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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내일이 기다려지는 이유

by hohoi파파

나이가 들수록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30대와 같은 몸무게 71kg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다르다. 계단을 오르거나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오른다. '언제 다쳤지?' 싶을 정도로 나도 모르게 긁히고 찍힌 상처를 뒤늦게 발견한다. 멍은 또 왜 이렇게 잘 드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회복력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엔 세월과 함께 주름이 늘었고 검버섯이 피어 파운데이션 선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가려지지 않는다. 젊음은 서서히 떠나가고 노화라는 불청객은 염치없이 찾아왔다.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구나.


노화는 질병으로 조용히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가장 먼저 찾아온 건 고혈압이었다. 2021년 11월, 마흔에 가까운 어느 날 건강검진 때 최고 혈압이 179가 나왔다. 당시에는 금방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뒷머리가 욱신거리고 가슴 통증과 손발 저림 증상이 가시지 않았다. 새벽에 자주 깨 소변을 봐야 해서 피로가 쌓여갔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몰라도 짜증이 늘었다. 매일같이 먹던 맥심 커피를 끊었고 매일같이 달빛 아래에서 걷고 또 달렸지만 소용없었다. 그때는 혈압약을 먹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시력도 점차 나빠지고 있음을 느낀다. 중학생 때부터 안경을 써왔지만 어느 순간 교정시력이 1.5까지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은 눈이 침침하고 뻑뻑하다. 눈을 질끈 감고 눈알을 굴리는 일이 늘었다. 눈앞에 검은색 형체가 떠다니는 비문증까지 생겼다. 나이가 들면서 눈 속의 젤리 같은 물질인 유리체가 액화되고 수축하면서 생기는 증상이라고 한다. 유리체의 변화로 생긴 작은 부유물이 망막에 그림자를 드리운다는데 이것도 노화와 관련된 것이다. 이제 몸과 마음에서 보내는 신호들을 모른 체할 수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늙는다. 40대 중반으로 달리는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까지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죽음에 가까워지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떻게 늙을 것인가?'는 40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변화 속에서 나의 존재감을 되찾아야 내 삶이 더 단단해지고 깊어질 테니까. [어떻게 살 것인가] 책을 읽다가 "품격 있게 나이를 먹는 비결" 부분에서 멈췄다. 유시민 작가가 말하는 품위 있는 어른으로 존중받는 방법을 되새긴다.


1. 잘난 체, 있는 체하지 않고 겸손하게 처신한다.
2. 없어도 없는 티를 내지 않는다.
3. 힘든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4. 매사에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임하며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다.
5.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신중하게 행동한다.
6.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한다.

- [어떻게 살 것인가] 본문 중-


'아직 살아 있구나'


의 활력을 매 순간 느끼며 나이 들어가고 싶다. 세월에 따라 신체와 정신은 점차 쇠퇴할지 모른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럼에도 삶의 의미와 깊이를 깨닫는 젊은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 유시민 작가가 말하는 품격 있게 나이 드는 것일 테고 스스로 존엄성을 지키며 사는 방법일 것이다.


[인생은 지름길이 없다]라는 책에서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발견했다. 요가와 명상, 심호흡으로 평정심을 유지하기, 내 몸에 맞는 운동을 꾸준히 하기, 여행과 독서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기, 매일 계획을 세우고 기록하며 하루를 정리하기, 좋아하는 일을 찾기, 매일 30분 이상 공부하기, 감사하는 마음 가지기, 타인을 도와주기를 꼽을 수 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일들을 골라보며 깨닫는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결국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생동감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매 순간 나를 돌보고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축구? 아니 풋살에 진심이 되어버렸다. 매주 2시간만큼은 어떠한 타협도 없다. 교회에서 축구 선교회 모임으로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집사님들과 중고등부, 청년부가 모여 공을 찬다. 축구를 하지 못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경기도에 사는 처제 집에서 놀다가도 축구 시간에 맞춰 집으로 출발한다. 몇 주전에는 축구는 해야겠고 애들은 봐야 해서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축구하러 갔다. 경기 중에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이 경기장에 난입하고 공을 차는 바람에 신경 쓰느라 정신없었지만 그마저도 행복했다. 다른 아빠들이 100% 출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파도 뛰고, 다쳐도 뛴다.


비록 예전처럼 치고 달리기를 할 수 없지만 공을 차는 순간만큼은 가슴 뛴다. 2시간 동안 장대비를 맞은 것처럼 온몸이 젖고 거친 숨을 몰아쉬지만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다고 느낀다. 나이 들면서 살아 숨 쉰다고 느끼는 경험이 줄면서 더욱 소중해졌다. 2030대와 함께 뒤섞여 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축구하고 회복하기까지 삼사일이 걸리지만 문제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점차 회복되는 시간이 줄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공을 차야해서 건강 관리할 수밖에 없다. 매주의 축구를 기대하며 또 한 주를 살아간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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