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hoi파파 Mar 28. 2019

남편의 육아 기여를 원하는가

남편도 하고 싶어요. 다만...

  

  둘째가 태어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어떻게 한 달이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 바빴고 정신없었다. 둘째가 태어나 일상도 많이 바뀌었다. 둘째를 돌보기 위해 4살 된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다. 남들이 말하는 어린이집에 보내는 최악의 시기다. 동생이 태어나 떠밀듯 보내진 어린이집.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물론 4살 때 처음 어린이집에 가는 거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늦게 보낸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아들은 적응기를 무사히 보냈고 지금 나와 함께 출퇴근 길에 등·하원을 하고 있다. 아무튼 둘째가 태어나 이렇게 보낸 시간이 벌써 한 달.


  첫째를 보낼 어린이집을 찾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느긋하게 여유 부리다가 급하게 보낸 탓도 있지만 집 근처 아이 성향에 맞는 어린이집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았다. (보육시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앱을 개발하면 대박이지 않을까) 동네에 있는 어린이집을 검색하면 빼곡히 점들로 촘촘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일일이 전화하거나 방문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린이집을 고르는 일부터 막막했다. (어린이집을 결정한 내용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아무튼 둘째가 태어나면서 첫째 때와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두 아들을, 그것도 신생아를 돌보면서 오롯이 아내가 육아를 한다는 것은 가당찮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장모님이 돌봐줬으니 망정이지 아내 혼자였다면 아마도. 만약 그랬다면 산후조리원도 일주일 만에 나왔어야 했고 몸을 회복할 겨를도 없이 두 아들을 돌봐야 할 상황이었겠지. 내가 여자라고 해도 끔찍하다.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없다면 얼마나 우울할까. 산후우울증이 왜 오는지 알만하다. 행복해야 할 출산과 육아를 하고 싶지 않고 포기해야만 하는 마음은 더 이상 아빠도 엄마의 탓이 아니다.     


http://daenews.netfuhosting.com/news/view.php?no=11948


  아내는 물론 사회는 남편의 적극적인 가사나 육아 참여하기를 원한다. 주변에 아이들이 있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 남편의 역할이 예전과 달라졌다. 남편이 가사나 육아를 도맡아서 하는 경우도 많다. 남자가 "왜 주방에 가느냐"라고 핀잔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과거 성별에 따라 고유의 역할을 구분했다면 요즘은 그런 경계도 무의미하다. 육아든 가사든 자기가 더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하면 그만이다. 남자가 요리를 더 잘하면 남자가 하면 되고 화장실 청소보다 설거지하기를 좋아하면 설거지를 하면 된다.(결혼은 조율 과정인 듯)


  제도는 사회적 흐름에 항상 못 미친다. 첫째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내가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어느 기사의 여느 남편의 고민처럼 육아휴직도 쓰고 싶었다. 한때는 아내가 일을 하면 내가 집안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 벽 앞에 나의 생각을 단번에 접었다. 남자 혼자 벌어서 가계 유지가 힘들다. 월급을 덜 받아가며(그것도 몇 개월이 지나면 없다) 누가 육아휴직을 할까. 공무원처럼 고용이 보장되지 않고서야 맞벌이도 마찬가지다. 결국 남편이든 아내든 무언가를 포기해야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

   

https://news.nate.com/view/20190322n21357?mid=n0412&isq=9998


  사실 육아휴직을 권장하는 직장 문화면 몰라도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하면 그만두라는 직장이 여전히 많다.

https://news.v.daum.net/v/20190225204317172

  어떻게 육아시간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나요. 분명한 차별이다. 첫째 등·하원을 시키기 위해 출퇴근 시간의 조정이 필요했다. 마침 교육공무원인 교사들은 출퇴근 시간을 최대 2시간을 미루거나 앞당길 수 있었다. 육아시간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는 2017년부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여성만 가능했던 육아 시간이 남성, 여성 구분 없이 가능하게 됐다. 이제 남자들도 육아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학기 초 육아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 선생님들이 모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도 가능한 줄 알고 신청을 위해 참석했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당연하게 비정규직인(교육공무직: 교육복지사, 교무실무사 등) 우리도 가능할 거라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그 자리에서 육아 시간 사용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심정은 참혹했다. 남편의 육아 참여를 권유하고 또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입장에 울분을 토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교육공무직도 여자는 되고 남자는 안된다, 이건 또 성차별이다)


  돈 몇 푼 쥐어준다고 출산율이 높아질까. 점점 국가가 책임지는 형태로 가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그 변화가 선진국의 제도와 비교했을 때 더디지만 어쨌든 변하고 있다. 아동수당도 2018년부터 시행됐으며 올해 4월부터 소득과 상관없이 모든 6세 미만 아동가구에 지급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반가운 대목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지원 만으로 출산율을 높이진 못한다. 행복한 출산과 육아를 하지 못하는 모순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그마저 제도가 있어도 챙겨 먹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상황이다. (눈치가 살벌하다)

  

  최근 등산 모임이 있어 순천에 갈 일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인구 소멸에 대한 상상을 했다. 조계산을 종주 한 덕에 등산을 마치고 출발 지점으로 다시 가야 했다. 시내버스를 탔다. 어느 시골 마을을 구석구석 다니는 버스 안에서 창밖에 보이는 모습은 정막 했다. 인기척이 없었다. 낡고 버려진 집들, 유령 도시 같은 모습에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예전에 봤던 기사가 떠올랐다. 인구 소멸에 대한 기사였다. 몇십 년이 지나면 아무도 안 사는 지역이 생긴다는 소름 끼치는 기사였다. 버스 창밖으로 본모습은 그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http://news1.kr/articles/?3558121


  대안을 행복지수 1위인 덴마크에서 찾았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책은 덴마크 사람들이 왜 행복한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들이 행복한 이유를 6가지 키워드로 설명한다. 공부와 일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사회가 나를 보호해준다는 안정감, 비교하지 않고 남부럽지 않은 평등한 인식과 사회적 구조, 세금이 아깝지 않은 이웃과 국가에 대한 신뢰감, 친구처럼 의지할 수 있는 이웃, 깨끗한 환경을 그 이유로 들었다. 글을 쓰면서 이런 나라가 있을 정도로 실감 나지 않는다. 이런 나라에 사는 국민들은 어떤 기분일까. (부러우면 지는 건데)


  그에 반에 우리나라는 치열하다. 뭐든지 목숨 걸고 살아야 한다. 그 결과 행복한 삶을 잃었다. 우울한 사회다. 2018년 OECD 국가에서 한국이 자살률 1위를 했다. 이 통계는 우리나라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어려서부터 경쟁에 노출되어 친구들과 비교당하면서 남들보다 우월해지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 일은 어른이 되어도 이어진다. 무한 경쟁은 빈곤의 간극만 넓힐 뿐 더불어 사는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행복한 나라가 될까.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로 결혼도 아이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에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창 여행, 고인돌 박물관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