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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보다 실천이 어려웠다.
#기술 보다 태도가 먼저다
부모, 자녀와의 관계에서 기술보다 태도가 중요함을 깨달았다.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는 자녀와의 관계 수준을 결정한다. 어쨌든 부모는 어른이다. 아이와 똑같은 수준으로 감정싸움, 아웅다웅하기 시작하면 관계만 나빠진다. 그릇된 부모의 태도는 자녀와의 갈등과 문제행동만 부추긴다. 이미 탈이 나고 일이 벌어진 뒤에 후회한들 사태만 커진 후다. 다시 말하지만 부모는 부모다운 역할과 태도가 밑바탕이 되어야 행복한 부모-자녀와의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자식이니까 무조건 따르라는 식의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태도는 관계를 파국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부모의 어떤 태도를 원할까.
# 어린아이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자녀와의 대화를 물꼬 트기 위해서는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금의 감정과 마음의 상태는 어떠한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아이이기 때문에 가르치고 통제하려고만 한다면 그때부터 미묘한 힘겨루기와 갈등이 시작된다. 부모들이 많이 하는 실수는 부모의 권위를 앞세워 아이의 욕구를 억누르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다. 아이가 쉽게 분노하고 반항하는 것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기회가 없어서다. 하지 말라는 행동에 집착을 보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에 대한 탐색 과정과 반항심 사이 혼란을 보이는 증상이다. 그렇다고 원하는 것을 모두 허용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들이 4살이 된 후론 육아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달라진 부모 역할에 한동안 표류했다.
아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무작정 억누르고 무시하면 탈이 난다. 자녀와의 관계는 말할 것 없고 관계 속에 불편한 감정,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아이의 몸과 마음에 병이 든다.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기 욕구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그에 따른 결과를 책임지는 경험 없이는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일 같다.) 아이의 자존감은 실수하더라도 스스로 해보는 기회, 자신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에서 생긴다. 자신이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존중받고 있다고 여겨질 때 아이의 몸과 마음이 튼튼해진다.
#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기
아이의 감정을 먼저 알아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돌아보면 아들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표현하도록 기다려주는 일이 어려웠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기다림의 연속 이랬던가. 쓸데없는 아이에 대한 걱정과 조급함으로 나도 모르게 아이의 욕구를 무시하고 있었다. 올바른 태도,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생각으로 아이의 행동, 결과만 따지고 있었다. 그 행동에 숨어 있는 아이의 진짜 속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것 같다. 아이는 이해받고 인정받기를 원했다. 욕구에 따른 힘겨루기가 잦아지면서 아이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가장 중요함을 깨달았다.
아침마다 힘들었어!
어린이집 가기를 거부했던 아들이 아침 등원 길, 차 안에서 툭 던진 말이다. (아... 그랬구나. 진작에 몰라봐서 미안해.) 아들 입장에서는 친구들보다 어린이집에 일찍 도착하는 것이 불안했을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어린이집이었다. 반나절 집을 떠난 것도 처음, 동생이 태어나 바로 보내진 상황이 불안감을 키웠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침마다 가기 싫다고 말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빨리 적응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했다. 오히려 적응 기간 때 잘 적응한 아들이기에 가기 싫다던 아들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들은 아침마다 가기 싫다고 칭얼거렸다. 보내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 곤욕이었다. 아들 못지않게 아내와 나 역시 스트레스를 받았다. 2주 동안 어린이집에 울면서 들어가는 아들을 보는 아비의 심정이란. 어린이집에 도착해 어떻게든 늦게 들어가려고 잔꾀를 부릴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오줌 마렵다며, 굳이 어린이집이 아닌 교회 화장실에 가야 한다며 나의 소매를 끌어당겼다. 아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다만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독여 주고 싶다.
# 적극적으로 경청하기
상대의 욕구나 요구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경청이 필요하다. 단지 듣는 행위를 적극적인 경청인지는 따져볼 문제다. 적극적인 경청을 위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상대에게 감정 이입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공감의 힘이 필요하다. 이제 공감 능력을 싹 띄우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들에게 공감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어쩌면 아들이 자기 말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의 감정과 생각, 상황의 맥락을 고려하지 못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에만 집착하는 이유가 있었다. 욕구 중에 허용되고 안 되는 일에 대해 안내하기 위해서라도 아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했다. 들어야 마음 알고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 간결하게 반영하기
잔소리라고 받아들이는 이유는 지나치게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와 대화를 피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다. 자식이 성인이 됐어도 항상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 않다.) 뭐든지 지나치면 탈이 난다. 부모가 자녀를 독립된 주체고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어른의 입장에서 자녀에게 잔소리밖에 할 말이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고 조정하려 든다. 어린아이를 다루듯 무시하고 비아냥거림이 깔려있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항상 기분 좋게 끝나지 않았던 이유도 아버지의 이런 태도에 기분이 나빴고 대화가 이어질수록 거부감이 들었다.
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믿고 맡기지 못할까.
