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고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백범일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편 중에서 -
광복 80주년 전야제 공연을 보며 뭔지 모를 뜨거움이 올라왔다. 그때는 왜 그런 마음이 일어났는지 딱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 반응을 접하면서 비로소 어떤 이유로 뭉클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백범 김구 선생님이 말한 “문화의 힘”이 아니었을까.
한류라 하면 뉴욕 한복판에서 말춤을 추던 싸이가 떠오른다. 떼창 하던 외국인들의 모습이 강열했다. 세대가 바뀌었고 지금은 블랙핑크와 BTS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솔직히 체감하지는 못했다. 그 사이 기생충 영화의 아카데미 수상,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한국 문화가 세계를 흔들었다. 전 세계가 들썩이는데 정작 우리만 차분한 건지, 아니면 내가 둔감한 건지 모르겠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인 [골든]이 영미권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다는 내용을 담은 릴스를 봤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수 소향이 커버한 노래를 들었다. 결국 하루 종일 다른 가수들이 부른 다양한 버전을 찾아 듣게 되었다. 헉, 알고리즘을 타다가 끝내 유 퀴즈 [국립중앙박물관 흥행 주역] 편까지 봤다.
파급효과는 국립중앙박물관까지 미쳤다. 더피 호랑이와 갓을 쓴 서 씨 까치를 닮은 배지를 사기 위해 오픈런을 한다니. 반가사유상, 곤룡포 타월 등 유물을 재해석한 다른 굿즈도 품절된다는데 김홍도 작품을 모티브 한 취객 3인 선비 소주잔이 눈에 들어왔다. 온도가 낮아지면 붉게 변하는 선비 얼굴이 귀여웠다.
영화 속 장소는 이미 성지가 되었다. 혼문을 완성하는 남산타워, 사자 보이즈가 공연한 명동 거리, 루미와 진우가 만나는 낙산공원 성곽길과 북촌 한옥마을 골목길은 성지순례 명소가 되었다.
어느 평론가는 "한국 문화를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고증했다니"라며 혀를 내둘렀다.
얼마나 재밌길래 이렇게 난리야!
사실 넷플릭스에서 영화 분야 1위를 차지했을 때 봤었다. 하지만 그동안 봐왔던 애니메이션과는 느낌이 달랐고 노래와 장면이 이어지는 방식이 낯설었다. “뮤지컬 영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시작한 지 5분 만에 꺼버렸다. 결국 2위인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를 봐버렸다.
하루 종일 노래를 듣고 홀려서 그런지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고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저녁을 일찍 먹고 소파에 옹기종기 앉았다. 영화를 틀어주면서 아이들에게 일본에서 제작했다는 것을 설명하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된다.”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한국 문화와 장소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이건 조선 시대 모습이야, 저기 남산 타워다, 여긴 명동 거리래, 고깃집 뭐야, 깍두기와 계란말이 디테일 미쳤다, 와 냅킨 깔고 숟가락 젓가락을 올려놨어, 김밥과 컵라면, 찜질방 양머리 수건과 루미가 입은 파자마 잠옷, 쉴 때 소파에 늘어져 있고 목욕을 함께 하는 장면을 보며 마냥 신기했다.
영화를 보면서 백범 김구 선생님의 꿈꾸던 문화 강국이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지금 한국이 만들어내는 음악과 드라마, 영화 속에 깃든 한국 문화의 파급력이 바로 그 증거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궁금해하고 찾아온다. 한국어를 제2 외국어로 채택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고 한다. 차치하고, 편견을 거두고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만든 힘. 그것이 바로 백범 김구 선생님이 말한 ‘문화의 힘’이었다. 한동안 골든 노래를 1시간 반복으로 듣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