다. 질겼던 탯줄이 끊어지던 순간. 지금도 첫째를 맞이한 순간을 떠올리면 울컥한다.


돌이켜 보면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남편 역할은 많지 않았다. 임신 10개월 동안 몸의 변화, 출산의 고통은 고스란히 아내 몫이었다. 그나마 남편으로서 가장 잘한 일은 가족 분만실에서 출산한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목격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모른다. 무엇보다 아내 옆을 지켰다는 것에 어깨에 힘이 빡.


“응애!, 응애!” 태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핏덩이를 품에 안을 때 어찌나 눈물 나던지.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한다. 임신 10개월 동안 괴롭혔던 불안과 두려움, 걱정으로 힘들었던 지난 시간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무리 출산이 고통스러워도 탄생의 기쁨과 감격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사랑하는 아가야! 10개월 동안 애썼어, 잘 버텨줘서 고마워.” 아이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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