자녀가 부모 품에 머물러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부모는 뒷전이고 친구들과 놀기 바쁘다. 아이가 부모를 떠나 세상을 탐색하고 관계 맺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근 4살인 아들에게서 느꼈다. 이제는 나랑 노는 것보다 같은 또래나 형, 누나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빠랑 놀자? 묻는 나에게 "아니"라고 말하며 아이들 속에 달려가는 아들의 뒷모습에 서운하면서도 부쩍 큰 모습에 멋쩍지만 말이다. 아들을 놓아주는 방법은 간단했다. 간결하게 말하는 거였다. 장황하게 설명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차근차근 설명했어도 길어지면 아이들에겐 생각을 멈추게 하는 잔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어느 육아 책에서 간결하게 말하라고 하여 적용해 보았다. 한 예로 아들은 밥 먹을 때 돌아다니며 먹는다. 외출을 앞두고 급한 마음에 떠먹여 주거나 자리를 옮길 때 밥을 치운다고 협박을 했다. 돌아오는 것은 아들의 반항심이었다. 그 뒤로 책에 나온 대로 밥 먹는 시간을 알려주고 그때까지 안 먹으면 치운다고 설명했다. 아들은 하던 대로 이리저리 다니며 먹었다. 예전 같으면 대신 먹여주거나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이러다 몸에서 사리 나오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말 없이 나는 나대로 밥을 먹는다. (역할 모델을 위한) 아들에게는 남은 시간만 체크해주고 있다. 그렇게 반복하니 이제는 예전보다 돌아다니는 빈도가 줄었다. (일관된 태도를 보이는 게 어렵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대화
아이는 아이다. 상상력이 깃든 대화로 설득하는 편이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효과가 있었다. 한동안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가는 차 안에서 징징댈 때 평소와 다르게 대화를 시도했다. 매일 어린이집 가는 차 안에서 아들에게 어린이집에 가면 친구들도 만나고 선생님도 만날 수 있어, 집에 있으면 혼자 심심하잖아!라고 운의 뗐다. (친구들을 좋아하는 아들이 듣고 있다.) 이어 어린이집에 가야 가는 길에 소방본부(소방서)도 볼 수 있어! 유호가 좋아하는 자동차도 포클레인도 볼 수 있어! 아들이 좋아하는 중장비를 총출동시켜 대화를 시도했다.
카시트 안전벨트를 맬 때 실랑이가 시작된다. 운전석에 앉고 싶은 마음을 누가 모르겠는다. 아이의 호기심은 불편한 카시트에 앉기를 거부한다. 안 바쁠 때는 기다려줬다. 한참 차 안에서 놀아주고 탐색할 기회를 주었다. 항상 문제는 나의 마음이 바쁠 때 찾아온다. 아침 출근길, 어린이집에 갈 때나 다른 장소로 급하게 이동할 경우 카시트에 바로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엔 먹을 것으로 유인했다. 회유했다. 하지만 물질적인 보상은 항상 부작용을 낳는다. 며칠 전까지 카시트에 앉기만 하면 먹을 것을 요구했다. 그때부터 다르게 대화했다.
안전벨트를 안 매면 폴리가 싫어한대
아들이 좋아하는 폴리는 경찰차다. 아무리 4살 아이에게 왜 안전벨트를 매야 하는지 설명해도 소용없다. 경찰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들 알아들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대화하는 게 오히려 속 편하다. 아니면 사고 났을 때 안전벨트를 안 맬 경우 어떻게 되는지 아이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게 확실한 방법이었다. 준비물은 자동차 장난감이 필요하다. 트럭 뒤, 짐 싣는 칸에 사람 인형의 블록 장난감을 태우고 두 개의 장난감을 서로 부딪히게 한다. 부딪히면 트럭에 타고 있는 사람은 차를 벗어나 차 밖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안전벨트를 매야 안 다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뒤로 안전벨트 벗는 일이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6살까지는 아이에 맞는 대화로 반복해야 할 것 같다.)
# 선택권을 아이에게, 이미 아이는 문제 해결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이가 클수록 선택권을 갖기 원한다. 아이가 4살 되는 무렵 모든 일에 주도하려고 하는 것은 발달 과정에서 찾아오는 아이가 획득할 과제다. 사사건건 부모의 요구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 하지 말라는 행동에 집착하는 것, 갈등을 일으키고 힘겨루기가 되는 것도 발달이론 관점으로 보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존중할 때 자녀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줄어든다. 사실 이 시기가 가장 받아들이고 적용하기 어려운 일 같다. 아이에 특성과 상황에 맞게 부모가 변화하기란 쉽지 않다.
아들은 이미 문제 해결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다만 아들도 어떤 일을 선택하기 위한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일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은 행동의 동기를 높인다. 돌아보면 내가 좋은 결과, 방향을 제시하면 할수록 아들과 갈등이 생겼다는 것이다. 자의식이 커질수록 선택권을 주는 일이 필요했음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아들에게 선택할 기회를 준다. 너무 많은 것을 제시하면 오히려 선택할 수 없기에 두 개만 제시하고 선택은 아들에게 맡긴다. 아이가 선택해서 오는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지혜가 필요하다. 제시하는 두 가지의 내용은 아이가 뭐든 선택했을 때 최악의 상황을 피하도록 하면 된다.
# 부모의 긍정적인 기대, 믿음을 먹고 자란다.
사회복지 현장에 있으면 피그말리온 효과를 바탕으로 일을 한다. 요약하자면 피그말리온 효과는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해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아이는 부모의 긍정적인 기대와 믿음을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아이는 부모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글을 쓰며 나는 아들에게 어떤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긍정의 조각하고 있는지 점검하게 되었다. 사실 글은 행동보다 쉬웠다. 자녀를 키우는 일이 말과 글처럼 쉽지 않음을 부모가 되어보니 알겠다. 어쨌든 부모는 아이보다 어른이다. 부모 역시 서툴지만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