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사회복지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다.
사회복지사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결핍된 욕구를 발견하고 그에 따른 욕구 충족을 위해 사회복지서비스를 직접 지원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구가 있어도 요구하는 바를 다 들어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사람의 다양한 욕구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또한 예산 사용의 한계가 있고 권한도 제한되어 있다. 예산의 한도 내에서 지원할 대상자와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선별 과정, 합의를 거쳐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자체 예산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가 태반이다. 이럴 경우 대체로 외부 자원(지자체나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같은 NGO단체, 사회복지시설 등)의 도움을 받는다. 사실상 마지막 희망이다. 이 역시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 지원받는 것이 아니다. 이 또한 경쟁이다. 최종 심사 후 선정되어야 비로소 대상자에게 사회복지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다. 그밖에 지역사회 후원금 발굴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일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복지사인 나는 행복한가.
타인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얼마나 행복할까. 사회복지사가 행복감을 느끼며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사회가 사회복지사들에게 대하는 태도와 인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사회는 사회복지사의 개인 행복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는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사회복지사는 자원봉사자 아닌가요?"
사회나 많은 사람들은 사회복지사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사회복지사를 자원봉사자로 여기고 마음이 착한 사람이 하는 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나도 대학교 시절 사회복지사의 희생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졸업한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까지 사회복지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왜곡된 인식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역시 우리가 변화시켜야 할 몫 같다.
사회는 사회복지사의 이익보다 "우리"라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으로 요구하고 기대한다.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사 선서를 새기면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사실 나도 최근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을 받으면서 대학교 이후 처음 보게 됐다) 이러한 요구와 기대 속에서 사회복지사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사회적 지위, 더 나은 처우에 대한 목소리 내기가 힘들다.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사의 권익을 주장하면 마치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이다.
1.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인간 존엄성과 사회정의의 신념을 바탕으로, 개인 가족, 집단, 조직, 지역사회, 전체 사회와 함께 한다.
2. 나는 언제나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저들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며,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고, 개인 이익보다 공공이익을 앞세운다.
3. 나는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을 준수함으로써, 도덕성과 책임성을 갖춘 사회복지사로 헌신한다.
4. 나는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명예를 걸고 이를 엄숙하게 선서합니다.
-사회복지사 선서-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자신의 일이 가장 힘들고 어렵다는 것이다. 자신이 일하는 근무 환경이 가장 열악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사회복지사지만 정말 많은 일을 한다. 기본적으로 많은 양의 업무(행정서류)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근본적인 가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 맺는 일이다. 하지만 처리해야 할 업무와 작성해야 할 서류로 정작 중요한 일은 뒷전으로 밀릴 때가 많다. 그때부터 사회복지사로서 회의감이 밀려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초기면담일지,
가정방문일지,
상담일지,
면담일지,
서비스 동의서,
프로그램 일지,
프로그램 평가 일지,
사업 계획서(그에 따른 서류가 3~4개다),
업무(2~3개 프로젝트 사업 맡는 것은 기본이다)
사례관리(한 대상자의 서류만 해도 5~8개다),
지차체나 정부에 보고 하는 서류(상시로 처리한다)
...(다 쓰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이만)
행정업무뿐만 아니다. 감정 노동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공감할지 모른다.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를 서비스하는 사람이기에 감정을 다루는 일이 노동에 가깝다. 사회복지사는 사람과 관계를 통해 사회복지서비스를 지원한다. 그래서 복잡한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직장상사 눈치 살피기도 바쁜데 사회복지사는 사람들의 민원을 바로바로 처리해야 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꼴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불안정한 노동 현장은 사회복지사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든다. 사회복지사 공무원, 규모가 어느 정도 갖춘 법인이나 기업 내 정규직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기계약직 전환을 만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열정 페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복지를 착취당한다.
사회복지사들은 자신도 행복하기를 원한다.
사회복지사로 일한 지 10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일하면서 행복감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웠다. 열악한 근로 조건과 감정 노동으로 소진되는 상황을 자주 마주했다. 사람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스트레스 상황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버틸 수 있었다. 외부요인에 굴하지 않고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사회복지사도 분명 있다. 또한 자신의 꿈을 키우고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사회복지사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열악한 외부 환경은 행복감을 유지할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의 일을 좋아하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거나 명절이 되면 가족으로부터 늘 듣던 말이 있다.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해서 물어보던 질문이다. 그땐 그 말들이 너무 지긋지긋했다. 마치 명절 때마다 부모님과 친인척들이 묻는 "넌 언제 결혼할래"와 같은 수준의 피하고 싶은 말이겠다.
‘공무원 준비해라’
‘사회복지사가 안정적인 직업이냐?’
‘돈은 얼마나 많이 버냐?’
'군인이나 경찰이 좋지 않냐'
유독 아버지는 나에게 혹독하게 대했다. 그럴 때면 "저도 제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어요."라고 아버지를 몰아세운다.(그랬다간 말이 길어지니 하고 싶은 말을 뱉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지금은 아버지가 이해되지만 그땐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부정 자체가 싫었다. 이는 나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나를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한 화만 나는 상태였다.
아버지는 공무원을 좋아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한다. 공무원, 군인, 경찰 같은 특히 공무원을 최고의 직업이라고 여긴다. 아버지의 이러한 생각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아버지가 한창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때 IMF 외환 위기가 찾아왔다. 그때 나는 어렸고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금을 모으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장면만 떠오른다.
그때는 직원들에게 명예퇴직을 권하는 시기였다. 물론 소수자에 해당되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일하는 곳이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서 쫓겨나듯 직장을 나왔다. 직장을 쫓겨나듯이 떠나야만 했던 그 시절을 오롯이 겪고 버텨낸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자식에게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였다.
나는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하거나 걱정거리였다. 허다하게 주변으로부터 사회복지사 일에 대한 걱정을 경험했지만 당당하게 ‘그 일이 좋아요’라는 말은 꽁꽁 숨겨왔다. 당당하지 못한 나의 태도에 웃기지만 슬픈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회복지사들은 불행한 자신의 모순된 상황을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내가 사회복지사의 삶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이다.
행복은 나의 현실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태도로부터 시작된다. 나 역시 숱한 주변의 불편한 시선과 핀잔, 강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사회복지사의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렇게 시작된 질문은 ‘나는 이 일이 좋아!’ ‘어쩌라고! 나도 사로 끝나는 직업이거든?’라고 수없이 다짐케 했다. 어쩌면 이 일을 10년 가까이하게 된 힘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사회복지사의 일에 대해 걱정을 한다면 당당하게 외쳐보자. 행복감은 내가 인정하기 시작한 때부터 찾아온다. 오늘도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사는 사회복지사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사회복지사의 삶에 대한 만족도, 행복한 정도가 우리나라의 행복한 정도의 척도였으면 좋겠다.
다음 편은 대한민국에서 남자 사회복지사로 사는 방법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