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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Dec 31. 2018

웅크린 시간에 대하여

괜찮아! 혼자라서 아름다워

광양 백운산

  산을 좋아하는 선생님들과 광양 백운산에 다녀왔다. 12월 오르는 겨울산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낯설었다. 겨울산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과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말라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위태로워 보였고 고요함을 넘어 적막하기까지 했다. 산에 오르는 길에 들리는 소리는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히는 소리와 빈 나무 가지 사이로 휙휙 지나가는 매서운 칼바람의 웅웅웅 거리는 바람소리뿐이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여행 같았다.

마치 모든 것이 멈춘듯한

  겨울산은 나의 몸을 웅크리게 했다. 추운 날씨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느껴지는 한기는 나의 귀와 볼을 얼어붙게 했다. 찬 바람이 뼛속까지 들어왔다. 겨울바람은 나의 옷매무새를 단단하게 고쳐 가다듬게 했다.(그나마 추웠지만 날씨는 좋았고 등산로가 얼지 않아 다행이었다) 산에 사는 생명 역시 찬바람 다 맞아가며 웅크리고 있었고 에너지는 땅 속 어딘가에 꽁꽁 숨어있는 듯했다. 겨울산에서는 나도 그곳에 사는 생명도 봄을 기다리게 했다.


  따뜻한 봄이 반가운 이유는 혹독한 겨울 매서운 추위를 온몸에 맞아가며 견뎠기 때문이다.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봄을 간절하게 희망해서다. 새싹이 얼어붙은 땅을 힘겹지만 뚫고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겨울 동안 에너지를 쌓고 쌓아서다. 모든 것이 소멸하고 사라진 듯 보이는 겨울이 있기에 새 생명의 탄생인 꽃 피는 계절이 더 돋보이고 찬란한 것이다.

벡운산 정상에서

모든 생명은 웅크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웅크린 시간은 낯설다.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바쁘고 분주하다. 타인과의 비교에 쉽게 노출이 되며 생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간다. 우리나라 문화적 영향도 한 몫한다. 나보다 남,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여긴다. 그래서일까 오롯이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에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종종 느긋하게 여유 부리는 것을 잘못으로 여긴다.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 폴 고갱 -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하다.  때론 나를 위해 타인과 세상으로부터 과감하게 단절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에 두려운 이유는 혼자 남겨진 느낌, 외로움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웅크린 시간은 나를 더욱 성장시킨다. 웅크린 시간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한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한다.


  인간은 사람들과 안정적인 관계 맺기를 원한다. 서점에 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자기 계발 분야 책을 보면 인간관계를 다룬 책이 많다. 이는 인간은 관계를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관계는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하다. 인간은 결코 혼자 살아가지 못한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공동체에 소속되기를 바라는 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기본 욕구이기도 하다.


나 자신과의 관계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 만큼 충실한가.  


  타인과 관계 맺기에 열심히지만 정작 자신과의 관계 맺기에는 서툴다. 오롯이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두렵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나를 이해기 어렵다. 타인에게 맞추기 급급해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타인과의 안정적인 관계 맺기를 위해서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순천만 석양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나만을 위한 시간 내기도 빠듯하다. 출근을 하면 직장에 충실해야 되고 퇴근을 하면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 맡은 역할과 사회적 지위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그 틈에 나를 끼워 넣기가 어렵다. 작정하지 않고서는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은 힘들다.  


  내일이면 2019년 새해가 밝아온다. 늘 뜨는 태양은 같지만 유독 새해 첫날에 의미 두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부터 나를 위한 시간 가지기를 작정하기로 했다. 틈틈이 시간 내서 나를 돌아보고 살펴야겠다. 모든 면을 마주해야겠다. 보고 싶지 않은 나의 어두운 면, 상처 나고 흠집 났던 아픈 면까지 끌어안아줘야겠다.


  생각 없이 다녔던 출퇴근 길, 나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야겠다. 가끔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한껏 여유를 가져야겠다. 나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용기 내어 혼자 가는 여행을 떠나봐야겠다. 가끔은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들려 30분 책 읽어야겠다. 나의 건강을 위해 산책을 즐기고 운동을 해야겠다.(올해는 삼일 이상 가보자) 히말라야 등반을 위해 베이스캠프를 두듯 웅크린 시간은 인생의 여정을 온전히 마치기 위한 나만의 베이스 캠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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